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른의 나이는 완벽의 고정보다는 아직 시행착오의 시기다. 세상에 대한 열정과 관심은 많지만 설익어 떫은맛이 난다. 하지만 서른 그녀는 당차고 성실했다.

어떤 분야나 정상에 오르기는 어렵다. 겨우 10% 내외만 최정상이 아닌 7부 능선 주변까지 오른다고 한다. 대다수 나머지는 좌절을 겪으면서 초기의 의욕이 사그라지고 은연중 나는 안 되는구나 자포자기 하게 된다. 하지만 그녀는 달랐다.

오래 걸으면 발톱이 옆 발가락을 파고드는 신체 이상이 있어 되도록 걷지 않았다는 그녀다. 보험 FC 일을 하면서 그녀는 많이 걸었다. 짧은 시간에 탁월한 영업실적으로 업계에서 선망의 대상이 되었다. 하지만 그녀의 발가락이 흘린 피를 기억하는 사람은 많지 않다.
신입으로 영업을 시작하면서 그녀는 스스로 자기를 관리하는 매니저가 되어 하루하루 성실하게 보내려고 했다. 헛되이 낭비되는 시간이 없이 하루를 마감하면 한없이 대견해 자신에게 상을 주었다. 상이라고는 했지만 물질이 아닌 정신의 충족감에 대한 보상이었다. 그녀는 거울을 보면서 거울 속 자신에게 최대의 예우를 갖추어 칭찬을 했다. 칭찬의 말을 들으면 에너지가 솟았다. 그런 날은 가슴이 터질 것 같은 충만감에 하루의 피로도 날아갔다.
계획한 열 명의 고객을 만나고 그녀는 서울에서 막차를 탔다. 그녀가 사는 경인지역 어느 도시에 도착할 때까지 그녀는 오늘의 목표를 완성했다는 만족감에 행복한 내일을 다시 설계했다. 단 1분도 허비하지 않은 하루! 그녀는 보람차게 보낸 하루가 행복했다. 발가락에서 흘러나온 피가 구두바닥에 말라붙어 흔적이 끔찍했지만 아픈 줄 몰랐다. 그 흔적을 누구에게라도 보여주고 자랑하고 싶었다.
내일 하루를 위한 계획의 점검을 끝내고 새로 2시를 넘어선 시각에 그녀는 거울 앞에 섰다. 자신을 바라보는데 눈물이 주르륵 흘렀다. 자랑스럽고 뿌듯해서다. 살아온 30년 동안 오늘은 단 1분도 허비하지 않은 하루였다. ‘나는 오늘 내 인생 성공 스토리 한 쪽을 썼다.’ 그녀는 큰소리로 외쳤다. 
그녀는 학벌에 주눅 들고 가정형편에 찌들어 날개를 펴 하늘을 날아볼 기회를 가져보지 못했다. 그녀는 무기력해져갔고 꿈은 빛을 잃어갔다. 그래도 계절은 끄떡없이 돌아가 생기 가득한 봄이 왔다. 서민 아파트 갈라진 시멘트 벽 틈에 여린 싹이 돋아난 것을 봤다. 그녀는 코웃음을 쳤다. “용 써봐야 도루묵이다. 얼마나 버틸 건가 두고보겠다.” 그녀는 괜한 심술이 나서 그 어린 싹을 비웃었다. 여름 무더운 날, 1층 베란다에서 비오는 창밖을 무료하게 내다보는데 웬 덩쿨 식물이 나무를 타고 무성하게 뻗어 있었다. 꽃이 피어있고 콩 꼬투리도 달려 있었다. 그녀는 머리가 번쩍했다.
재작년 가을, 하늘은 맑고 바람은 산들 한데 우중충한 일상은 벗어날 기미가 없고 하릴없이 긴 시간은 우울하기만 했다. 할머니가 사온 콩을 까다가 궁상스러운 삶에 화가 치밀어 까 모은 콩을 창 밖으로 던졌던 기억이 났다. 시멘트 벽 틈으로 떨어진 콩은 용케 뿌리를 내렸고 꽃도 피웠고 열매까지 달았다. 그녀는 머리에 번개를 맞은 듯 충격이 왔다. 콩 싹은 그녀에게 힘을 주었다. 그녀는 의욕을 되찾았고 고심 끝에 손잡은 일이 보험 영업이다.
“제가 하는 영업은 상품을 파는 게 아니라 고객의 마음을 알아서 그 고객이 최대한 행복하도록 돕는 것입니다.”
상투적인 이 말이 가슴에 와 닿는 것은 그녀의 진심이 전해지기 때문이다. 어떤 일이 가치 있어지는 것은 그 일에 최선을 다할 때 일 것이다. 당연한 결론이지만 명품 자서전은 본인이 만드는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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