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기간 : 2006.7.2.~2007.7.13.
   
 

원정 대원 : 김준우 교수(원정단장)
          김재학(건축 83학번, 원정고문)
          김동언(토목 01학번, 등반대장)
          최원구(건축 02학번, 행정)
          김은경(무역 05학번, 장비·의료)
          전동우(무역 05학번, 식량)
          이민영(일문 03학번, 회계)
감수 - 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 소장

  
 # 중국의 알프스, 아름다운 마을 상납미

   
 

 
설보정은 청두(成都)에서 더 들어간 상납미라는 마을에 있기 때문에 오늘은 어프로치로 하루가 마무리될 것이다. 35인승 관광버스를 대절해 한 사람이 두 명분 자리를 차지하고 편하게 이동했다. 잠시 졸다가 일어나니 어느새 풍경은 도시를 벗어나 시골 풍경으로 바뀌어 있었고 출발한 지 3시간 반 후인 오전 10시경 버스를 멈춰 휴식을 취했다. 잠시 들른 화장실은 한마디로 문화충격이었다. 물론 TV에서 본 적은 있지만 문은 없고 낮은 칸막이만이 존재하는 민망한 화장실. 하지만 그것도 처음에만 익숙하지 않아서 그렇지 중국인들 모두 서로 신경쓰지 않고 태연하게 볼일을 보는데 나 혼자만 민망해할 이유가 없었다.
다시 목적지를 향해 출발, 오후 4시가 조금 넘은 시각 민강촌이란 마을에 도착했다. 거기서부터는 비포장 도로에 길도 넓지 않기 때문에 트럭으로 갈아타야 했다. 그때부터 예상치 못했던 익사이팅한 여행이 시작됐다. 우리는 트럭 뒤의 짐칸에 자리를 잡고 앉아 있는데 박승묵 씨와 등산협회에서 연락관으로 함께 오신 분은 서 계셨다. 트럭이 출발하고 5초도 안 돼 그 이유를 알 수 있었다. 길이 너무 험해서 트럭이 덜컹거리는 대로 우리 몸도 이리저리 굴러다녔기 때문이다. 손잡이가 될 만한 곳을 두 손으로 꽉 잡고 서서 트럭의 덜컹거림에 즐거워하며 우리는 상납미로 향했다.
그 동안 음식 때문에, 익숙지 않은 문화에 웃음을 잃었던 원구 형은 그제서야 웃음을 되찾았다. 뒤에서 대장님, 원구 형, 동우의 비명 소리가 들려 왜 그런가 하고 보니 봉을 잡고 있던 손을 가장자리의 나무들이 스치는 순간 트럭 속도가 빨라 마치 회초리로 맞는 듯한 아픔이 오는 것이었다. 이상하게도 그것조차 즐거웠지만 한 시간이 넘는 트럭 이동은 우리 모두를 지치게 하기에 충분했다.
마을에 가까워질수록 산은 울창해지고 경치도 훨씬 아름다워졌다. 저녁 7시가 다 돼서야 상납미에 도착할 수 있었고 그곳의 주민들은 장족이었다. TV에서 흘러나오는 티베트 음악을 들으며 저녁 식사를 마친 후 침대 위에 침낭을 펴고 누웠다. 교수님의 제안으로 동우의 기도를 들으며 잠이 들었다. 우리 원정의 성공을 기원하며….

 

   
 
# 고소, 원정 성패의 관건

국내 산행에서는 스피드도 성공적인 산행을 결정짓는 중요한 요소지만 고산 등반은 다르다는 사실은 겪어봤기에 누구보다 잘 안다. 그래서 절대 조급하게 생각지 않기로 하고 천천히 운행을 시작했다. 화창한 날씨 아래 오전 9시쯤 베이스 캠프(4천200m)를 향해 출발해 천천히 호흡을 가다듬으며 걸었다. 한 시간 운행 후 잠시 휴식을 취하는 패턴으로 여유롭게 운행을 했으나 점점 가파른 경사가 나와 각자 조금씩 운행에 차이가 나기 시작하자 마음이 조급해졌고 이 감정을 억누르고자 애썼다. 대장님과 원구 형, 우 군이 먼저 도착해 베이스 캠프를 구축하고 있어 우리도 도착하자마자 배낭을 내려놓고 도왔다.
비가 조금씩 내리고 있어 서둘러 짐 정리를 했는데 과하게 움직여서인지 머리가 아파오기 시작했다. 원래 예정대로라면 오늘 캠프1(4천700m)에 몇몇 짐들을 데포하기로 돼 있었다. 하지만 캠프1에는 도난 사건이 많다고 해 내일 일찍 운행을 시작해 여러 번 왕복하기로 했다. 산책도 하고 물도 떠오고 떠온 물을 끓이는 등 소일거리를 찾아 끊임없이 움직였다.
가만히 있는 것보다 조금씩 움직여 주는 편이 고소에 도움이 된다고 하기에 의식해 일부러 움직였다. 원정 경험이 많은 동언이 형의 충고 반, 협박 반에 억지로 물도, 음료수도, 차도 많이 마셔 뒀다. 하지만 내일이 너무도 걱정이 되는 건 마찬가지다. 부디 다른 대원들에게 짐이 되지 않고 도움을 줄 수 있길 기도하며 잠을 청했다.

캠프1까지 여러 번 왕복이 예상되기에 기상 시간은 4시였다. 그러나 기상 후 원정대 모두 정상 상태가 아니었고 특히 재학이 형, 원구 형, 은경이의 상태가 안 좋아 잠시 동안 앉아 휴식을 취했다. 크게 나아질 기미가 없는 데다 더욱이 비까지 내려 운행 대기라는 결론으로 이어졌다.
고소 증세가 가라앉기를, 그리고 비가 그치길 기대하며 텐트 안에서 꽈즈(양념을 한 해바라기 씨로 중국의 간식)를 까먹으며 대기하고 있었다. 점심을 먹고 비가 조금 잦아들자 캠프1 정찰을 위해 출발했다. 이슬비라 운행에 큰 지장은 없었지만 자욱한 안개 때문에 길 찾기가 어려웠다. 거북이등(해발 4천500m 지점의 구릉지대)에서 나머지 대원들은 대기하고 있고 대장님과 재학이 형이 길 찾으러 가셨지만 실패하고 돌아왔다. 시간 등의 상황을 고려해 더 이상 진행은 무리라는 판단에 베이스 캠프로 돌아왔다.
저녁 준비를 할 때 식량 담당인 동우가 국으로 미역국을 준비했다. 미역이 고소에 좋다며 먹고 힘내자고 하는 동우가 고맙기도 해 첫술을 떴는데 막상 먹어보니 생각보다 괜찮았다. 국 덕분에 저녁을 맛있게 먹고 또 차를 마셨다. 모두 조금은 회복된 상태를 유지하고 더 좋아지길 바라는 마음은 같을 것이다. 설보정 산신령님, 도와주세요! <계속>

글쓴이 학·경력

1984년생 인천대학교 일어일문학과 03학번 산악부 O.B
2005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정
2005년 동계 설악산 종주
2006년 중국 설보정 등반
현 ㈜리텍 해외영업부 소속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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