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옥철 경기본사
 【시흥】최근 전국적으로 지자체 통합문제가 뜨겁게 달아오르고 있는 가운데 시흥시를 놓고 부천과 안산시가 편입 콜을 보내고 있으나 시흥시민들은 별다른 반응도 보이지 않고 있다.

시흥시는 본래 백제의 영토였으나 고구려 제20대 장수왕의 남진정책으로 한강유역이 고구려의 영토가 되면서 잉벌노현이라 했는데 신라가 삼국을 통일하자 제35대 경덕왕 때 곡양현으로 고쳐서 율진군(과천)의 영현이 됐다가 고려 태조 23년(940)에 금주로 고쳐졌고 제6대 성종 때(991) 시흥(始興)이라는 별호를 얻었다.

조선시대에는 태종 13년(1413)에 금천현으로 개칭됐다가 이듬해 과천을 합쳐 금과현이라 했으나 곧 혁파하고 다시 양천을 합해 금양현라 불리다가 또다시 1년여 만에 혁파하고 과천을 병합했으나 얼마가지 않아 금천현으로 복구됐다.

그 후 정조가 안양에 만안교를 가설하고 1795년(정조19년) 고려 때 별호명을 취해 시흥현으로 행정지명을 바꾸고 제26대 고종이 시흥군으로 승격시켰다. 1914년 일제 강점기 부·군·면 통폐합에 따라 과천군·안산군이 시흥군에 흡수·통합돼 관할하다가 1936년 4월 경성부(서울)의 확장책에 따라 영등포리·당산리·노량진리·동작리 등 11개 리를 경성부에 넘겨주고 1949년 8월 구로리·도림리·번대방리가 서울시 영등포구에 편입, 시흥군에서 분리하고 화성군 일왕면이 시흥군에 편입되면서 의왕면으로 개칭됐다.

1973년 7월 안양읍이 시로 승격, 분리되고 부천군 소래면이 편입되는 한편 79년 8월 반월지구 출장소가 개설되면서 수암·군자의 13개 리가 분리되고 81년 7월 소하읍과 광명출장소가 광명시로, 82년 6월 과천면이 과천출장소로, 83년 2월 옥길리·계수리 일부가 광명시와 부천시로 편입된 후 89년 1월 소래읍·수암면·군자면이 시흥시로, 군포읍이 군포시로, 의왕읍이 의왕시로 각각 승격돼 시흥군은 93년 만에 종어(終於)를 고하고 시흥시가 종주시로 그 법통을 계승하고 있다.

이토록 시흥이라는 지명이 과거부터 거대하면서도 역사를 가진 전통성을 유지하고 있음에도 인근 지자체들이 통합 운운하는 자체가 과연 옳은 것인지 다시 한 번 생각하기를 기대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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