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용호 한국은행 인천본부장
 예로부터 돈거래나 대금업에 대해서는 동서를 막론하고 부정적으로 바라보는 시각이 많았다. 이슬람 율법에서는 이자를 금지하고 있으며 성경에서도 이자를 위한 돈거래를 하지 말라는 구절이 있다. 이자가 금지된 이슬람에서는 이를 회피하기 위한 방법으로 이슬람식 금융이 발생하게 됐다. 이슬람식 금융에서는 자금거래 시 외형적으로 실물거래의 형식을 띠면서 이자 대신 수수료 명목으로 돈을 빌린 데 대한 대가가 지불된다. 셰익스피어의 작품 ‘베니스의 상인’에서 주인공에게 돈을 빌려주는 샤일록도 고리대금업을 하는 악인으로 묘사되고 있다. 15세기 근대적 의미의 금융업을 시작한 이탈리아 피렌체의 메디치 가문도 당시 대금업에 대한 규제를 회피하기 위해 돈을 빌려주면서 대출 대신 어음할인의 형식을 취해야 했다. 우리나라의 경우에도 삼국시대에 이미 곡물을 매개로 한 고리대금이 성행했던 것으로 추정되는데 소작농이 빚을 갚지 못하면 노예가 되기도 했다고 한다. 미국의 경우 옛날부터 부자들만의 전유물인 금융업에 대한 시각이 좋지 못했는데 최근 글로벌 금융위기를 겪으면서 월가의 탐욕을 비판하는 목소리가 더욱 높아졌다. 이렇듯 동서고금의 역사를 놓고 볼 때 돈거래 또는 대금업은 사회적으로 부정적으로 인식돼 왔다.
미국은 금융기관에 의한 무분별한 대출을 글로벌 금융위기의 원인 중 하나로 지목하고 이를 규제하는 법안을 마련한 바 있다. 이른바 ‘약탈적 대출’(predatory lending)에 대한 규제인데 약탈적 대출이란 사실상 원리금을 갚을 수 없는 채무자에게 돈을 빌려 줘 이득을 취하는 행위를 말한다. 예로서, 금융위기 직전 미국에서는 급등하는 주택가격을 배경으로 주택담보대출이 크게 확대됐다. 이때 금융기관들은 주택가격이 상승할 때마다 상승분만큼 대출을 추가로 받아가라고 권유했고 대출금리도 초기에는 아주 낮은 수준으로 책정하고 나중에 높은 금리를 받는 등의 구조로 설계해 자금의 차입을 유인했다. 이러한 대출은 주택가격이 계속 상승하는 과정에서는 별 문제가 없었으나 부동산 버블이 꺼지면서 주택가격이 하락하자 수많은 신용불량자와 파산자를 양산하는 원인이 됐다. 원리금을 제때 갚지 못해 집을 차압당한 채무자 입장에서 이는 약탈적 대출이라 할 수밖에 없다.
우리나라도 이와 비슷한 무분별한 대출이 나라 경제와 가계의 안정성을 위협하는 요인으로 부각되고 있다. 과거엔 금융기관에서 돈을 빌리기가 어려운 것이 문제였다면 이제는 과도한 대출이 문제가 되고 있는 것이다. 최근 가계부채가 800조 원을 돌파할 정도로 확대되고 주택담보대출의 경우 이자만 납입하는 일시상환 식 대출의 비중이 78%를 넘는다고 한다. 저신용자의 신용카드 연체율은 여타 계층의 38배에 달해 우려를 자아내고 있는데 세계적 신용평가회사인 무디스는 최근 우리나라의 가처분소득 대비 가계부채 비율이 세계 최고 수준임을 지적하며 가계부채 문제에 대한 경고를 보낸 바 있다. 우리는 이미 지난 2003년 무분별한 카드발급과 카드론 취급으로 인한 카드사태를 경험한 바 있지만 그로부터 실질적인 교훈은 얻지 못한 듯하다. 오히려 제2금융권뿐만 아니라 은행권까지 수익확보에 혈안이 돼 가계대출을 과도하게 확대하고 있는 실정이다. 상호저축은행의 PF(프로젝트 파이낸싱)부실화 문제로 부동산 시장의 침체가 심화될 가능성이 있고 소득의 양극화와 고용없는 성장으로 소득하위 계층의 채무상환 능력이 떨어지고 있는 상황에서 이는 매우 위험한 양상이다. 다만 우리나라에도 채무자의 상환능력을 벗어난 대출을 규제하는 법안이 최근 국회에 제출되고 금융당국이 가계대출의 과도한 확대를 억제하는 방안을 검토 중에 있는 점은 다행이라 하겠다.
그러나 이러한 규제보다도 중요한 것은 각 경제주체들의 자발적인 노력이다. 금융기관의 경우 차입자의 신용을 사전에 철저히 심사해 부적격자에 대한 신용공급을 억제하고 차입자의 경우 상환능력을 벗어난 차입, 투기성 차입 등을 자제하는 한편 기 차입한 자금의 상환을 위해 노력해야 한다. 러시아 속담에 ‘남의 돈에는 날카로운 이빨이 돋아있다’라는 말이 있다. 남의 돈을 끌어다 쓰는 것이 당장은 좋겠지만 잘못될 경우 미래의 대가가 매우 클 수 있음을 유의해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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