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선생님, 제 마음을 전하는 것이니 복용하시고 건강하세요.”
독서지도를 해주었던 한 학생의 어머니가 한의사이다. 갱년기 증상인지 올해는 겨울에서 봄으로 넘어오는 환절기를 심하게 앓았다. 감기도 달고살고 몸 여기저기가 편하지 않아 많이 힘들었다. 학생 어머니와 가끔 전화 통화를 하면 건강하시냐고 안부를 묻곤 했다. 그러더니 어제 한약을 택배로 보내왔다. 정성들인 편지까지 동봉한 약상자를 열어보고 돈으로 환산할 수 없는 고마움에 마음이 찡했다.

서울 학생의 집과 내가 사는 곳의 거리가 멀어서 다니기가 힘들었는데 아이가 열심이라 성심을 다했었다. 자신에 대한 자존을 키우고 세상과 공감할 수 있는 가슴을 열어두는 수업을 하면서 아이도 어머니도 좋아했다. 이런 정서적 공감이 서로의 존재를 귀하게 여겨 마음 나누는 연으로 이어진 것 같다. 세상을 화목하게 사는 법을 이야기하면서 나도 스스로를 점검하고 다잡는 계기가 되었다. 지식을 주고받는 관계가 아닌 마음을 나누는 친밀을 쌓아가면서 아이와의 수업이 뿌듯했던 시간이었다.

처음 대면했을 때 아이는 경쟁의 장기화로 지쳐 있었다. 지역적으로 교육열이 높은 곳이라 초등학교부터 치열한 성적관리에 스트레스가 심했다. 같이 어울리는 친구들도 예전 우리처럼 운동장에서 함께 뛰어 노는 친구가 아니고 같은 학원생이거나 같이 그룹으로 공부를 배우는 아이들끼리 어울린다. 물론 엄마들의 친분도 교우관계에 영향이 크다. 상위권 아이들은 누가 뭘 어떤 선생에게 배우는지 촉각을 세우고 엄마들은 엄마들대로 세상의 온갖 정보를 캐치해 내 아이가 최상의 성적을 낼 수 있는 방법이 무엇인지 탐구한다. 그러다보니 아이들은 아이다운 천진함이나 아이다운 놀이문화를 접할 기회가 많지 않아 이기적이고 자만심 가득한 어른으로 커 가는 것 같다.
처음 아이와 만났을 때 나를 분석하려고 아이는 긴장하고 있었다. 과외 하는 시간에 가장 효과적으로 얼마나 많은 지식을 가져갈 수 있을지 손익계산에 대차표를 만들면서 나를 관찰했다. 까칠한 분석에 몰입한 아이의 속내를 열어 굳어진 정서를 말랑하게 만드는 시간을 가지고 싶었다. 한 달이 가고 두 달이 가면서 아이는 편안해진 모양이다. 여러 이야기를 사심 없이 털어놓는 모습이 아이다워 좋았다. 엄마 아빠에게 차마 못할 이야기도 나한테는 편하게 했다. 내심 어리다고 가볍게 여겼던 아이의 마음이 안쓰럽고 때로는 기특해 아이를 마음으로 안아 어루만져 주었다.

아이는 똑똑했다. 기대하고 요구하는 부모님의 믿음이 부담스럽고 친구들과의 경쟁에 허투로 낭비할 시간이 없다고 투덜거리면서도 아이다운 천진함으로 나를 웃게 만들었다. 세월의 간격을 뛰어 넘어 친구도 되고 스승도 되고 엄마도 되고 다역으로 공감하는 시간을 서로 즐기게 되었다. 그러다보니 의기투합해 신뢰를 쌓아가고 함께하는 시간이 유쾌해진 것이 보상으로 주어졌다. 아이도 나도 긍정의 관계로 함께하는 시간을 즐겼다. 의기투합이 이렇게 딱 맞아 떨어지는 행운이 되었다. 우리는 서로에게 보약이었다.

보약은 말그대로 몸을 보해 기운을 돋우고 몸뿐만 아니라 마음까지 건강하게 다스리기 위해 먹는 약이다. 기력이 딸리면 심신이 부실해지고 그러면 정당하게 세상을 대하기가 버거워진다. 마음이 건강하지 못하면 적대감이 세를 불리다가 불쾌한 사건을 만든다. 우리 삶에서 때로는 적절한 처방도 약도 필요하다. 오용이나 남용이 아닌 보약은 몸에도 마음에도 이롭다. 마음의 보약 한 첩, 세상사람 모두에게 드리고 싶다. 학생 어머니가 보내준 이 보약을 먹고 마음에 보약이 되어 내 가슴이 봄처럼 화사하게 피어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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