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연천】“평생을 농사만 짓고 살아온 우리에게 농사를 못 짓게 하는 것은 죽으라는 것과 마찬가지입니다. 제발 저희 농지만이라도 경작을 할 수 있도록 선처해 주십시오.”
연천군 군남면 선곡리에 거주하는 용모(72)씨와 마을 주민들은 평생을 벼농사만 짓고 살아온 농민들이다. 용 씨와 마을 주민들은 농사를 통해 번 돈으로 자식들을 공부시키고 결혼까지 시켰으며, 용 씨의 아들과 친척들도 민통선 내 농경지에서 벼농사를 짓고 살아가고 있다.

하지만 용 씨와 마을 주민들은 이제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게 됐다. 국방부 토지에 농사를 짓게 해 주겠다는 개간업자의 말에 속아 농지를 구입했지만 이 지역을 관할하는 육군 모 사단에서 경작을 제재해 더 이상 농사를 지을 수 없는 상황에 처한 것이다.

21일 육군과 용 씨 등에 따르면 벼농사를 위해 농지가 더 필요했던 용 씨와 마을 주민들은 개간업자 B(55)씨에게서 “국방부 토지의 석재 채취 및 농지개발허가를 받아 놓았으니 토지 개간 비용만 주면 벼농사를 할 수 있는 농지를 만들어 주겠다”는 말에 연천군 중면 적거리 1042번지 등 10필지, 2만6천400㎡에 대한 농지 개간 공사계약을 2009년 4월 9일 체결하고 계약금 2천만 원을 지불했다.

그러나 개간업자 B씨는 군부대에서 불법 개간이 적발돼 개간 허가 취소와 국방부 토지를 원상 복귀시키라는 통보를 받았다. 이 사실을 알게 된 마을 주민들은 B씨에게 공사 중지와 계약금 반환을 요청했지만 B씨는 계약금 반환은 하지 못하며 군부대 관계자들을 만나 해결할 수 있으니 3천만 원을 추가로 요구했고 마을 주민들은 농사를 지을 수 있다는 희망에 B씨에게 돈을 건넸다.
그 후 개간이 완료된 토지에 1년간 벼농사를 지었고 올해 3월 용 씨의 조카(44)는 전 소유주에게서 농어촌기반공사를 통해 이 일대 토지를 구입했다.

하지만 용 씨와 마을 주민들은 군부대에서 농지 일부분이 국방부 소유의 토지를 침범하고 훼손했다며 이를 복구하지 않으면 농사를 지을 수 없다는 통보를 받았다.

용 씨는 마을 주민들과 함께 군부대를 찾아다니며 전체 농지 중 개인 소유의 농지만이라도 농사를 짓게끔 해 달라고 부탁했지만 기존 불법 개간지역을 원상 복구하고 재협의를 통해서만 농사를 다시 지을 수 있다는 답변이 메아리로 돌아왔다.

용 씨는 “국방부 땅도 아닌 우리 땅에도 농사를 못 짓게 하는 것이 말이 안 된다”며 “농사를 시작하려는 시점에 경작을 제재하는 것은 전업농민에게 죽으라는 것과 다름없다”고 분개했다.

이어 그는 “농사를 위해 준비한 모판 1천600개를 사용도 못해 보고 모두 폐기했다”며 “두 번에 걸쳐 준비한 모판 값과 인건비만 수천만 원에 이른다”고 울먹였다.

한편, 육군 관계자는 “군 입장에서는 민간인과 민간인의 거래에서 발생한 일이기 때문에 원칙을 고수할 수밖에 없다”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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