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원혜욱 인하대학교 법학전문대학원 교수

 지난주 호찌민 베트남국립대학과 인문사회과학대학의 한국어과를 방문했다. 한국어과 학생들을 만나 한국 문화와 한국어를 비롯해 베트남 문화에 대한 이야기를 나누었다. 베트남에도 한류의 영향으로 젊은 세대들이 한국 드라마를 즐겨 보고, 한국의 가요를 즐겨 들으며 한국 문화에 대해 배워 가고 있었다. 특히 베트남에서의 한국 기업에 대한 선호도는 단연 최고였다. 다른 외국 기업에 비해 급여가 높은 것도 하나의 중요한 이유로 작용한다고 했다. 이러한 이유 때문인지 한국어과 학생들은 학업에 상당히 열심히 임하고 있었고, 한국어도 수준급이었다. 전쟁으로 인해 노인 인구가 현저하게 적은 베트남의 거리 곳곳에서는 젊은 세대가 넘쳐나는 것을 볼 수 있다. 지금은 경제가 어렵고 개발도상국의 위치에 머물고 있지만 장래의 발전을 엿볼 수 있었던 장면이었다. 다만, 아직은 전쟁의 흔적이 남아 있어 거리에 군사적 상징물들이 세워져 있고, 수입에 비해 현저히 높은 물가가 경제발전에 어떻게 작용할 것인지는 베트남 정부가 해결해야 할 과제인 듯 보였다.

베트남을 방문하면서 한편으로는 베트남의 잠재적 힘을 느꼈고, 또 다른 한편으로는 베트남에서 최하위 계층으로 생활하고 있는 ‘라이따이한’들에 대한 정보를 접하면서 안쓰러움과 동시에 창피함을 느꼈다. 혈통을 중시하는 한국의 정서에 따르면 한국인을 아버지로 두고 있는 라이따이한이 생존할 수 있도록 우리 사회가 최소한의 배려는 해야 하지 않는가 하는 생각이 들었다. 그러나 “누가, 어떻게 해야 하는가?”라는 질문 앞에서 생각이 멈추었다. 이에 대해 진정한 마음으로 고민한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베트남 인문사회과학대학의 한국어과를 방문할 때, 인문사회대학에는 동시에 ‘베트남을 사랑하는 사람들의 모임’이라는 단체의 방문이 있었다고 한다. 그 모임에 참석했던 베트남 여학생이 몇 번이고 그 모임의 사람들에게 감동을 받았다는 이야기를 했다. 우리가 외면할 수 없는 라이따이한에게도 도움을 주는 모임이라고 했다. 라이따이한들에게 도움을 주는 방법이 단지 소규모의 단체에 의존하는 것밖에 없는 것일까? 공적인 수단은 없는 것일까? 우리가 이제부터라도 진지하게 고민해야 할 과제다.

최근 우리 사회의 화두 중 하나는 ‘다문화가정’이다. 특히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에게 관심을 가지고 우리 사회의 일원으로 생활할 수 있도록 다양한 복지정책을 수립하고 시행하고자 많은 노력을 기울이고 있다. 그럼에도 다문화가정에 대한 사회적 편견이 남아 있고, 소수자에 대한 배려가 충분하지 않기 때문에 여전히 많은 수가 가정폭력의 피해자로, 의무교육의 혜택을 받지 못하는 피해자로 살아가고 있다. 피해자가 영원히 피해자로만 남는 것은 아니다. 피해의 상태가 극에 달하게 되면 피해자가 가해자가 되기도 한다. 실제로 우리는 가정폭력의 피해에서 벗어나기 위해 남편을 살해한 이주여성에 대한 기사와 다문화가정의 자녀가 비행청소년이 된 기사를 접하고 있다. 우리 사회가 관심을 가지지 않음으로 인해 잠재적 범죄자를 키워 내고 있는 것이다. ‘글로벌 시대’를 지향하는 것은 영어에 능통한 사람들을 일률적으로 찍어내듯 교육시키는 것이 전부는 아니다. 대학의 모든 수업을 영어로만 진행했기 때문에 발생한 폐해를 우리는 최근 한 유명한 대학의 사례에서도 보았다. 우리 사회의 구성원인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가지고 있는 특성을 100% 발휘할 수 있도록 제도적으로 뒷받침해 주는 것도 글로벌 시대를 지향하는 중요한 정책이 될 수 있을 것이다.

베트남을 방문하면서 접하게 된 한 가정을 소개하고자 한다. 한국인을 아버지로, 베트남인을 어머니로 둔 5살 아이가 한국어와 베트남어를 자유자재로 구사하면서 아버지와 그의 손님들에게는 한국어로만 이야기를 하고, 베트남 사람들에게는 베트남어로만 이야기하는 것을 보았다. 아버지가 베트남어를 잘하는 사람이었지만 5살 꼬마가 아버지에게는 한국어로만 이야기하는 것을 보고 아버지에 대한 최선의 배려라는 생각이 들었다. 다국어를 구사하고, 사람들을 배려하는 마음까지 가지게 된다면 ‘글로벌 시대’에 가장 적합한 인재로서 부족함이 없을 것이다. 베트남을 비롯해 세계 각국에서 한국인을 아버지로 두었지만 버림받은 자녀들을 도울 수 있는 방법을 찾아내고, 우리 사회의 구성원으로 살아가고 있는 다문화가정의 아이들이 자신의 특성을 최대한 발휘할 수 있는 제도를 마련하는 것이 글로벌 시대를 지향하며 현재를 살아가고 있는 우리에게 주어진 가장 중요한 과제가 아닌가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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