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인천귤현초등학교 교장 김정제
 어느 학교나 다양한 교육활동과 함께 학교 여건과 지역사회의 특성에 맞는 교육활동을 전개하고 있지만, 학생들의 기억에 가장 오랫동안 남는 것을 들자면 수학여행을 꼽을 수 있을 것입니다. 그것은 일상적인 교육활동과는 장소와 내용이 판이하게 다를 수밖에 없는 수학여행의 특성과 함께, 가정을 벗어나 친구들과 생활한다는 것 자체가 학생들의 마음을 설레게 하기 때문입니다.

학교에서 수학여행지로 가장 많이 찾고 있는 경주에는 정말 많은 유적과 유물들이 있습니다. 그저 의미없이 스쳐 지나치기 쉬운 바위에도, 잔디로 뒤덮인 흙더미와 구르는 돌멩이에도 우리 민족의 숨결이 묻어 있습니다. 수많은 선남선녀들의 사랑과 이별, 민족의 삶과 애환이 간직되어 있습니다. 그러다 보니 경주를 찾는 대부분의 사람들이 짧은 시간 동안에 많은 것을 보려 하기 마련입니다. 오가는 여정을 제외하고 나면 2일도 채 되지 않는 짧은 시간 안에 경주의 모든 것을 돌아보고 오는 것입니다. 하지만 본다고 해서 아는 것이 아니고, 안다고 해서 감동을 느끼는 것은 아니라는 것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다보탑과 석가탑!
‘경주’하면 가장 먼저 떠오르는 것이 불국사이고, 불국사의 상징처럼 연상되는 것이 다보탑과 석가탑입니다. 다보탑은 그 자태가 우아하고 아름다워 여성적이고, 석가탑은 웅장하고 강건하여 남성적인 탑이라고 나의 학창시절 선생님은 가르치셨습니다. 많은 세월이 흘러 보고 들은 지식의 진실성에 대하여 의문을 가지게 되고, 다시 확인하고 분석·정리하려는 노력을 하기 전까지는 나 역시 오랜 세월을 그렇게만 알고 있었습니다. 아니 당연히 그렇게 보려고 했고 그렇게 가르치기도 했습니다. 하지만 그것은 다보탑과 석가탑의 외형일 뿐 진정한 의미는 절대 아니라는 것을 알게 되기까지는 참으로 많은 세월이 필요했습니다.

다보탑은 눈에 보이는 물질의 아름다움이요, 석가탑은 마음에 비치는 정신세계의 아름다움으로 균형을 이루고 있는 신비한 탑입니다. 법당 안에 있는 부처님과 정삼각형 위치에 자리잡고 하늘과 땅이 하나로 융합된 가운데 석가여래의 설법은 다보여래의 증명에 의해서 영원히 불국에 다함이 없음을 의미하지요. 따라서 다보와 석가 두 탑은 둘이면서 하나이고 하나이면서 둘인 것입니다. 동시대에 만들어진 이 두 탑이 외형상 판이하게 다른 모습으로 이루어진 것은 바로 이러한 불교정신의 표상이기 때문입니다.

교육은 다보탑보다는 석가탑에 가까운 것 아닐까요? 외형으로 보이는 것보다는 내면에 있는 정신세계에 더 많은 관심을 기울일 때 교육은 진정 가치 있는 일이 될 것입니다. 지식교육을 다보탑이라 한다면, 인성교육은 석가탑일 것입니다. 인간의 지식과 기능을 다보탑이라 한다면, 마음과 느낌은 석가탑일 것입니다. 보고 듣고 기억하는 것이 다보탑이라면, 감동하고 행동하는 것은 석가탑일 것입니다. 교육의 내용과 방법 절차가 다보탑이라면, 석가탑은 교육의 목적 그 자체인 것입니다.

물론 다보탑 교육이 필요없다는 것은 아닙니다. 다만 화려한 모습의 다보탑에 치중하다 보면 때로는 석가탑을 잊고 있는 것은 아닌가 하는 우려를 하게 되는 경우가 있기에 하는 생각입니다. 혹시 그 동안 다보탑에 더 많은 시선을 주고 있었다면 석가탑으로 시선을 돌려야 하지 않을까 생각해 봅니다. 내심으로는 우리 교육이 더 넒은 시야로 두 탑을 동시에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하지만 둘 중에 하나밖에 볼 수 없다면 차라리 다보탑보다는 석가탑을 바라보았으면 좋겠습니다.

학생들의 기억에 가장 오래 남는 교육활동 중 하나인 수학여행이 학교에서 보고 듣고 외웠던 유물이나 유적을 확인하는 경험을 넘어서, 역사를 느끼고 숨결을 느끼는 감동을 주는 교육활동이 되어야 할 것입니다. 주어진 시간에 최대한 많은 것을 보여 주기 위해서 바쁘게 돌아다니면서 메모를 하고 사진을 찍는 모습보다, 어느 곳에 시선을 멈추고 생각하며 느낌을 간직하는 시간이 많아져야 할 것입니다. 여행지 주변에 있는 것을 많이 보고 다시는 그곳을 찾을 필요가 없게 하는 것이 아니라, 언제라도 다시 찾아오고 싶은 감동을 주는 활동이어야 합니다. 불과 몇 시간이면 끝나는 박물관 견학활동으로 반만 년 역사 속에서 조상들이 남긴 유물과 유적을 모두 감상하는 것이 아니라, 고구려 유물만 자세히 보고 돌아오면서 다음에 백제나 신라 유물을 보기 위해 박물관을 찾아오도록 하는 것이 더 중요하고 의미있는 교육활동이 될 것입니다.

교육을 통하여 많은 지식과 정보를 기억하는 것을 요구하던 것에서 벗어나, 감동을 주는 활동으로 교육이 변해 가야 합니다. 감동이란 크고 많은 것에만 있는 것은 아닙니다. 보기 좋고 화려한 것에만 있는 것도 아닙니다. 오히려 작고 소박한 것에 더 많은 감동이 담겨 있는 것인지도 모릅니다. 해마다 연말이면 모금하는 이웃돕기에 대기업이나 그룹에서 내는 억대의 성금보다 붕어빵 장수 할머니의 꼬깃꼬깃한 성금에 많은 사람들이 눈시울을 적시고, 환경미화원들이 함께 모아 내는 성금이 더욱 가슴 뭉클한 감동을 준다는 것을 기억하면서 감동 있는 교육을 생각해야 할 것입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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