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내 최대 추출기 전문기업, 경서기계산업(경서E&P)

# 한방(韓方)을 넘어 ‘추출기’ 분야의 신기원으로 자리잡다.

   
 

추출기라고 하면 보통 ‘약탕기’를 일컫기 마련이다.

경서기계산업(인천시 서구 석남동)이 생산하고 있는 추출기 역시 한방에선 소위 ‘약탕기’라는 통칭으로 불린다.
하지만 경서기계산업 모든 임직원은 약탕기라는 표현에 대해 썩 좋은 반응을 보이지 않는다.

이들이 만들어 내고 있는 제품은 한방에서만 사용하는 약탕기 외에도 시민의 건강을 지켜줄 실생활 모든 분야에 쓰이는 ‘발명품’이라는 자부심이 있기 때문이다.

‘한방 건강의 가치 창조’라는 경영이념 아래 경서기계산업은 한방뿐 아니라 모든 생산제품이 우리 사회 전반에 걸쳐 활용되는 것에 의미를 둔다.

창립 18년의 역사가 말해 주듯 초대 회사를 설립한 윤태문(48)대표 역시 한방 분야뿐 아니라 모든 생산재 시장에서 경서의 주력상품이 활용되는 것이 인생 최대의 목표라고 말한다.

열정과 패기로 유에서 무를 이룬 윤 대표의 노력만 봐도 심신의 안정과 인체의 신비를 모두 아우르고 있는 한방의 신비함과 첨단 추출기술의 접목이 이뤄 낸 경서의 기술개발이 눈여겨진다.

   
 
# 월 1천400만 원의 1등 영업맨, 창업으로 새로운 출발
경서기계산업의 첫 시작은 한방용품 생산을 주력으로 했던 옛 환주실업에서 시작된다.

당시 환주실업에서 영업사원으로 근무했던 윤 대표는 다른 직원보다 눈에 띄는 영업실적을 보여 줬다.

차를 끌고 약국이나 한의원 앞을 지나가면 굳이 영업업무가 아니어도 차를 세우고 제품을 홍보했던 윤 태표의 영업전략은 타의 추종을 불허했다.

실적이 좋다 보니 윤 대표는 초고속 승진을 이어갔고, 결국 최연소 수도권지역본부 소장이라는 타이틀까지 거머줬다.

당시 그가 거둔 월 최대 실적은 1천400만 원을 넘었을 정도다.

하지만 그의 승승장구는 엉뚱한 곳에서 발목이 잡혔다.
잠시 영업실적이 부진했을 때 기업 대표의 친·인척이 그의 자리를 꿰차게 된 것. 청춘을 다 바친 그의 첫 직장은 아무런 대책도 없이 그를 가차없이 밀어냈다.

윤 대표는 잠시 시름에 빠졌지만 이내 오뚝이처럼 다시 일어섰다.

무엇보다 목숨보다 소중한 아내와 아들이 있었기에 가능했던 일이었다.

환주실업 퇴사 이후 잠시 무역업체에서 임시로 일했던 그는 과감히 회사에 사표를 던지고, 1992년 인천시 서구 석남동 목재단지 인근에서 창업의 길을 걷는다.

# 영업맨, ‘발명가’로 대박행진에 나서다.

   
 

열정만큼은 그 누구보다 앞선 그였지만 경서기계산업의 초반은 그리 순탄치 않았다.
직원들과 새로운 제품을 발명하기 위해 낮과 밤이 뒤바뀌기 일쑤였고, 윤 대표의 경우 새벽 3시 이전에 퇴근하는 일이 없었다.

윤 대표는 “꿈속에서도 추출기를 만들고 있는 등 그야말로 기계에 미쳐 있었다”고 당시를 회상했다.

소비자에게 적합한 추출기를 만들기 위해 경서기계산업 전 직원들은 전국을 내달렸다.
한의사·가정주부·한방용품 전문수리기사 등 윤 대표를 중심으로 사업 초기 직원들이 밥 먹듯 한 것은 주로 실제 추출기를 사용하는 이들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는 일이었다.

그렇게 꼬박 1년간의 노력이 내놓은 경서기계산업의 첫 작품은 현재도 아시아 전역에서 수출 주문이 쇄도하고 있는 ‘핸들식 압력추출기(1993년)’다.

핸들식 압력추출기는 당시 대다수 경쟁업체가 보유한 것에 아이템을 얹은 처녀작이었으나 시장의 반응은 기대 이상이었다.

경서의 핸들식 압력추출기는 터치 방식의 전자제어장치를 처음으로 도입했다.

이 뿐 아니라 제조계기판을 상단에 부착해 고인 물과 이물질로 인한 잦은 고장을 줄일 수 있었다.

당시 대다수 경쟁 제품은 제조계기판을 추출기 하단에 부착했다.

# 최대의 걸작, ‘초고속 진공저온 추출기’를 내놓다.

추출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핸들식 압력추출기 성공 이후 경서기계는 2번의 역작품을 내놓는다.

먼저 경서기계의 중흥기를 열었던 ‘전자동 무압력 추출기’가 1995년 선보였다.

윤 대표는 추출기에 대한 개발을 하던 도중 압력 상태에서 약탕을 달이는 것의 효과에 의문을 뒀다.

약탕의 밑바닥에 검게 타 버린 탕약재료가 남는 것을 보고 압력 방식이 원재료인 약재를 달이는 것이 아니라 태우고 있다는 추론을 얻어 냈다.

그의 논리대로라면 결국 소비자들은 그동안 몸에 좋은 약재를 태운 탕을 마시고 있는 것이었다.

바로 이 같은 압력 방식의 단점을 말끔히 해소한 발명품이 전자동 무압력 추출기다.

이 제품은 추출기 내부를 들여다볼 수 있도록 강화유리를 부착해 탕이 끓는 과정을 눈으로 볼 수 있다.

여기에 강화유리 뚜껑 가운데를 뚫어 호스로 약재탕 속에 연결, 무압력으로 공기 중에 증발할 수 있는 탕 수증기가 다시 탕 속으로 환류하는 증류 기법이 적용됐다.
전자동 무압력 한약 추출기는 경서기계가 대한민국 한방 추출기 시장을 70%까지 선점하는 원천이 됐다.

경서기계는 이에 그치지 않고 2002년, 국내는 물론 세계 추출기 시장에서 최상의 특허기술을 자랑하는 ‘초고속 진공 저온추출기’를 출시하기에 이른다.

5년 이상의 기술설비 투자로 생산된 초고속 진공저온 추출기는 농가·과수원·한방·건강원·식품제조업·연구소·실험실·대학·주류업 등 모든 분야를 막론하고 활용이 가능하다.
이 때문에 초고속 진공 저온추출기는 각종 한방 국제박람회 및 대회에서 입상을 휩쓸고 있다.

이 뿐 아니라 동서한방병원·동국대한방병원·함소아한의원·홍삼건강마트·휴리체 등 기존 한방업계의 추출기 시장도 선점하고 있다.

#윤태문 경서EP 대표 인터뷰
   
 

“영업밖에 모르던 친구가 ‘발명가’가 됐다고 주변에서 다들 놀라곤 한답니다.”
윤태문 경서기계산업 대표는 대표적인 영업맨 출신의 엔지니어다.
열정 하나만 믿고 무에서 유를 창조했다고 해도 과언이 아닐 만큼 그는 기술 분야엔 자신이 없었다.
특히 제품 개발의 필수과제인 ‘금형제조’를 섭렵할 때는 말 그대로 ‘앞이 깜깜했다’는 게 그의 소회다.

“신제품을 내놓기까지 여러 개의 복제품을 생산했습니다. 원천기술이 없으니 경쟁사의 제품을 보고 베낄 수밖에 없었죠.”
각고의 노력 끝에 내놓은 신제품은 다행히도 경쟁시장에서 날개 돋친 듯 팔려나갔다.

그렇게 시작된 그의 승승장구는 근 15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어지고 있다.

하지만 윤 대표는 항상 위기를 준비해야 한다는 의중이다.

그렇기에 현재 공장 규모를 늘리고 시설의 첨단화에 공을 들이고 있다.
그런 고민의 끝엔 대한민국 최대의 ‘한방종합백화점(웰빙하우스)’을 설립하는 목표가 담겨 있기도 하다.

또한 전국에 산재한 한방 브랜드 제품기업을 하나로 묶어 협동화소사장제를 통한 기업 상장이라는 야심찬 포부도 전한다.

윤 대표는 현재가 있기까지 어려운 시절 함께 두 아이들을 키우며 자신을 지켜준 아내의 도움이 컸다고 말한다.

현재 서구경영자협의회와 인천수출경영자협의회의 사무총장을 맡고 있는 윤 대표는 “경서기계의 미래를 위해 꾸준히 제품 개발에 혼신을 다하는 것과 함께 지역사회의 어려운 이웃을 위해 현재 진행하고 있는 다양한 사회봉사에 더 심혈을 기울이는 것이 가장 큰 바람”이라고 말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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