더운 여름날 고속버스에 안에서 있었던 일이다. 딸과 함께 탄 아줌마 승객이 딸의 의자를 뒤로 눕혔다. 편하게 기대어 쉬면서 가라고 딸을 챙긴다. 20대 초반의 딸은 엄마의 보살핌과 시중이 익숙한 듯 섬김을 자연스럽게 받는다. 뒷좌석 손님이 의자를 조금만 세워줄 수 없느냐며 부탁을 한다. 날씨가 더워 앞좌석이 뒤로 끝까지 눕혀지니 공간이 좁아져 답답하고 더 더운 것 같다고 한다. 아줌마, 순간 뿔났다. 목청 좋고 거침없다. 우리 애 편히 쉬어야 하는데 웬 방해냐. 이 의자 뒤로 쭉 젖혀지는 거 모르냐. ‘우리 애 편하게 가야 한다.’에 감히 이견을 보인 뒷사람이 몹쓸 인간이 됐다. 딸은 엄마의 소동에 무반응이다. 엄마의 지극한 보살핌이 당연한 모양이다. 뒷좌석 승객이 몇 번 대응하다 포기한 듯, 네 네 하고는 만다. 그래도 아줌마는 기세등등 우렁차게 상대를 몰아붙인다. 승객들은 짜증이 나기 시작하고 ‘아줌마가 조금만 양보하세요.’ 드디어 기사분이 한마디 했다. 그제야 조금 누그러진 아줌마, 딸을 토닥이며 편하게 쉬라고 햇빛 차단이며 에어컨바람 조절이며 지극한 정성을 보인다.
딸이 장해가 있나 싶었는데 휴게소에서 내린 모녀를 보니 딸은 건강하고 예쁜 아가씨였다. 딸에 대한 지극한 사랑이 특별한 것 같다. 휴게소에서도 이것저것 챙겨주는 모습이 유난하다. 모든 것 다 줘도 아깝지 않은 사랑스런 내 딸이 세상 사람들한테도 사랑스러워야 한다. 장거리 긴 시간, 뒷좌석 승객도 편하게 가고 싶다. 배려는 내가 편해지는 방법이다. 껄끄러운 관계는 서로가 피곤하고 나만 생각하면 미운털이 박힌다.
얼마 전 부부갈등으로 고민하는 젊은 가장이 상담을 해 온 적이 있다. 자기 생각만 옳고 내 말은 들어보려는 성의조차 없는 아내의 일방적 의사소통에 숨이 막힌다며 결혼한 것을 후회했다. 무슨 일만 있으면 장모님 전화에 장인어른 호통에, 밤낮을 가리지 않고 시도때도 없이 집에 찾아와 온갖 참견에. 기가 죽어 눈칫밥 먹는 자신이 한심스럽다고 눈물을 보인다. 아내의 시비와 잔소리가 무서워 아내 눈치 보며 비위맞추기 급급하고 아침밥은 먹어본 기억이 없고 회식 때문에 귀가가 늦어지는 날이면 토라진 아내를 위해 온갖 아부와 보상을 약속해야 하는 스트레스가 이만저만이 아니라고 한다. 가위에 눌려 땀에 젖어 잠을 깬 적도 여러 번이라는 말에 안쓰러웠다.
정작 본인은 가부장적 집안에서 아버지에게 눌려 살았는데 지방 소읍에 살고 있는 완고한 아버지는 ‘저 못남 놈, 못난 놈.’ 하시며 길길이 야단만 친단다. 의논할 만한 어른이 없어 고민 끝에 나를 찾아왔다며 자기 아내를 만나봐 달라고 부탁을 했다. 자기가 부탁했다는 말은 하지 말고 우연처럼 만나는 기회를 만들 테니 자기 입장을 변호해 달라는 것이다. 누구의 삶에 밤 놔라 대추 놔라 참견하고 조언하는 일이 쉽지 않다는 것을 알기에 선뜻 ‘그러마’ 하지를 못했다. 참 쉽지 않은 화두다. 상한 마음을 들어주고 밥 한 그릇 사주는 것으로 그날 만남을 마무리했는데 마음이 편치 않았다. 아내의 입장을 진심으로 이해하는 마음을 가져보라는 내 말에 ‘노력해볼 게요’하며 돌아가는 뒷모습이 측은해 보였다.
요즘 젊은이들은 너나없이 귀하게 자란 아이들이라 몸은 성인이 됐지만 정신까지 성숙하지를 못한 이가 많은 것도 사실이다. 세상사는 일이 녹록하지 않아 시행착오를 거치겠지만 다독거려주고 기다려주면 지혜롭게 잘 헤쳐나갈 텐데 부모의 생각은 다른 모양이다. 곱게 기른 내 자식, 어딜 가나 대우받기를 바라니 시중들어줄 사람이 어디 있겠나. 부모의 자충수가 오히려 신혼가정을 혼란스럽게 한다. 주변 지인 중에도 세상사는 이야기를 할 때는 배려와 존중에 일가견을 가진 분인데, 내 자식이 관계되면 상황이 반전되는 일이 벌어지곤 한다. 이런 일을 몇 번 경험하다 보니 자식 문제는 진심어린 조언을 해주고 싶다가도 망설이게 되고 나는 과연 어떤 어른이며 어떤 부모로 보여질까 고민도 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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