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 1994년 우루과이 라운드(UR) 협정과 올해 안에 체결이 예상되는 한미 FTA 협상 등 거센 개방의 파고에 싼값을 무기로 한 외국산 농산물이 우리 가정의 식탁을 점령하고 있다. ‘신토불이(身土不二)’만을 내세우며 민족 감성에 호소하기에는 이미 국내 농산물 시장은 외국산에 ‘무장해제’된 상태다. 바야흐로 한국 농업은 ‘퇴출’ 위기에 처해 있다. 그러나 이러한 위기를 기회로 바꾸기 위해 경기도 농정국은 김문수 지사 취임 후 농업의 산업·명품화를 추진하고 있다.
본보는 경기도 농정국과 함께 매달 ‘연중기획-위기의 대한민국 농업, 경기도 산업·명품화로 세계와 경쟁한다’를 집중 조명, 한국 농업의 대안을 제시해보고자 한다. <편집자 주>

조선시대 임금님께 진상된 가평 잣은 고소한 향기와 뛰어난 영양으로 가평의 특산물로 많이 알려져 있다.

   
 

잣나무는 홍송(紅松)이라고도 하며 가평군 자연경관의 대표자로 상록의 상징으로 절개의 표상일 뿐 아니라 그 열매인 잣은 예로부터 귀한 식품으로서 기운이 없을 때나 입맛을 잃었을 때 잣을 먹으면 기운이 나고 입맛을 찾게 해 특히, 노약자나 환자에게 좋은 고단백 영양식품이다.

특히 가평 축령산 잣으로 만든 잣죽, 잣국수 등은 인스턴트식 패스트푸드에 빠져 있는 식습관을 슬로푸드로 개선하는 대표적인 신토불이 제품으로 눈길을 끌고 있다.
전국 70%의 잣 생산량을 자랑하는 가평 축령산은 국내 최대 잣나무 숲으로 약 60년 전에 산자락을 빙 둘러 심어 놓은 잣나무 묘목이 60년이 지난 지금 아름드리 잣나무 숲으로 가평을 잣의 고장으로 만들었다.

축령산은 현재 경기도에서 직영관리하고 있는 휴양림으로, 축령산 정상으로 오르는 잣나무 산책로는 하늘이 보이지 않을 정도로 잣나무들이 우거져 있어 수많은 관광객들의 발길이 계속되고 있다.

 

   
 
# 웰빙식품의 대명사 가평 잣

잣나무는 해발고도 1천m 이상에서 자라며 높이 20~30m, 지름 1m에 달하는 커다란 나무다. 꽃은 5월에 피고 수꽃이삭은 새가지 밑에 달리며 암꽃이삭은 새가지 끝에 달리고 단성화이다. 열매는 구과(毬果)로 긴 달걀 모양이며 길이 12∼15㎝, 지름 6∼8㎝이고 실편 끝이 길게 자라서 뒤로 젖혀진다.

잣 수확시기는 8월 중순부터 1월 말까지로 잘 영근 잣 방울이 떨어지면 줍기도 하지만 대부분 나무의 맨 꼭대기에 있는 상수리에서 열매가 열려 장대로 쳐 따야 한다. 특히 잣나무는 해충이나 병충해 피해를 거의 받지 않아 농약을 칠 필요가 전혀 없는 천연 무공해 우리 농산물이다. 최근 현대화된 기계공장이 들어오면서 일일이 막대로 쳐서 알을 빼내는 작업은 훨씬 쉬워졌지만 고급 식재료답게 부스러기를 빼내는 마지막 과정은 모두 수작업으로 이뤄진다.

 # 잣의 성분 및 효능

잣은 지방질과 단백질이 각각 60%, 20% 이상 함유된 대표적인 식물성 영양식품으로 이 외에 탄수화물, 무기질 및 비타민 등을 골고루 갖춘 완전식품이라 할 수 있다.

   
 

특히 잣에는 양질의 올레산, 리놀산, 리놀레인산 등 불포화지방산인 레시틴이 많이 함유돼 있어 뇌와 혈관의 현대병을 예방하고 치료하는 데 도움을 준다.
실제로 유엔보고서 문건 중 한국산 잣에서 추출한 잣 기름이 비만억제효과가 탁월하다는 내용이 있을 정도로 다이어트 식품으로서의 효능도 입증된 바 있다.

 # 잣칼국수, 잣두부 등 슬로푸드 개발로 경쟁력 확보

축령산 잣 영농조합은 2004년부터 친환경 웰빙 슬로푸드의 생산 및 개발을 통해 경쟁력을 확보하고 있다.

   
 
슬로푸드 개발은 생산과 가공, 관광과 판매를 하나로 묶어 유통마진을 줄여 농가의 부가가치를 높인다는 목표로 추진됐다.
현재 이곳에서는 잣 탈곡기 외에 실백 생산에 필요한 기계설비 11기종 등 완제품 생산라인 시설을 갖추고 잣칼국수, 잣수제비, 잣두부, 잣주먹밥, 잣김치 등의 슬로푸드를 개발, 국내 우수 농산물의 소비를 촉진시켜 FTA 등으로 어려움을 겪고 있는 농가들에게 새로운 소득원이 되고 있다.
특히 슬로푸드 개발과 더불어 사라져 가는 전통음식 조리법을 체험할 수 있는 축령산 잣 영농조합은 전통한옥식 체험장을 운영해 국내 관광객뿐 아니라 외국 관광객들의 발길까지 이어져 웰빙 농산물의 명소로 자리잡고 있다.

 

이수근 가평축령산 잣 영농조합 대표이사

   
 

-가평축령산 잣 영농조합은.
▶지난 2000년 33인의 상면 잣 농가 33인이 모여 법인을 설립해 브랜드화를 추진하고 G마크를 인증했다. 현재 이 일대 2천㏊의 청정 숲에서 잣나무를 조림하고 있으며, ㏊당 40~50년생 나무는 250본 정도, 어린 나무는 300본 정도가 식재돼 있다.

잣 열매는 목본 열매 중 유일하게 15개월 정도 숙성돼야 수확이 가능해 격년으로 풍년이 들고 있다. 지난해는 풍년이어서 농가당 6천여만 원 정도 생산됐으나 올해에는 평년작이어서 농가당 4천여만 원 미만의 수익이 예상될 정도로 고소득 작물이지만 농촌 고령화로 인해 조림농가가 감소하고 있어 현재 20여 명의 조합원만이 잣 생산을 하고 있다.

-가평 잣의 장점은.
▶다른 지역은 박정희 대통령의 조림사업으로 인해 잣나무를 식재했다. 그러나 가평은 세조대왕 때부터 궁중에 잣을 진상할 정도로 자연적으로 형성된 잣 주생산지다. 이러다 보니 다른 지역의 나무는 30~40년생이지만 가평에는 어린 나무에서 수백 년 묵은 고목까지 골고루 분포가 돼 있다.
최근 1970년대 조림했던 잣나무에서 나온 열매와 가평군에서 생산하는 열매를 비교해 본 결과 가평 잣의 품질이 우수했다. 이는 잣 열매의 수정 방식으로 인한 것으로, 수령 차이가 나는 나무들이 혼합 교배를 통해 우성열매를 생산, 좋은 맛을 유지하는 것 같다.
이와 함께 가평은 일교차나 온도차가 커 잣 생산에 좋은 것 같다. 특히 가평의 숲들은 강원도보다 연중 서늘한 온도를 일정하게 유지하고 있어 잣나무 생장에 큰 이점으로 작용하고 있다.

-잣 농사의 어려운 점은.
▶청설모 피해와 멧돼지의 피해가 있다. 청설모는 5월부터 수확될 때까지 피해를 주고 멧돼지는 낙과에 피해를 준다. 유해조수들이 1년간 잣 농사에 끼치는 폐해는 농민들이 체감할 때 어마어마하다.

또 판로의 문제도 있는데 최근 유통업체가 늘어나 가평군에만 20여 개 업체가 난립해 있다. 이로 인해 덤핑이 이뤄져 농가 소득이 올라가지 않고 있다.

따라서 가평축령산 잣 영농조합에서는 매해 유통할 수 있는 양만 생산하고 있다. 해외시장 개척이 절실하지만 일부 양심불량 업체들이 가평 잣을 도용하고 있어 가평 잣 농민들의 가슴에 멍이 들고 있다. 난립하는 유통업체를 막을 수 있는 진입장벽도 필요한 것 같다.

또 잣에 대해 국가적인 연구나 관심이 부족해 우리 잣을 대상으로 한 전문 연구 결과 등 홍보자료가 부족하다. 경기도 차원에서라도 잣에 대한 철저한 연구를 통해 효능, 농사 기법 등 과학적인 근거 제공이 절실하다.

-잣을 활용한 다양한 마케팅 노력은.
▶식품화를 위해 동양매직 요리연구소에 의뢰해 잣두부, 잣칼국수, 잣덮밥 등 5가지 레시피를 만들어 잣 농장 체험객들에게 잣의 채취부터 요리까지 할 수 있는 프로그램을 개발해 운영하고 있으나 대중화에 난항을 겪고 있다.

경기도는 잣 생산업체가 G마크 인증을 받을 경우 포장재 지원을 해 주고 있지만 잣 산업 자체의 경쟁력이 떨어지다 보니 이 정도의 지원으로는 발전이 요원한 상태다.
경기도나 가평군은 기존의 지원과 함께 식품화에 대한 기술 지원과 기계설비 지원을 해 줬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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