딸을 잃은 어머니는 10년이 지난 지금도 가슴이 미어진다. 한나절을 그분의 가슴에서 살고 있는 막내딸 이야기를 들었다. 눈 앞에 생생한 현장을 중계하듯 딸은 선명하다. 꽃다운 나이에 홀연 가버린 여고생 딸은 지금도 17살 고운 어리광으로 아버지 출근을 배웅하고 언니들 일상에 참견을 하고 엄마의 꿈속에서 애교를 부린다.
당뇨와 신장이 그녀를 힘들게 해도 그녀는 딸을 추억하며 행복하다. 싱크대 앞에서 음식을 만들고 있으면 살포시 다가와 뒤에서 끌어안고, 엄마를 불러 돌아보면 어느새 숨어서 “나 여기 있어 찾아봐.” 장난을 친단다. 환갑이 가까운 나이가 되었지만 엄마는 막내딸과 손잡고 40대를 산다.

조근조근한 목소리로 들려주는 사랑스러운 막내딸의 일화는 현재 진행형이고 가족들 모두 현실로 받는다. 생의 무상함을 뼈에 사무치게 경험한 두 언니는 미혼으로, 부모는 악착을 버린 선함으로 죽은 딸을 기리며 살아간다. 누구의 삶이 정답인지 선뜻 판단할 수 없다.
기온이 갑자기 내려가 한낮에서 기울면 서늘하다. 이른 가을바람에 잎이 하나둘 떨어진다. 마음이 방황하고 사색하며 깊어진다. 죽음도 가깝다. 조락의 계절이 심리에 영향을 주는 모양이다. 아주머니는 서늘해지는 이 계절이 불편하다. 그러면서도 죽은 딸 정아는 좋은 곳에서 잘 살고 있다고 믿는다. 환생을 보는 선사에게 찾아가 딸의 모습을 보게 해 달라 무작정 매달렸더니 이생의 연은 여기로 끝이라 다음 생을 위해 기도하며 도를 닦아가라 했다 한다. 그녀는 딸을 만날 준비로 기도하고 선을 행하며 끝없는 보시를 한다. 다음 생에서는 긴 인연을 이어줄 튼튼한 끈을 만들어 가고 있다.
신라 경덕왕 때의 승려 월명사가 지은 향가(鄕歌) 「제망매가」가 생각난다.

제망매가(祭亡계(季)녀(女)妹歌)/ 월명사

삶과 죽음의 갈림길은
여기에 있는데 두려워하면서 ‘나는 갑니다.’라는 말도
미처 다하지 못하고 (저승으로)갔느냐?

어느 가을 이른 바람에 여기저기 떨어지는 나뭇잎처럼
같은 가지에서 나고 가는 곳을 모르는구나.

아! 미타찰에서 (너를)만나 보게 될 나
도를 닦아서 (다시 만날 날을) 기다리겠노라.

같은 부모에서 태어나 죽음으로 이별한 남매의 모습을 한 가지에서 나서 흩어지는 낙엽에, 누이의 요절을 이른 바람에 떨어진 나뭇잎에 비유한 빼어난 서정성을 지닌 향가라고 배웠던 이 시가 사뭇 절절하게 다가온다. 누이의 명복을 빌며 신앙을 바탕으로 초극하려는 자세를 보인 월명사의 노랫말처럼 아주머니네 가족도 집안의 마스코트로 행복을 주었던 막내 정아의 명복을 빌면서 일상을 산다. 다만 정아를 억지로 보내려 하진 않고 생활 속에서 인정할 뿐이다. 같은 동 같은 라인에서 5년을 살면서 속내를 처음으로 보여준 아주머니가 애잔하다.
밤새 뒤척이며 밤을 새웠다. 새벽에 비가 내린다. 이 비가 그치면 가을이 완연해 질 것이다. 지인의 남편이 세상 뜬 전화를 받았다. 생이 있으면 멸도 있는 법, 빠르고 늦은 시차만 다를 뿐 누구에게나 공평하다고 마음을 추스르려 애를 써 본다. 잠을 설친 눈꺼풀이 무겁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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