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신효성 소설가

“형님 너무 너무 잘 맞혀요. 와서 보고 간 것처럼 얘기하더라니깐요.”
바로 밑의 동서는 남편이 사업을 해서 그런지 철학관이나 점집을 자주 찾아간다. 사업은 변수가 많아 오늘 좋다가도 내일 어떻게 될지 모르니 불안한 마음을 다스리고 싶어서일 것이다. 가끔 만나면 효험 있는 곳을 다녀왔다고, 정말 족집게가 따로 없다며 신통해 한다.
올 세모에도 어김없이 신년운세를 보러가자며 바람을 넣는다. 얼마나 용한지 사람들이 줄을 서서 기다려야 하는 판이라 숙박업소, 음식점 등 주변 상가가 이 집 때문에 먹고 살 정도라고 하니 호기심도 생긴다. 예약 없이 가면 그날 보지도 못한다 해서 동서에게 예약 날짜를 주고 부탁했다.
며칠 후, 전국에서 찾아온다는 유명한 점집을 가기 위해 일찍 집을 나섰다. 전철을 몇 번 갈아타고 마지막 역에서 내려 동서를 만났다. 대단지 아파트를 마주한 큰 길에서 비껴나 골목길을 한참 걸어가서야 점집이 있었다. 동서는 찾아가는 내내 이 집이 얼마나 유명한지 실례를 들어가며 설명을 했다. 지방에서 오는 사람들은 번호표 받고 여관에서 자고 기다렸다가 볼 정도라고 하니 혹시 좋지 않은 말이라도 들으면 어쩌나, 긴장이 됐다.

간판도 없이 대나무만 꽂아 놓은 기와집은 생각 외로 소박했다. 잠깐 실망감이 밀려왔다. 문전성시를 이루는 점집인데 그 많은 돈 다 뭐하고, 진짜 용한 만신이 맞기는 하나? 갈등이 생겼다. 낮은 대문을 들어서 나무 평상에 앉아 순번을 기다렸다. 예약제로 진행해서 그런지 기다리는 사람이 많지 않았다. 밤 기차로 와서 근처 모텔에서 잠깐 눈붙이고 왔다는 입담 좋은 남도 아주머니 한 분과 깔끔한 양복차림인데도 어딘가 가난기가 묻어나 보이는 중년의 신사, 명품으로 차려 입은 가정주부 이미지는 아닌 사십 대 여인, 그리고 나와 동서가 전부였다. 접수를 보는 분이 누런 갱지에 네 명까지 생년월일과 이름을 적으라고 했다. 기본 네 명은 봐 준다고 선심 쓰듯이 말했다. 방안에는 오직 본인만 들어갈 수 있어 철저히 개인 프라이버시를 존중해 주었다. 세상사 온갖 고민을 안고 온 사람들이라 타인에게 치부를 드러내고 싶지 않은 심리를 이를테면 잘 관리해 주는 것이었다. 나오는 사람 얼굴빛을 살피며 방안에서 들리는 소리에 귀를 세워 봐도 내용을 알아들을 수가 없었다. 차츰 내 순서가 가까워지자 긴장이 됐다. 괜히 벌 받으러 온 학생처럼 불안해졌다. 남이 알아서 자랑스러울 일도 수치스러울 일도 없이 살아온 것 같은데 신경이 쓰이면서 예민해졌다.

들어선 방은 울긋불긋한 색으로 신당이 차려져 있고 눈빛이 예사롭지 않은 무속인은 다짜고짜 비방을 해야 된다고 겁을 준다. 2010년부터 운발이 좋아진다는 우리 가족을 위해 적잖은 돈을 내고 부적을 받았다. 경명주사의 붉은 기운이 정말 액운을 막아줄 것처럼 보여 잘 받아들고 나왔다. 일종의 자기최면인 것 같다. 미래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법인데 잘될 것이라는 소망으로 살면 어려움도 견딜 만하고 동기부여도 돼 나쁠 것도 없겠다는 생각으로 나를 합리화해 본다. 인천으로 돌아오면서 생각하니 피식 웃음이 나왔다.
어깨너머로 바라본 세상은 언제나 당당했다. 세상은 거인의 팔뚝처럼 완강하고 만복감을 느끼지 못하는 허기에 피곤해졌다. 과잉과 결핍이 공존하는 시대에 냉정히 자르고 넉넉하게 품는 데 타이밍을 놓쳐 의기소침해질 때도 있다. 삶을 문제해결의 연속이라 했던 이가 문득 생각난다. 한 호흡으로 단숨에 내리긋는 세상은 재미없다. 세상이 던지는 거친 질문을 막아주는 인연이 있고 훌륭한 플라시보 역할을 해주는 내 안의 목소리도 있어, 우리의 삶은 희망적이다.
신년운세를 보려고 먼 길을 다녀온 나는 마음이 많이 허했었나 보다. 내년엔 내면의 발효를 시작해 잘 익어가는 한 해를 만들어야겠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