와불을 보러 간 길. 운주사 주변 석불을 다 모우면 70여 기다 아니다 90여 기다. 설명하는 이들마다 숫자가 다르다. 그만큼 많이 산재해 있다는 뜻일 게다. 꼼꼼히 세어보지 못해 50기를 채우지 못했다. 반 정도를 봤었나. 그것마저 못 봤나? 석불은 누워서 세월을 기다리고 나는 누운 석불을 내려다보며 괜스레 주변을 돌았다. 한때 천불천탑을 거느린 사찰로 민중의 세상을 꿈꾸었던 이곳에서 드라마 추노를 촬영한 것은 우연만은 아닐 것이다. 천불천탑은 세월에 소실되어 전설 속에서만 살아있다.
 절 입구에 서 있는 운주사 9층 석탑을 올려다보며 소박한 인상에 마음을 내려놓았다. 탑은 정제되고 세련된 구도가 아니라서 긴장으로 피곤하지 않았고, 삐질삐질 나는 땀을 닦으며 앞쪽에 퍼질러 앉아도 실례될 것 같지 않아 덤덤해 보이는 인상이 오히려 내 마음을 낚았다.
 백제부흥을 위한 염원 혹은 장보고의 추모 사찰 등 절대 권력에서 미끄러진 민중의 소망이 담긴 천개의 꿈은 가히 하늘에 닿을 간절함을 상징하는 것이겠다. 새로운 시대 미륵세상을 꿈꾸는 민중의 간절함과 사회 변혁을 꿈꾸었던 비주류계층이 신세계를 이루지 못한 한이 서려있는 곳이기도 하다.
 실존으로 살아 숨 쉬던 인물이기보다는 신화 속 선인처럼 느껴지는 도선 국사는 이곳에서도 예의 신화를 남겼다. 도선선사는 도술로 하룻밤에 천불천탑을 세워 개벽 세상을 열어보려 했는데 밤새도록 쉼 없이 탑을 만들고 불상을 만드는데 지친 동자승이 꾀를 낸 것이 새벽닭 울음소리였다. 석공들은 날이 밝아오는 줄 알고 작업을 중지하고 하늘로 올라가버렸고 마지막 천불 째 석불을 세우지 못해 와불로 남았다. 그래서 결국 개벽의 세상은 오지 않았다.
  이루어진 현실보다 미래의 희망이 가슴을 팽팽하게 만든다. 다가올 미륵 세상이 사람들의 희망이나 꿈을 대신하는 것이라면 미완인 채로 기대를 주는 것도 나쁘지 않겠다는 생각도 해 본다.
 운주사 주변에는 장엄이나 엄숙보다는 토우같은 느낌마저 들어 친근한 불상이 정답고 파란요정 스머프들의 집을 포개 놓은 듯 한 버섯모양의 탑은 귀엽기까지 하다. 탑에 새겨진 문양이 암호 같은 기호로 보여 외계인과의 교류 설까지 등장하고 칠성바위는 북두칠성의 모양대로 배치되어 별의 밝기에 따라 돌 판의 크기가 달라 정말 신비한 우주인과의 교류설에 생명력을 준다.
 여름휴가 때라 단체로 방문한 운주사에서 무리지어 오르내리며 정숙한 참배를 하지 못했다. 더워서 지치고 사람에 치이고 마음은 헐헐 채워지지 않아 허공을 날았다. 아쉬워 다시 찾아 갔을 때는 갑자기 내려간 한파에 바람이 세차 몸을 움츠리게 했다. 친근을 빌미로 쉽게 곁을 주려했던 나에게 탑신과 불상들은 긴 시간 결 고운 정성을 보여주기를 원하는가 보다.
 단출한 차림으로 나를 내려놓고 허심 없이 다시 오고 싶다. 외계의 신성과 눈 맞추며 교신도 하고 미륵의 세상을 꿈꾸며 와불 옆에서 단꿈도 꾸어보고 크기도 모습도 각각인 불상들에게 속내도 풀어놓고 싶다. 그때는 ‘그래 이리 와 옆에 앉아라!’ 나를 반겨 줄 것 같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