폭이 꽤 넓었던 개울에는 띄엄띄엄 디딤돌들이 놓인 징검다리가 있었다. 디딤돌들은 높고 편편해서 딛기가 편해 보이는 것이 있는가 하면, 위로 삐죽이 솟아 조심스러운 것도 있고, 또 물이끼가 끼어 딛기가 망설여지는 것도 있고, 옆으로 기울 것 같아 조마조마한 것도 있어 성큼성큼 건널 수 있는 만만한 징검다리가 아니었다. 나는 지금도 징검다리 앞에 서면 아득한 물 건너를 바라보며 어떻게 건널까 마음 졸이던, 30년도 더 지난 어린 시절의 내 모습이 떠오른다.

여름방학을 하면 으레 달려갔던 외갓집 동네에는 만만히 볼 수 없는 폭이 아주 넓은 큰 개울이 옆구리를 두르며 흘러가고 있었다. 동네 앞쪽 모퉁이를 돌면 작은 여울이 있고, 그 여울을 폴짝 뛰어 건너 서면 곧 큰 물줄기가 넓게 퍼져 흐르던 그 개울과 만났다. 그리고 개울을 건너면 원두막이 있는 참외밭이 있었다. 외가 동네 아이들은 그 물가에서 많은 시간을 보내며 놀았다. 나도 늘 그 속에 끼었다. 물장구치고 소꿉놀이하고 물고기 잡고 놀다가 아이들은 성큼성큼 징검다리를 건너갔다. 가끔은 발을 헛딛거나 미끄러져 물에 빠지기도 했지만 아이들은 별로 마음에 두지 않은 듯했다. 그러나 나는 징검다리를 건너기가 쉽지 않았다. 징검다리 중간쯤에서 다음 디딤돌의 어디쯤에 발을 디디면 안전할까 가만히 쳐다보고 있으면 돌멩이에 부딪쳐 흐르는 물살이 어지러워 물속으로 확 빠져들 것 같았다.
한번은 진짜 기우뚱 넘어져 소매 없는 원피스를 몽땅 적시고 공포심에 울음을 터뜨린 적이 있었다. 나일론 소재의 원피스는 물살에 떠올라 얼굴과 팔에 감겨 중심을 잡을 수가 없었고 솔솔 들리던 물소리는 무서운 기세로 와랑와랑 귓가를 울렸다. 극도의 공포심으로 자제력을 잃은 나는 이러지도 저러지도 못한 채 두려움에 울음을 터뜨렸다. 몸은 물살에 떠밀려 허우적거리는데 저 앞엔 바닥을 숨긴 채 검푸른 빛으로 삼킬 듯 기다리고 있는 소(沼)가 보였다. 어쩌면 얕은 보(洑)였는데 내겐 공포로 다가와 소(沼)처럼 보인 것인지도 모른다.
무서웠다. 몇몇 아이들이 첨벙첨벙 물속으로 달려와 손을 잡아 주었다. 이쪽으로 오른발 내밀어 저쪽으로 왼발 내밀어, 걱정하지 마. 수치심과 무서움이 범벅이 돼 들이킨 물을 게워 내랴, 찔끔찔끔 눈물을 짜랴, 하면서 아이들 손을 잡고 징검다리를 건넜다. 구경하던 한패의 아이들은 바보야 울보야 놀려대면서 조약돌을 내 앞으로 던져 약을 올렸다. 내가 두려워 힘들게 징검다리를 건너고 있는 동안 먼저 건넌 아이들은 시원한 나무 그늘로, 참외밭 원두막으로 들어가 편하게 자리를 잡고 앉아 뒤쳐진 나를 화젯거리로 삼으면서 느긋한 휴식과 달콤한 먹을거리를 즐기고 있었다. 아직도 돌다리 위에 비척거리고 있던 나는 문득 비장한 결심을 했다. ‘난 건널 수 있어. 건너갈 수 있단 말이야.’ 나에게 최면을 걸면서 용기를 냈다. 그날 이후 나는 혼자서도 돌다리를 건너다닐 수 있었다. 그러나 물에 빠졌던 기억은 징검다리 앞에 설 때마다 두고두고 두려움과 공포로 나를 힘들게 했다.
우여곡절을 겪으며 건너던 어린 시절의 그 징검다리는 지금 내 마음속 삶의 큰 물 위에 놓여 나에게 건너오라고 손짓하고 있다. 앞으로 내가 건너갈 삶의 너비가 얼마나 되는지 또 몇 번의 다리를 건너야 할지 알 수는 없다. 때로는 두려움으로 또는 절망으로 물살 센 개울 앞에서 서성거릴 때 마음 밑바닥에서는 ‘힘 내. 혼자서도 건널 수 있어. 용기를 내 봐.’ 하는 귓속말이 들려오기도 하는 것이다.
뒤를 돌아보면 낯선 사람들과 관계를 만들기 위해 징검돌 하나에 발을 얹었고, 해 보지 않았던 일을 시작하면서 조심스레 또 한 발을 얹어온 세월이었다. 문학이라는 개울 앞에서도 두려움에 떨면서도 욕심의 한 발을 내딛으며 소용돌이치는 소 앞에 서 있는 내가 보였다. 이렇게 건너기 힘든 징검다리를 건너고 나면 위안이 돼 줄 무엇인가가 기다리고 있을 것만 같은 기대감이 있어 나를 좌절하지 않게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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