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혜욱(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학교에 근무하는 필자로서는 3월을 맞이하는 기분이 남다르다.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되기 이전 법학부로 운영될 때에는 고등학교를 갓 졸업한 풋풋한 신입생들과 새로운 만남을 갖는다는 것 자체가 삶의 활력소가 되기에 충분하였다. 사법개혁을 통해 법학전문대학원이 도입된 이후에는 입학하는 학생들과 새로운 만남을 갖고, 3년 동안 힘겹게 진행되어야 하는 학업과정에 대해 모두가 지치지 않고 좋은 결실을 맺기 위해 어떤 노력을 해야 하는가에 대해 고민하는 첫 달이 되었다. 2011년 3월은 법무부의 검사 임용 방안에 대한 발표로 인하여 각 기관의 이익이 충돌하여 서로가 배척하는 가운데 혼란스럽게 시작하고 있으나, 그럼에도 언제나 3월은 기다려지는 달이다. 그만큼 새로운 만남이 주는 설레임의 기쁨이 크기 때문이다.
그러나 2011년 3월은 첫 만남의 설레임을 느낄 여유를 주지 않을 정도로 국내외적으로 많은 사건이 발생하였다. 우리나라에서는 영화산업이 발전할 수밖에 없는 수많은 사건들이 발생하고 있다는 어느 시사주간지의 기사를 읽은 적이 있다. 영화에서나 등장할 법한 삼각관계로 인한 스캔들이 버젓이 해외 공간에서 발생하고 있고, 국가 경제와 관련된 법률안이 특정 종교단체의 반대로 국회에서 제대로 된 논의조차 이루어지지 않은 채 수포로 돌아갔으며, 이러한 법률안을 반대하며 ‘대통령 하야’라는 초강수로 대응한 원로목사에 대해 소속된 교회 앞에서 보수성향의 어느 단체의 구성원들이 ‘빨갱이’로 표현하며 원색적으로 비난하는 상황이 발생하고 있다. 반공주의와 보수주의의 선구자로까지 불리우던 목사가 어느 한순간에 좌익의 ‘빨갱이’가 되어진 상황이 우리나라에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그 어느 영화보다도 더 극적인 반전이 실제로 발생하고 있는 것이다.

2005년 통계청 조사에 따르면 우리나라 전체 인구 가운데 각 종교별 신자 비율은 불교 22.8%, 개신교 18.3%, 천주교 10.9%로 나타났다. 그러나 이에 비해 2008년 제18대 국회의원의 종교 성향을 분석해 보면 개신교인이 전체 국회의원 가운데 약 40%를 차지하고 있다. 전체 국민에 대한 통계를 고려할 때 국회의원의 경우 개신교인이 차지하는 비율이 비정상적으로 높다고 할 것이다. 이러한 비율은 정치·경제·문화적으로도 개신교가 많은 영향을 미칠 수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이번 ‘수쿠크법’에 대한 처리과정에서 나타난 현상은 그 단면을 보여 주는 것이다. ‘수쿠크법’의 반대에는 다른 종교에 대한 배타적인 개신교의 특성이 잘 나타나고 있다. ‘수쿠크법’이 우리나라 경제에 어떤 영향을 미칠 것인지에 대한 심도 깊은 논의는 단 한 차례도 이루어지지 않았다고 한다.
2011년 3월은 또한 지진과 쓰나미로 인해 일본 열도가 신음하는 시간으로 기억될 것이다. 그 동안의 크고 작은 일본과의 분쟁을 떠나 우리와 가장 가까운 이웃나라가 자연재해로 신음하고 있는 것에 대해 국민 대다수는 마음 아파하고 있다. 그들을 돕기 위해 물적으로 뿐만 아니라 심적으로 많은 도움을 주어야 할 것이고, 실제로 많은 사람들이 도움을 주기 위해 노력하고 있다. 그런데 일본의 자연재해를 종교적으로 해석하는 상황이 다시 발생하고 있다. 일본의 자연재해가 개신교를 멀리하고 미신을 숭배하였기 때문이며, 이러한 재앙은 이미 예고된 것이라는 언급이 이루어지고 있다. 물론 그렇기 때문에 일본을 위해 마음을 다해 기도해야 한다는 좋은 마무리로 끝나고 있지만 다른 종교를 배척하는 편향적인 사고에 기인한 언급이 아닐 수 없다.
사람은 누구나 자신의 것이 중요하고 자신이 소유하고 있는 것에 대한 애착이 클 수밖에 없다. 그렇다고 자신이 가장 최고이고, 사소한 피해도 입지 않으려고 한다면 궁극적으로는 타인이 아닌 자신이 파괴될 것이다. 왜냐하면 우리 사회는 혼자서는 살아갈 수 없기 때문이다. 필자 역시 30년 이상 종교생활을 해 온 개신교인이다. 독일에서는 종교인과 신앙인을 구별한다고 한다. 성경을 열심히 연구하여 누구보다도 성경에 대한 지식이 충만하지만 하나님을 경외하는 마음이 없는 사람을 종교인으로 부르고, 성경에 대한 지식은 희박할지라도 하나님을 경외하고 모든 사람을 평등하게 여기고 사랑할 수 있는 사람을 신앙인으로 부른다고 한다. 나와 다르다고 해서 무조건적으로 배척하는 것이 아니라 포용하고 사랑하면서 하나님을 전파할 수 있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근 우리 사회에서 발생한 일련의 사건들은 포용이라기보다는 배척이라고 보기에 충분하다. 1995년보다 2005년 14만4천 명이라는 개신교인이 감소한 통계청의 통계에서 포용이 배척보다 중요하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