벤치는 사람들이 다니는 공원길에서 잘 보이지 않는다. 길의 모퉁이를 돌아서 공원길 바깥쪽으로 눈을 돌리면 작은 나무가 서 있는 경사면 아래 놓여있는 벤치가 보인다. 어느 날 그 벤치가 눈에 들어왔다. 으슥한 장소라고 볼 수는 없어도 사람들의 관심을 받지 못하는 위치에 있어 벤치는 원래의 쓰임대로 역할을 못하는 편이다. 가끔 남녀가 앉아 농도 짙은 스킨십을 하거나 청소년들이 술 마시는 장소로 이용되었다.
벤치의 외양은 보기에 호감이 아니다. 짙은 암청색 철재 다리와 등받이가 복잡한 곡선으로 받치고 있다. 앉은 판은 7개의 판자를 이음새가 보이게 붙여 놓았다. 나는 그 벤치를 볼 때마다 불편했다. 앉아보면 판자 이음새 틈이 커서 엉덩이가 배긴다. 등받이는 2cm 정도의 굵기를 가진 철선이 꿈틀거리며 얽켜있다. 다리로 내려오는 부분은 조금 굵어졌지만 얽켜있는 모양은 같다.
나는 저녁 어둠이 내릴 무렵이면 간단한 운동복 차림으로 와서 걷기 운동을 했다. 몇 바퀴 돌다 힘이 빠지면 그 벤치에 앉아 쉬었다. 엉덩이가 배겨 불편하기는 해도 길 쪽에는 가로등이 밝아 지나다니는 사람들이 잘 보여서 안심이 되었고 벤치는 적당한 어둠으로 고즈넉했다. 혼자 사색을 하기에 안성맞춤인 장소다.
그 남자를 본 것도 벤치 앞이다. 운동하는 사람들이 드문드문 보이는 저녁 무렵 그는 뒤돌아서서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공원 구석에 외따로 떨어져 있는 벤치 앞에 선 그의 뒷모습은 무리에서 쫓겨난 들짐승처럼 불안하고 서글퍼 보였다. 그의 색소폰은 제대로 된 음을 내지 못했다. 웩~ 하는 단발마 소리를 내지르다가 곧 꺼져버렸다. 근처를 지나가는 사람들은 소리의 진원지를 찾다가 남자를 발견하고는 되풀이 되는 괴성에 웃음을 터트렸다. 나는 그 남자가 마음쓰여 일부러 그쪽을 피해 다니기도 했다. 일주일에 서너 번 가는 공원에서 나는 매번 그를 만났다. 매일 개근을 하는지 규칙적이지 못한 요일 선택을 해도 늘 그 자리에서 색소폰을 불고 있었다. 남자는 소심했지만 끈기가 있어 나는 그의 펜이 되었다. 무심한 척 하면서도 신경은 그쪽으로 집중되었고 근처에 가면 일부러 속도를 늦추어 천천히 지나갔다. 그의 연주는 문외한인 내가 듣기에도 진도가 느렸다. 두 계절이 지나도록 그의 연주는 사람들을 웃게 만들었다. 안타까운 마음에 운동화 끈을 묶는 척 앉아서 남자의 연주에 응원을 보내기도 했다. 언젠가는 청중의 가슴을 울릴 그의 연주를 듣게 될 날이 올 것이라고.
날씨가 조금씩 차가워지는 계절이 오자 나는 저녁 운동을 그만 두었다. 가끔 색소폰의 주인공이 생각났지만 곧 내 일상에서 잊혀져 갔다. 계절이 바뀌어 또다시 봄이 왔다. 겨우내 두툼해진 뱃살을 빼고 산들한 봄바람도 느끼고 싶어 공원으로 걷기운동을 나갔다. 벤치가 보였다. 색소폰 남자는 보이지 않고 벤치는 어스름한 저녁 하늘을 이고 비어 있었다. 화평한 관계는 상대에게 감정이 들어있는 요구를 하지 않는 것이란 말이 문득 생각났다.
나는 벤치로 다가가 불평했던 자리에 앉아 보았다. 여전히 엉덩이가 배겨 편하지는 않았다. 그래도 이곳에서 마음을 쉬었고 피곤한 다리도 쉬었다. 그 남자는 사람들과 마주할 용기가 없어 돌아서 색소폰을 불었다. 탁월한 재능을 가지지는 못했지만 이곳에서 좌절하며 포기하지 않게 잡아준 것이 벤치였던 것 같다. 목 좋은 곳에 놓인 편안한 벤치였다면 나에게도 그에게도 차례가 왔을까? 모소의 대나무까지는 아니어도 지금쯤 그는 제대로 된 색소폰 연주자가 되어 있을 것이란 확신이 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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