뜨겁던 여름은 가고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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뜨겁던 여름은 가고
소설가
  • 기호일보
  • 승인 2009.08.24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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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처서도 지나고 이제 작열하는 태양도 조금씩 순해져가는 계절의 길목이다. 여름은 열기로 달아올라 과도한 열정이 때로는 광기로 변질되기도 하는 계절이다. 하루 100만 명이 넘는 인파가 몰려드는 해운대 여름바다를 옴니버스 형식으로 제작한 프로그램을 봤다. 원색의 옷차림과 원초적인 본능이 얽혀서 용광로 같은 여름 해변엔 각가지 사연이 넘친다. 해운대 해수욕장을 관할하는 해운대 여름 경찰서의 하루 밤낮을 동행 취재한 이야기인데 다큐에다 극을 접목해 만든 프로그램이다. 정통 다큐보다는 가볍고 편하게 볼 수 있어 재미있었다.

시작을 가벼운 코믹터치로 처리했는데 사건의 주인공들 소개가 재미있다. 경찰서에 연행됐거나 신고한 사람들이 부르는 랩에 고달픈 인생살이가 들어있어 가볍게 다룬 이야기지만 결코 가볍지만은 않은 여운이 있다. 사회의 그늘진 낙오자들의 인물소개가 냉소적이고 비판적인 랩의 특성과 잘 맞아떨어진 것 같다. 총 6개의 이야기로 구성을 했는데 경찰서 하루를 모두 보여주려는 의도는 좋은데 실제상황인 사건과 사고에다 사건을 일으킨 사람들의 전후 사정까지 극으로 구성하다 보니 좀 산만하다. 너무 많은 것을 담으려는 욕심 때문인 것 같다.

노출의 계절인 여름이면 심심찮게 등장하는 것이 성추행 사건이다. 거기다가 외국인 이주 노동자까지 가세했다는 사실에 충격을 받았다. 아내와 떨어져 지내야 하는 젊은 이주 노동자들의 성적 욕구가 해수욕장에서 성추행으로 잘못 발산되는 점은 이해가 가는 점도 있지만 우리가 미처 생각해 보지 못한 부분이기도 하다. 우리나라 사람들이 외국인에게 관대한 것이 과연 좋은 현상이기만 한 것인가 한 번쯤 짚고 넘어갈 문제꺼리를 제공해 주었다. 여성에 대한 성추행은 있어서는 안 될 일이다.

자신의 신병에 위협을 가하는 정치인이 있어 경찰서를 찾아 상담을 하는 여성의 이야기는 경찰의 업무가 어디까지인지 힘든 경찰의 노고를 보여주는 이야기다. 경찰 업무의 어려움이 큰 울림으로 다가온다. 전체적으로 우리 사회의 어두운 면들을 보여주는 곳이 경찰서다. 경제가 힘들어 취업이 안 되는 젊은이, 한창 일할 40대에 명퇴를 당한 가장, 외모지상주의와 향략문화가 만들어낸 나이트클럽에서 무전취식한 모델, 바다에 빠졌으니 젖은 옷을 책임지라는 남자의 투정. 이런저런 힘들고 고달픈 우리네 인생 이야기가 비빔밥처럼 버무려져 있다. 훈계조의 가르치려는 기획보다 있는 그대로 담담하게 보여주는 전개가 오히려 생각해 볼 거리를 깊게 던져준다. 나름대로 기획 의도를 잘 살려낸 작품이다.

무질서와 혼동은 사람들에게 집단 히스테리를 만드는 동기유발제가 되지만 어느 순간, 안정을 추구하는 이성이 적당한 타이밍을 잡아 염려를 다독인다. 이제 여름도 끝자락이다. 사각거리는 햇살이 상쾌해 높아진 하늘을 보면서 사람들은 마음의 여유를 찾는다. 사람의 생에 뜨거운 청춘 같았던 여름은 온화한 가을을 만들기 위한 역할을 충실하게 마무리했다는 자부심으로 충만하다. 조금 지친 듯한 여름은 온갖 시행착오의 결과를 교훈으로 남기고 긴 휴식에 들어갈 채비를 하고 있다.

거실 소파에서 편한 자세로 프로그램을 시청하면서 연출자의 과도한 의욕이 프로그램의 질을 떨어뜨리듯이 지나치면 모자람만 못하다는 과유불급의 교훈을 새겨보고, 파출소의 온갖 사건 사고는 우리 생에 일어날 수 있는 온갖 사연을 비유적으로 보여준 것 같다고 의미부여를 해 본다.
이제, 가을이 오면 사람들은 깊은 내적 갈망을 통해 부드러운 심성을 키워나갈 것이다. 자연스럽게 종교나 철학, 혹은 심리학에 관심을 가질 것이고 다른 사람들과의 심적 필요를 잘 통찰할 수 있는 성숙함으로 온화해져 갈 것이다. 여름이 있었기에 가을이 빛나는 것이다. 탐스런 과실은 여름을 통과했기 때문에 얻은 결과물이다. 존재의 의미를 새겨보는 여름의 끝자락과 가을의 초입에서 두 계절의 인과관계가 우리를 성숙하게 만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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