원정 기간 : 2006.07.02.~2007.07.13.

   
 

원정 대원 : 김준우 교수(원정단장)
          김재학(건축 83학번, 원정고문)
          김동언(토목 01학번, 등반대장)
          최원구(건축 02학번, 행정)
          김은경(무역 05학번, 장비·의료)
          전동우(무역 05학번, 식량)
          이민영(일문 03학번, 회계)
감수 - 박정동 인천대 중국학연구소 소장

 # 의미 있는 하산
 
원래 계획은 정상 공격팀이 C1(캠프1)까지 내려가기로 돼 있었으나 밖에 눈까지 내리니 얼마나 힘드실까. 빨리 무사히 돌아오시면 얘기를 듣고 싶었다. 하지만 시간이 흘러 날은 어두워지는데 오실 기미가 안 보였다. 저녁 8시 20분쯤 밖에서 무슨 소리가 들렸다. 공격조가 도착한 것이다! 은경이가 밖을 보더니 놀라했다. 한 번도 이런 모습을 본 적이 없는데 동우가 ‘픽’하고 주저앉았다는 것이다.
텐트 가까이 오시자 마자 “수고하셨습니다”라는 말씀을 전했다. 장비를 풀며 동우가 김동언 대장님한테 하는 말이 아직도 기억에 맴돈다. “동언 선배, 진짜 고마워요. 동언 선배 없었으면 못 갔을 거에요.”  동우가 이런 말 하는 것도 처음이었다. 2~3인용 텐트라 좁지만 너무 수고한 공격조를 위해 자리를 만들었다. 정말 세 분 다 너무 피곤해 보였다. 정상까지 가는 힘겨운 이야기를 들으며 국밥을 먹는데 그 먹성 좋은 동우가 놀랍게도 잘 뜨지를 못한다. 은경이의 재촉에 느릿느릿 국밥을 다 비우고 모두 누웠다. 아니, 서로에게 서로의 몸을 기댔다는 표현이 더 정확할까?
신기하게도 산악부에서는 불가능을 가능으로 바꾸는 일이 빈번했다. 현재 인원도 텐트 수용 인원의 두 배이고 남부럽지 않은 덩치를 가진 우리가 텐트 안에 있기엔 역부족이었지만 다른 방도가 없었다. 잤다 깼다를 반복하며 악몽 같은 밤을 보냈다.

   
 

더 이상 잠도 오지 않고 잠을 잘 수도 없는 상황이라 눈을 떴지만 서로 몸을 포개서 누워 있는 상태라 밖으로 나갈 수도 없었다. 사실 오늘은 후발팀의 정상 공격이지만 아쉬워도 욕심을 버려야 할 것 같았다. 모두 일어나 아침을 먹고 대장님이 말씀하셨다. 모두 BC(베이스캠프)로 가자고. 그럴 수밖에 없다는 걸 알면서도 아쉬운 마음은 어쩔 수 없었다. 오전 11시 30분쯤 C2를 출발했고 아슬아슬한 너덜지대를 내려왔다. C1에 도착해 잠시 휴식을 취한 후 남겨 둔 텐트와 짐을 배낭에 넣었다. 짐이 많아 다들 배낭에 마구 쑤셔 넣었다는 표현이 정확할 것이다. 지금 생각해 봐도 이제까지 메 본 배낭 중에 가장 무거웠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정도였다. 하지만 베이스 캠프까지는 금방이니 하산할 수밖에 없었다.
드디어 다 도착했을 때 원구 형이 쓰러져서 깜짝 놀랐다. 괜찮다고 하셨지만 힘이 다 빠지신 듯했다. 작년 원정 때도 그랬듯이 이번에도 내려오자 마자 모자를 벗고 한 명씩 독사진을 찍었다. 며칠간 씻지 못했기 때문에 머리가 떡지고 얼굴도 지저분하고 한마디로 진상이지만 그 나름대로 추억이 됐다. BC에 오니 너무 좋았다. ‘악몽 같은 밤’이라고 이름 붙이고 싶은 C2에서의 그 밤에 비하면 BC는 천국이었다. 어제 상납미로 내려가신 교수님이 센스 있게 코카콜라를 올려 보내셨다. 한 사람에 한 병씩 잡고 마시니 기운이 나는 것 같았다.

박승묵 씨와 연락관 아저씨의 축하를 받으며 함께 저녁 식사를 했다. 박승묵 씨가 해 주신 압력밥솥의 흰 쌀밥, 연락관 아저씨의 쓰촨성 고기 요리, 우리의 김치찌개. 진수성찬을 대접받고 차를 마시려는데 매일 모습을 보여주지 않던 설보정이 오늘에야 모습을 드러낸다. 그걸 놓치지 않기 위해 사진을 찍어 뒀다. 만감이 교차한다. 오늘로서 설보정에서의 일정은 마지막인데 정상을 밟지 못했다. ‘C2까지 갔으면 정상 갔다 온 거나 마찬가지지 뭐~ 5천100m나 5천588m나~’, ‘정상을 코앞에 두고 지금까지 준비한 게 아깝지도

   
 
않아?!’ 두 가지 마음이 복잡하게 얽혀 있었다. 하지만 우리 인천대 산악부의 이름으로 동언이 형, 원구 형, 우 군이 젖 먹던 힘까지 다해 다녀왔고 우리는 최선을 다했으니 그걸로 만족하고자 했다. 이제 원정에 대한 아쉬움은 버리고 남은 중국 여행을 즐기리라 다짐한다.

 # 정신적 성숙의 계기 설보정 원정

다시 기억을 되살리기 위해 보고서를 읽으니 감회가 새롭다. 100% 당시의 감정으로 되돌릴 순 없어도 90% 정도는 그때 원정에 대한 뜨거웠던 열정, 순수함이 느껴진다. 너무 힘들었던 시간조차 이제는 추억으로 다가오고 그때 경험했던 많은 일들을 통해 성장한 나를 발견할 수 있었다.
현재는 7대륙 최고봉 등정 사업을 성공리에 마무리 지었고 그에 조금이나마 보탬이 됐다는 생각을 하니 내 자신과 우리 인천대 산악부가 자랑스럽다. ‘단일대학 최초 세계 7대륙 최고봉 완등!’이라는 타이틀을 산악계 역사에 남긴 우리 산악부가 ‘행동하는 사람만이 성공한다’는 말의 표본이 아닌가 생각한다. 위험한 등산을 왜 하느냐고 묻는 많은 사람들에게 쉬운 길을 택하면 그 순간은 편하겠지만 남는 게 무엇이냐고 반문하고 싶다.

글쓴이 학·경력

1984년생 인천대학교 일어일문학과 03학번 산악부 O.B
2005년 아프리카 킬리만자로 등정
2005년 동계 설악산 종주
2006년 중국 설보정 등반
현 ㈜리텍 해외영업부 소속 재직 중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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