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기간 : 2006년 7월 2일~2006년 7월 13일

   
 

원정 대원 : 김준우 교수(원정단장)
          김재학(건축 83학번, 원정고문)
          김동언(토목 01학번, 등반대장)
          최원구(건축 02학번, 행정)
          김은경(무역 05학번, 장비·의료)
          전동우(무역 05학번, 식량)
          이민영(일문 03학번, 회계)
감수 - 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 소장

오늘은 컨디션이 괜찮은 사람들이 C(캠프)1부터 C2까지의 고정 로프 설치 작업을 할 것이다. 원구 형과 은경이는 고소 증세가 조금 심각해 같이 출발하는 것은 무리라는 대장님의 판단에 따라 우리 먼저 출발하고 그 둘은 오후에 C1으로 오기로 했다. 길이 모호한 지점에 뒷 팀을 위해 작은 튜브형 고추장을 올려 놓아 길을 표시하며 걸었다. 오르락내리락 너덜지대를 지난 후 C1전 마지막에 놓여 있는 거대한 오르막 앞에 이르렀다. 처음에는 스무 발자국, 나중에는 열 발자국 떼었다 한숨 돌리며 오르막을 통과했다.

 # 고소 증세 극복하며 C2 도전

   
 

김동언 대장님과 동우는 벌써 C1에 도착해 고정 로프를 설치할 준비를 하고 있었다. 그 역할을 두 분에게만 맡기는 게 죄송했지만 고정 로프 작업 외에 내가 할 수 있는 일을 하기로 했다. C1에서 원구 형과 은경이를 기다리는 동안 차라도 마실까 해 텐트 사이트 왼쪽의 폭포에서 물을 떠 왔다. 후에 얘기를 듣고 알았지만 재학이 형이 고소로 인한 두통 때문에 심지어 커피도 어떻게 까는지 잊어버리셨다고 한다. 나는 그것도 모르고 윗 팀의 작업과 뒷 팀의 등반을 보기도 하고 크고 납작한 돌에 ‘파이팅 인천대 산악부’라는 문구와 함께 부가를 써 넣기도 했다. 아마 지금도 설보정 C1 어딘가에서 그 돌이 굴러다닐 것이다.
원구 형과 은경이가 힘을 내어 C1까지 올라왔고 윗 팀에 우리의 상황을 무전으로 보고했다. 가져온 짐을 데포한 후 먼저 내려가라고 하셨다. 하산은 그래도 올라오는 것보다 속도를 낼 수 있어서 다행이었다. 베이스 캠프에 거의 다 내려왔을 즈음 눈사태가 크게 일어나는 소리가 들렸다. 그 소리에 모두 놀라 뒤를 돌아봤고 무전을 쳤으나 아무런 응답이 없었다. 설마 아니겠지 하는 생각으로 베이스 캠프에 도착한 후 조금 있다가 무전을 받았다. C2(5천100m) 조금 전 지점까지 픽스 작업을 마치고 내려오는 길이라고 하셨다. 돌아온 후 얘기를 들어보니 엄청 힘들었다는 동우의 엄살 반 진심 반 뒤에 최상의 컨디션을 만들어야 C2까지 갈 수 있다고 대장님도 말씀하셨다. 그 말씀을 새기며 내일 모두 C2 텐트에서 볼 수 있길 바랐다.

원구 형은 어제보다 고소 증세가 조금 완화됐지만 재학이 형과 은경이가 조금 걱정이었다. 교수님이 쓰실 텐트 한 동만을 남기고 장비 정리를 해 패킹을 했다. 대장님이 각자 체력과 현 상황에 맞게 짐을 배분해 주셨고 간단하게 고사를 지낸 후 박승묵 씨와 연락관 아저씨의 격려를 받으며 출발했다.
무거운 동계 장비를 들고 있는 분들도 계신데 어제보다는 무거운 배낭 탓인지 자꾸 숨이 차서 계속 처졌다. 결국은 대장님 우군, 원구 형이 먼저 도착했고 그 다음으로 내가 도착해서 보니 C2로 올라갈 준비를 하고 계셨다. 공격조로 같이 출발하고 싶은 욕심은 있었지만 그러기에는 속도도 늦고 배낭 무게도 다른 대원에 비해 가벼웠다. 공격조가 누구인지 묻고 싶었지만 왠지 망설여졌고 답은 벌써 나온 듯했다.

 # 필사적인 정상 공격과 성공

공격조를 보내고 재학이 형과 은경이와 나는 텐트 안에서 시간을 보냈다. 재학이 형이 졸고 계시는 모습은 처음 봤다. 6시경 공격조로부터 7시쯤 C2에 도착해 텐트를 구축할 수 있을 것 같다는 연락을 받고 한시름 놨다. 그 소리를 듣고 밖에 나가 보니 저 멀리 능선 위에 조그맣게 사람이 서 있는 것이 보였다. 기쁜 마음에 사진을 찍고 우리도 내일 쓸 힘을 비축하고자 저녁을 먹고 차를 마셨다. 정상을 밟고 돌아오겠다는 긍정적인 생각만 하고 싶었지만 정상 공격은 이미 틀리지 않았을까 하는 걱정이 자꾸 스물스물 피어 올랐다. 쉬이 잠이 들지 않는 그런 밤이었다.

   
 
숙면을 취하지 못해서일까? 하룻밤 새에 꿈을 두 개나 꿨는데 좋은 징조였다. 내가 선두, 재학이 형이 라스트에 서서 한 시간 걷고 잠시 휴식을 취하며 천천히 운행했다. 출발 전 대장님이 무전으로 세 번째 픽스 로프는 길 표시만 해 놓은 정도이니 의지하지 말고 그냥 오라고 말씀하셨다. C2까지는 계속 너덜지대였고 중간중간 위험 구간에 픽스 로프를 유마(등강기)로 오르며 안전을 기했다.
앞 팀이 로프를 설치해 놓아 우리는 등반이 한결 쉬웠지만 앞 팀은 얼마나 힘들었을까 생각하니 죄송스러운 마음이 들었다. 마지막 로프에 다다랐고 마지막 오르막은 너덜이 심하고 경사도 가파르기 때문에 더욱 힘들었다. 다들 힘을 내서 올라 날카로운 능선을 따라 조금 올라가니 C2가 보였고 마침내 도착했다. 출발할 때 김동언 대장님이 무전으로 원구 형은 고소 때문에 정상 공격을 안 한다고 해 원구 형을 불러봤더니 아무 대답도 없으셨다. 상태가 호전돼 등반하신 모양이었다.
재학이 형은 고소 증세가 더 악화돼 힘들어 하셨고 은경이도 안 좋았지만 차차 좋아지는 듯했다. 하지만 이러고 있을 수만은 없었다. 배낭과 텐트 안의 짐을 정리하고 눈을 퍼다가 녹여 식수를 만들었다. 3시 반쯤 형들에게서 무전이 왔다. 모두 정상에 서 있다는 것이다! 은경이와 나는 함성이 절로 나왔다. ‘역시 형들!’이라는 생각과 함께 한국의 선배들, 후배들 모두 기뻐할 모습도 떠올랐다. 저녁 시간쯤 다시 온 무전에서 체력이 소모돼 C2까지 내려가는 데 시간이 걸릴 것 같다고 하셨다. <계속>

글쓴이 학·경력

1984년생. 인천대학교 일어일문학과 03학번 산악부 O.B
2005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정
2005년 동계 설악산 종주
2006년 중국 설보정 등반
현 ㈜리텍 해외영업부 소속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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