노(老)시인의 작시 음악회에 다녀왔다. 시인은 시 18편을 곡으로 만들어 칠순을 겸한 음악회를 열었다. 넓은 전원주택 1층에서 열린 음악회는 독특한 분위기가 있어 휴일 하루가 즐거웠다.
돌아오는 길에 사회를 맡아 음악회를 이끌었던 분과 언쟁이 있었다. 행사가 끝나면 이런저런 아쉬움이 남게 마련이다. 완벽한 행사를 소원하지만 순도 100% 완벽은 항상 어려운 소망이다.
최상의 음악회를 보여주고자 애썼는데 미흡했던 진행과 분위기로 속이 상한 그분은 속내를 털어내 보여주는 과정에서 격해졌다.

노(老)시인은 사회적으로 화려한 생을 사셨다. 그분을 존경하고 선배로 사랑하는 마음에 음악회 준비에 정성을 다하고 진행을 주도했던 입장이라 진행과정의 잡음도 걸리고 우러러는 효성도 기대만큼 성이 차지 않아 속이 상했던 모양이다.
이런저런 일로 함께 간 우리와 충돌을 빚었다. 일방적인 감정 전달에 화가 나고 마음도 불편했는데 잠자리에 누워 가만 생각해 보니 좀 참을 걸 하는 생각이 들었다. 세상일을 논리로만 따질 수 없는데 그분의 상한 속을 들어주었다면 좋았을 텐데 하는 아쉬움이 남는다.

어느 해 봄, 코르도바를 여행하면서 세네카 동상 앞에서 여럿이 수사학에 대한 의견을 나누었던 일이 떠오른다. ‘수사학은 진리의 영역이 아니다’라는 말에 절대 공감했던 기억이 난다.
앞뒤 정확을 밀쳐두고 너무 책임 소재를 따지거나 좋고 나쁘고를 가리려고만 하다 보면 싸움으로 파국을 보게 된다. 잘잘못을 가리는데 급급하면 서로 방어벽을 쌓기에만 열중한다.
잘못을 캐기보다는 합의를 도출하도록 이끄는 화술이 수사학의 백미다. 논쟁을 긍정적으로 이끄는 설득의 묘를 살려야하는데 분명 방법이 있을 것이다.
생각처럼 쉽지 않을 테지만 싸움도 습관이고 긍정적 해결도 습관이다. 세네카조차도 이론과 현실의 괴리로 학자적 양심의 불연속을 갈등하며 살았다는데, 범부인 우리야 말해 뭐하랴. 그러나 뒤집어보면 평범해 오히려 어려울 것 없겠다는 생각도 든다.
세네카의 인간적 갈등은 수십 세기를 지나도 우리에게 여전히 어려운 화두다. 하루 만에 얻으려는 것은 과욕이겠지. 과달키비르 강을 굽어보며 세네카가 던져준 화두가 지중해로 흘러 들어 대서양과 태평양을 돌아서 서해 바다에 닿을 여정을 잠시 생각해본다.
소소한 일상에서 맞닥뜨리는 논쟁에서 건강한 해결점을 찾아가는 공존의 지혜 쌓기가 결코 수월하지 않겠지만, 노력해 봐야겠다. 수사학은 어디까지나 우호적 합의도출이 목적이다. 청중을 선동하는 단순웅변술이 아닌 구술적이고 시각적이며 문어적인 언어로 설득하는 화법이라고 보면 되겠다.
그리고 또 하나, 눈에 보이는 외양이 전부가 아닐 것이란 생각도 해 본다. 적절한 선에서 관계 유지에 지혜를 발휘하면 새로운 가족관계를 만들어 현재 시대에 맞게 사는 분들인데 전통적 유교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옹졸한 시선으로 본 우리의 오류가 더 큰 잘못이 아닐까 하는 반성이다.
오며 가면 마주한 6월의 자연은 싱그럽고 신선했다. 우리의 마음이 자연만큼만 진실하다면 참으로 평온할 것 같다는 생각을 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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