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효성 소설가

 밤 12시가 넘어선 시간인데 아이의 몸이 불덩어리다. 가슴이 철렁한다. 유난히 병치레가 잦은 유약한 아이라 이렇게 고열이 나면 걱정스럽다. 수화기를 들고 병원으로 전화를 건다. 밤늦은 시간에 죄송하지만 원장님 좀 바꿔 주십사 부탁을 한다. 잠이 덜 깬 목소리로 간호사가 해열제 먹이고 내일 진료시간에 오라고 대답한다.
그러다 전화기 저편에서 원장님 목소리가 들린다. 지체 말고 지금 오시라고. 애기 키우다 보면 아플 때가 제일 힘 드는 법이라고, 걱정 말고 병원에 데려 오라 하신다. 울 기운도 없이 늘어진 아이를 들쳐 업고 병원으로 달려간다. 잠자리에서 금방 일어난 모습의 원장님이 애기 키우는 일이 도 닦는 일보다 어렵지요 하시면서 웃으신다.

“잘 왔어요. 애기한테 고열은 아주 위험해요. 이렇게 잠깐 치료하면 바로 좋아지는데. 이 녀석, 얼마나 힘들었을까. 애태우지 말고 언제든지 와요.”
두 살 터울인 남매를 키우면서 가장 힘들었던 기억이 아이들 병치레였다. 바람 심한 인천 기후가 모세기관지염과 소아천식, 아토피까지 있는 두 아이에게 일 년 내내 감기를 달고 살게 했다. 감기가 들면 잘 낫지를 않아 기침이 심하고 고열에 폐렴을 동반하는 경우가 많았다.
아이들 진료 때문에 인천으로 분가해 와 살면서 가장 먼저 알게 된 병원이다. 독실한 크리스천이신 원장님은 우리가 살고 있는 아파트 옆 교회의 장로님이기도 하셨다. 새벽 기도를 열심히 다니시는 원장님이 우리 애 진료 시간에 늘 하시는 말씀이 있다. 너희들 건강하게 해 달라고 하나님께 기도를 많이 한단다. 건강해질 거야 걱정 마. 많이 먹고 예쁘게 잘 자라서 애태운 부모님께 효도해야 한다. 이렇게 골골 하면서 병치레 잦은 아이는 평생 아플 것 미리 당겨서 다 치러내서 건강하게 오래 장수할 테니까 너무 걱정 말라며 위로도 많이 하셨다. 그러면서 아이 하나 제대로 건사하지 못하고 쩔쩔매는 미숙한 엄마가 안쓰러워 보였는지, 큰 애인 아들을 당신이 키워주시겠다고 하셨다. 잘 돌봐 줄 테니 염려 말고 맡기라고. 학교 입학 할 때쯤이면 건강할 테니 그때 데려가면 어떠냐시는 원장 선생님 말씀은 한편으론 당황스럽고 한편으론 고맙고 그랬다.
병약한 아이를 둔 부모는 임신이나 육아에 뭔가 어설퍼 아이가 자꾸 병치레를 하는 게 아닐까 해서 아이에게 미안한 마음이 있다. 원장님은 어쩜 내 마음속을 들여다본 것처럼 눈치 채시고 엄마가 마음을 편하게 가져야 애기도 편안해진다고 조언도 많이 해 주셨다. 인천시내 큰 병원의 소아병동은 다 입원한 기록이 있는 두 아이가 이제는 건강한 청소년으로 잘 자랐다.
한 해를 마무리하는 연말이 되면 지난 세월 우리에게 고마움을 주셨던 분들은 누굴까 생각해 보게 된다. 가장 먼저 떠오른 분이 원장 선생님이었다. 일 년이면 거의 반을 병원에 다녔던 우리 애들이 이렇게 건강하게 자라 제 몫을 하는 것을 보니 원장 선생님에 대한 고마움이 가슴 가득 밀려왔다.
따뜻한 인술로 진료해주신 원장님 덕에 건강해진 우리 아이들이 남에게 작은 도움이라도 주는 사람으로 살아가기를 바란다. 작게는 일 년, 크게는 살아온 세월의 대차대조표에 나누고 줄 수 있어서 뿌듯한 결산이 되었으면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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