자고로 작가는 엉덩이가 무거워야 한다는 선배 작가의 말에 공감을 하면서도 진득하게 창작에 몰입하지 못하는 자신에게 화가 나곤 했다. 헐렁하게 보낸 시간이 아쉬워 속을 끓이며 흘려버린 긴 세월 뭐 했었나 반성만 열심이다. 부여받은 소질이나 천재성은 애당초 내 것이 아니고 평범에서 조금 감성적일 뿐인 능력을 연마하는 데는 게을렀다. 오늘은 이래서 시간을 낼 수 없고 어제는 저래서 글 쓸 시간이 없었고 핑계도 변명도 나름 이유는 있다.
일취월장한 후배를 보면 대견하고, 비례해 내가 부끄럽다. 명작을 쓰지 못하는 작품의 질이 아닌, 성실과 몰입의 실종에 대한 부끄러움이다. 주어진 시간의 양은 평등인데 질은 천차만별이다. 질의 고저는 결국 자기가 만드는 것이라 결과에 불평이 없어야 하는데 아니다. 고품질보다 조잡한 저급의 역사를 만든 이들이 불만도 핑계도 탓도 많다. 나도 그 중의 한 사람이다.
최근에 모임에서 은발이 아름다운 일흔일곱 살의 할머니를 만났다. 영어는 물론이고 일어와 중국어에 유창한 그 분을 뵈며 존경심이 뭉클 솟구쳤다. 모든 공적 행사에서 물러나 맞이한 환갑날, “어머니 이제 좀 가만 계세요. 조용히 계셔주는 것이 저희 돕는 일입니다.” 아들도 딸도 며느리도 모두, 뒷방으로 물러나 주는 밥이나 먹고 참견하지 말라는 부탁을 완곡히 하더란다.
그러나 가만 듣고 보면 철지난 노인네 참견이 신경 쓰이고 피곤하다. 똑똑하고 능력 있는 우리 주장대로 할 것이니 제발 감 놔라 대추 놔라 하지 마세요. 늙은이 간섭이 잔소리로 들리니 알아도 모르는 척 반송장으로 사시오. 그게 피차 서로 얼굴 붉힐 일 없이 화목한 가정을 만드는 일입니다. 아셨죠? 하는 압력으로 들리셨단다. 일견 맞는 말이란 생각이 들다가도 불끈 화가 치밀어 참을 인(忍)자를 수도 없이 가슴에 새기셨다고 하신다.
오지랖 넓어 첨벙 덤벙 달려들었기에 니들이 여기만큼 왔지, 안 그랬으면 어림 반 푼어치도 없는 일이다. 기를 쓰고 주입을 시켜도 알아요 압니다. 그 은혜 백골난망이라 이제부터는 편안히 모실 테니 나서지 좀 마시라고요. 시큰둥한 반응에 맥이 빠져 일주일을 꼬박 지독한 몸살로 앓다가 일곱째 날 벌떡 일어나서 득도를 했다 하신다.
오냐, 7년 살고 과부 되어 자식 셋에 시부모 시누이 시동생까지 열 식구 거두느라 억척이 되었는데 늘그막에 공주로 살아보자. 그것도 괜찮은 팔자로세. 그런데 직장 다닌답시고 집안 꼴 헝클어지고 하나 둘뿐인 자식 때맞춰 밥 챙겨주지 못하고 지들끼리 삐걱거리며 다투는 꼴 보기 싫어 이참에 잘 됐다 방 얻어 독립을 하셨단다. 봉사도 다니고 못 배운 한 풀어야지 외국말도 배우고 다리 힘 있을 때 여행도 다니고 그렇게 살다보니 희수가 되었다며 환한 미소를 지으셨다. 기쁠 ‘희(喜)’. 희수(喜壽)는 내가 만든 나이라며 너무 즐겁고 행복하다 하셨다. 77세 연세에 곧고 건강한 몸으로 예쁜 할머니로 사시는 모습이 좋아보였다.
“니들 나이면 뭘 못하겠냐. 내가 그 나이면 폭주족도 돼 보고 오지여행도 다니고 천지간에 두려울 것 없이 도전하며 살겠구먼.” 할머니의 거침없는 입담이 유쾌했다. 늦은 나이에 하기는 뭘 해. 지레 기죽어 의기소침했던 마음이 기를 받아 둥실 떠오른다. 그래 도전이다. 헐렁하게 보내버린 시간이 아까워 후회에 얼굴 묻지 말고 과감하게 도전해 보자. 안되는 게 어디 있어. 정 하다 안 되면 쉬었다 가면 되는 것이지. 내 계획을 머리에만 넣고 이고 다니느라 무겁다고 낑낑거리지 말고 몸으로 실천하자. 당장 오늘부터. 돌아와 늦은 밤에 운동! 창작! 혼자여행! 노트북으로 작성한 행동실천강령을 인쇄해 벽에 붙이고 당장 시작했다. 야밤에 웬 수선이냐는 가족들 따가운 눈초리쯤은 무시했다. 어차피 엉성했던 지난 세월 애면글면 속 끓이지 말고 지금부터 알차게 시작이다. ‘나무심기에 가장 좋은 날은 20년 전이고 그 다음이 바로 오늘이다.’ 할머니 말씀이 명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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