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합병원 입구에 걸려있는 현수막. ‘만 40세, 만 66세 생애 전환기 건강진단을 받으세요.’ ‘생애 전환기’란 말이 신선해 걸음을 멈추고 현수막을 올려다봤다. 40세는 중년기의 시작이고 66세는 노년기에 접어든 나이인지라 특별한 의미를 가지는 시점이다. 이후의 삶을 건강하고 행복하게 살아가려면 점검이 꼭 필요한 시간대라 진중하게 살피고 상황을 파악해 분석할 필요가 있겠다.
생애 주기는 사람의 삶에서 반드시 거쳐야 할 과정이고 유아기와 아동기, 청소년기뿐만 아니라 중년기와 노년기에도 생애 주기별로 겪어야 하는 진통이 있을 것이다. 국민건강보험공단에서 하는 생애 전환기 건강검진은 인체의 변화에 적용할 의학적 측면의 건강을 집중 수집해 진료하는 복지정책이겠다. 개인별 성별 연령별 특성을 고려해 중·장년기 이후의 질병 예방 관리뿐만 아니라 적절한 치료의 기회를 주어 건강한 삶을 누리도록 하자는 국민복지 차원에서 실시하는 모양이다.

나는 첫 번째 생애 전환기 검진 대상인 만 40세를 넘었다. 돌아보면 육체적 질병을 수반하는 정신적 방황으로 힘들게 사십을 받아들인 시기이다. 막연하게 사십대는 내 인생에 존재하지 않을 것처럼 무방비로 있다가 사십을 코앞에서 맞닥뜨렸을 때의 그 막막함이란….
터무니없는 자만심으로 격에 어울리지 않게 한껏 고고했던 자존심은 벌거숭이로 내몰리고 해가 진 뒤 어스레한 어둠 같았던 내 위치는 박색(薄色)의 여자가 가지는 콤플렉스마냥 주눅 들고 외로웠다. 야박하지도 모질지도 못한 성격은 앞에서 참는 것으로 삭이다가 뒤돌아서면 찰기 없이 쌓인 메진 가슴이 부스러졌다. 젊음도 가고 늘어나는 잔주름에 비례해 조금씩 경박해지는 정서도 나를 괴롭혔다. 자기분야의 전문성으로 내공을 쌓을 연륜인데 얕은 지식으로 쉽게 흔들렸고 제 궤도에 오른 성공한 여자들은 주위에 왜 그리도 많이 보였는지.
미처 이르지 못한 사십은 마른 하늘에서 내리는 우박마냥 내 몸 구석구석을 찢으며 상처를 입혔다. 상처를 통해 들어온 냉기가 뼛속까지 파고들었다. 그저 하루를 흘려보내면서 행동이 따라주지 않는 잡생각에 좁은 속이 들끓었다. 뭐 때문에 누구 때문에 탓으로 돌리면서 생떼를 부리기도 하고 최선을 다하지 못했다는 반성이 지나쳐 생딱지를 파내어 내 마음과의 불화로 상처를 만들었다.
서른 후반부터 힘들었던 시간이 막상 사십이 딱 되자 슬며시 사라졌다. 얼마간은 포기하고 반은 현실로 받아들이고 내 실체를 인정하니 현재가 보였다. 채굴하지 않은 광맥이 어디쯤 묻혀있을 것이라는 기대감으로 어깨가 펴지면서 높은 이상으로 잃어버린 현실을 땅에 내려놓고 편하게 걸어 다녔다.

사십대는 내 삶에서 황금기였다. 열심히 탐구했고 열심히 참여했고 열심히 주변정리도 하고 열심히 이해도 했다. 익지 않아 떫거나 날것의 비린내가 아닌 숙성의 시간을 알아가게 해 준 세월이다. 아파본 사람은 안다. 건강이 얼마나 중요한지를. 자신의 생활패턴을 점검하고 관리해 정신이든 물질이든 탐욕을 절제하면 큰 후환이 생기지 않는다.
나는 유난히 생명활동이 생기(生氣)에 의해 이루어진다는 바이털리즘의 주장에 끌린다. 논리적 머리보다는 가슴이 먼저 움직이는 감성 코드를 가졌으니 어쩌랴. 냉철한 차가움보다는 따뜻한 공감을 매력이라 우기며 내 나이를 사랑한다. 사전에 나이 듦을 준비하고 계획했더라면 생의 전환기를 건널 때 나처럼 엄청난 본인 부담금을 물지 않아도 된다. 맞춤형 진단으로 그 시기에 잘 걸리는 병을 예방하고 식습관과 생활패턴 정신건강까지 관리를 받으면 무탈한 삶이 되겠지.
앞으로 긴 시간이 지나면 또다시 제 2의 생애 전환기를 맞는다. 마흔 즈음의 그때처럼 형편없이 허물어지지 않도록 대비를 해두어야겠다. 생체 기능이야 현저하게 약해지겠지만 그때에도 파스텔 색조 같은 부드러운 감성은 지키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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