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박인옥(인천대 경제학과 박사과정)

 한국에서 우수 영재들만 입학한다는 카이스트의 학생들이 “우리는 이 학교에서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공부하는 것이 모든 학생들에게 즐겁기만 한 것은 아니지만 그래도 한국의 미래를 이끌어나갈 우수 인재들만 입학해 이들을 양성하는 교육기관 중 하나이고, 세계적인 대학으로 성장하고 있는 공간에서 영재들은 행복하지 않다고 한다. 이 학교에 자녀를 입학시킨 어떤 부모는 ‘가문의 영광’으로 여길 정도라는데, 장래 성공을 보장받은 엘리트 교육기관의 학생들의 외침은 외로워 보인다. 최고의 영재들이 스스로 선택한 학교에서 성적 압박에 못 이겨 행복하지 않다는 것이 일반인들에겐 선뜻 이해되지 않는 이유이기도 하다.
1년에 1천만 원씩 학비를 지불해야 하는 부모와 학생들의 고통에 비해 전액 국비 장학금을 받고(비록 징벌제 등록금제가 도입되었지만), 세계 각국에서 초빙된 교수들의 가르침을 받는 우수 영재들이 불행하다니. 한국에서 명문대학으로 이름값을 하는 대학이 과연 몇 퍼센트나 되겠는가. 그리고 치열한 경쟁을 뚫고 한국 과학계의 기대를 한 몸에 받는 학생들이 몇 명이나 되겠는가. 이에 4명의 학생 자살과 교수의 자살 소식에 방송과 신문이 연일 집중 보도하고 있는 것은 아마 카이스트라는 대학의 특성 때문일 것이다. 총장이 국회에 불려가 혼줄이 나고, 학생과 교수들의 항의를 받으며 최고 책임자로서 리더십을 의심받고 있다. 심지어 사퇴압력을 받고 있기도 하다.
그런데 한 통계를 보자. 1년에 자살을 하는 학생이 몇 명이나 되는지. OECD 국가 중 자살률 1위를 기록하고 있는 한국이 2009년 국회 보고한 통계자료에 따르면 202명의 학생이 자살을 하고, 2004~2008년 5년간 600명이 넘는 학생이 여러 이유로 자살을 선택했다. 특히 고등학생의 자살률이 높아 65%가 넘는 것으로 보고되었다. 그런데 교육부 장관과 시·도교육감이 교육계와 정치권으로부터 사퇴의 압력을 받았다는 이야기는 듣지 못했다. 또한 대학의 총장이 학생의 자살사건을 두고 국회에서 추궁받았다는 기록도 보지 못했다. 그런데 특정 대학을 두고 우리 사회가 보여주는 모습은 실망스럽기만 하다.
명문대학에서 발생한 학생 자살의 근본적인 문제가 단순히 그 대학 총장의 리더십이나 등록금의 문제에 있는 것인가. 초·중등 교육에서부터 익숙해진 서열화의 압박과 점수경쟁의 결과가 낳은 구조적인 문제라는 지적은 거의 볼 수 없기 때문이다. 특정 대학의 학생 자살을 개인적인 문제로 취급하거나 가볍게 보아서가 아니다. 학생 자살 사건을 두고 정치권과 언론이 이전에도 이렇게 관심을 보인 적이 있었는가. 명문대학 영재들의 자살에는 관심을 보이면서 이들을 자살로 몰아갈 수밖에 없는 한국 교육 현실의 심각성과 어디선가 ‘우리는 행복하지 않아요’라는 어린 학생들의 외침에는 왜 그리도 인색하느냐는 것을 묻고 싶은 것이다. 자살방지 대책반을 구성한다고 해결될 문제가 아니다.
대학입학률 90%가 넘는 한국의 고등학교는 평일에는 저녁 10시까지, 토요일도 쉬지 않고 보충자율학습을 한다. 부모와 학교, 교육기관이 삼박자가 되어 치열한 경쟁에서 살아남는 것만이 국가와 가족을 위해 행복한 것이라고 강조한다. 대입 합격률을 높이고, 명문대 입학률을 기준으로 돈줄을 죄겠다는 지침에도 경쟁이 치열하다. 어디에도 학생들의 행복의 기준이 무엇인지 고려한 흔적은 보이지 않는다. 불행이 더 큰 불행으로 이어질 위험을 간과하고 있는 것이다. 자살을 한 학생의 부모 마음과 자식을 먼저 보낸 부모의 심정이야 오죽하겠는가. 어찌 부모의 마음이 다를 수 있겠는가. 하지만 우리 사회의 입시교육이 점수와 서열로 지역과 학교, 학생을 구분하듯이 죽음을 바라보는 시각도 서열을 두고 있는 것은 아닌가. 씁쓸할 따름이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