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방글라데시인 유스프씨

   
 

“추석이요? 벌써 20번째 맞고 있습니다.”
21년 전 방글라데시에서 돈을 벌기 위해 머나먼 타국 한국으로 건너온 외국인 근로자 유스프(42)씨.
“처음 추석을 맞은 게 지난 1992년이었다”는 유스프 씨는 “이제 한국의 명절이 마치 내 나라의 명절을 맞는 것처럼 친숙하고 즐거운 일이 됐다”며 너털웃음을 지었다.

유스프 씨가 한국에 첫발을 내디딘 건 지금으로부터 21년 전인 1991년 10월.
당시 그는 인천시 부평구에 위치한 ‘영진광학’이라는 카메라렌즈를 만드는 회사에서 외국인 근로자로 첫발을 내디뎠다.
“그때까지만 해도 외국인 근로자가 그리 많지 않았다”는 유스프 씨는 “일하는 것보다 한국 사람들과 어울리지 못하고 혼자 지내는 외로움이 너무 커서 많이 서러웠다”며 초기 한국생활 때의 시절을 회상했다.

그러나 그는 한국에서 부인 김돈희(42)씨를 만나 슬하에 김지한(13)·지민(8)군을 두면서 이제 이곳 인천이 제2의 고향이라며 오히려 방글라데시보다 더 친근하다고 한국생활에 대해 만족했다.

동갑내기 부인 김 씨를 만난 건 1997년. 우연히 호프집에서 그녀를 본 후 자주 마주치면서 사랑에 빠졌던 이들은 당시 처가의 반대가 무척 심했던 상황이 마치 드라마의 한 장면을 연상케 했다.

유스프 씨는 “장모님이 이 사람을 수원에 사는 처형 댁으로 데려갔을 때는 영영 못 보는 줄 알았다”며 “도망쳐 내 품으로 오지 못했다면 전혀 다른 인생을 살았을 것”이라고 말하며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올해로 20번째 추석을 맞는 그에게 더는 우리의 명절이 외롭지 않다. 이제는 처가에서도 귀한 사위 대접을 받는다.
특히 무슬림은 돼지고기를 먹지 않는데 이제는 장모가 그의 식성에 맞춰 만두를 만들어도 쇠고기가 들어간 것을 따로 만들 정도다.
유스프 씨 입맛 역시 이제는 한국 사람이 다 됐다.
“방글라데시도 명절이 있지만 술을 마시고 놀지는 않는다”는 그는 “가족이 모여서 술도 마시고 하는 문화가 힘들었는데 이제는 내가 더 소주를 많이 마실 정도”라며 너스레를 떨었다.

이렇게 한국생활에 익숙해진 그에게도 해마다 찾아오는 추석이면 가슴 한 구석이 아려온다. 그것은 바로 아직도 고향에 있는 가족들 때문.
1년에 한 번은 고향 방글라데시에 가고 싶은 유스프 씨지만 4인 가족 비행기값만 무려 500만 원 이상이 들기 때문에 마음만 매년 방글라데시를 향한다고 한다.

그는 “지난 8월 아이들 방학을 맞아 고향에 다녀왔다. 내가 7남매 중 둘째인데 어찌 가족이 보고 싶지 않겠느냐”고 말하며 눈시울을 붉혔다.
한편, 유스프 씨는 오히려 자신보다 이제 한국에 온 지 얼마 되지 않은 다른 외국인 근로자들의 고충이 더할 것이라는 말을 했다.
“나는 그래도 여우같은 마누라와 토끼같은 자식이 있다”며 운을 뗀 유스프 씨는 “나도 그랬듯이 이제 막 한국에 온 친구들이 걱정이다. 말도 통하지 않고 가족도, 연고도 아무것도 없는 그들에게 추석은 마치 시베리아 벌판에 홀로 남겨진 듯 사무치는 외로움만 더 느끼게 한다”며 안타까운 심정을 나타냈다.

 

▶중국 소매 씨

   
 

추석을 앞둔 지난 6일 오후 수원시 권선구 화서동의 한 전통시장에서 추석 성수품 준비가 한창인 결혼 1년차 새댁 소매(30·중국)씨를 만났다.

현재 임신 6개월인 소매 씨는 이날 시어머니 송난성 씨와 함께 제수용품을 사기 위해 시장을 찾았다. 지난해 5월 결혼한 뒤 첫 추석을 맞은 소매 씨는 시어머니와 함께 장을 보는 것이 신기할 따름이다.

특히 친모녀처럼 닮은 이들의 모습에 시장 상인들 역시 부러워하며 단돈 100원이라도 깎아 주려는 모습이 우리나라 고유의 명절인 정이 넘치는 추석이 다가왔음을 보여 줬다.

“결혼한 뒤 처음 맞은 지난해 추석에는 남편과 함께 중국에서 보냈어요. 그래서 이번이 한국에서 맞는 첫 번째 추석인 셈이죠. 아직 한국의 명절인 추석 분위기가 낯설지만 시어머니와 함께 전통시장에서 제수용품 이것저것을 살펴보고 고르니 정이 넘치는 추석 분위기를 느끼고 있어요.”
2년여에 걸친 장거리 연애 끝에 지난해 결혼에 골인한 소매 씨는 남편에게서 배운 한국어 실력이 유창하다. 그런 그녀지만 아직 모든 가족이 한자리에 모이는 추석은 부담일 수밖에 없다.

송편 빚기에서부터 제사상 차리기 등 서툰 것 투성이다. 하지만 추석을 앞둔 소매 씨의 자신감은 하늘을 찌를 듯하다. 추석을 대비해 지난 주말 경기도가 마련한 ‘시어머니와 함께하는 다문화교실’에 참가해 송편 만들기를 체험했기 때문이다.

“송편은 중국의 만두와 비슷하게 생겼지만 만드는 과정이 너무 어려웠어요. 하지만 몇 개의 못생긴 송편을 만든 시행착오를 거친 끝에 예쁜 송편을 빚는 데 성공했죠. 한국에서는 예쁜 송편을 빚으면 예쁜 딸을 낳는다는데 곧 태어날 딸을 생각하며 열심히 만들었어요.”
이처럼 그녀가 추석 준비에 열심인 이유는 지난 설에 겪은 한국 명절의 공포(?) 때문이다.

올해 초 설 준비에 나선 소매 씨는 한국 여성들이 겪는 명절 분위기에 상당한 충격을 받았다. 나라가 다르니 명절문화도 다를 수 있겠다고 생각했지만 넘쳐나는 집안일에 적지 않은 충격을 받은 것이다.

“중국도 명절음식을 만들고, 손님이 오면 그 음식을 대접하죠. 하지만 설거지 등 정리정돈하는 일은 남편과 아내가 함께해요. 그런데 한국에서는 여자들끼리 뒷정리까지 하더라고요. 처음에는 적응하기 힘들었지만, 남편에게 한국 명절문화에 대한 설명을 듣고 이해할 수 있었어요.”
이날 시어머니와 함께 추석 장보기에 나선 바구니 가득 먹거리를 장만한 소매 씨는 끝으로 추석을 앞두고 당찬 각오를 밝혔다.

“서툰 실력이지만 어머니와 함께 추석 음식을 맛있게 만들어 가족들과 뜻깊은 명절을 보낼 거예요. 이번 추석을 계기로 내년부터는 설과 추석 명절에 어머님 도움 없이 조상님들과 가족에게 먹일 음식을 직접 만들어 볼 생각이에요. 여러분도 모두 즐겁고 행복한 추석 보내세요.”

▶베트남-레티투, 호황남 부부

   
 

다문화가정과 외국인 근로자들이 명절이면 삼삼오오 모여 명절을 보내는 곳이 있다. 수원역전시장 지하 1층에 문을 연 ‘다문화푸드랜드’가 바로 그곳이다. 지난 7월 24일 문을 연 다문화푸드랜드는 평소에는 고향의 맛을 느낄 수 있는 장소지만, 명절에는 고향의 정취를 느낄 수 있는 고향집으로 탈바꿈한다.

이곳에서는 베트남과 러시아·중국·태국·몽골 등 5개국의 음식을 맛볼 수 있다.

이 중에서도 쌀국수와 월남쌈으로 유명한 베트남 음식을 만드는 레티투(37·여·한국명 이혜수)씨와 호왕남(37)씨 부부는 베트남에서 온 외국인들 사이에 친구이자 가족이다.

1995년 산업연수생으로 한국을 찾은 레티투 씨는 2005년부터 수원시 화서동에서 식당을 운영했다. 하지만 5년 넘게 운영해 온 식당이 재개발로 사라지자 그는 역전시장에 다문화식당을 차렸다.

남편 호왕남 씨와는 산업연수생 시절 같은 회사에 근무하며 사랑을 키웠다.
마르고 앳된 외모의 그녀지만 13살과 2살 된 딸과 4살짜리 아들을 둔 13년차 베테랑 주부다.

이들 부부가 한국에 온 지도 벌써 16년. 그동안 아는 지인도 참 많아졌다. 국제결혼상담소, 음식점 등을 운영하는 친구부터 직장생활을 하고 있는 근로자들까지 다양한 계층의 친구들을 만나면서 이들 부부는 이들의 안식처가 돼 줄 식당을 운영하기로 마음먹었다. 타국에서 느끼는 고향에 대한 그리움을 고향 음식을 맛보며 달래자는 것이었다.

“많은 친구들이 한국에서 일하며 한국인 특유의 근성과 부지런함에 비교당하며 게으르다는 말을 듣거나, 심하게는 욕까지 듣는다고 해요. 하지만 이것은 모든 일이든 천천히 꼼꼼하게 하는 베트남 사람들의 문화적 습관일 뿐 대화를 통해 충분히 고쳐 나갈 수 있는 부분입니다.”
레티투 씨는 한국생활 16년차인 자신도 아직 한국문화에 적응하기 어려운 만큼 한국사람들이 조금 더 여유를 갖고 베트남 사람들을 지켜봐 달라고 부탁했다.

이처럼 많은 베트남 사람들이 타향살이로 심적으로 외로워하며 힘들어할 때면 그녀는 보다 베트남의 맛을 낼 수 있도록 음식 재료도 베트남에서 직접 공수해 오기도 한다.

특히 이번 추석 명절에도 식당을 찾는 베트남 사람들을 위해 그녀는 성대한 잔치를 열 생각이다.

“이번 추석에는 저뿐만 아니라 지인들이 직접 각자 베트남 음식을 만들어 와 다함께 나눠 먹을 계획입니다. 베트남 전통음식인 ‘바인 쭝투’도 만들어 먹을 거예요.”
음식점을 운영한 지 6년째를 맞는 레티투 씨는 끝으로 한국과 베트남을 떠나 명절에는 모든 사람이 즐겁고 행복한 시간을 보내야 한다며 베트남과 한국 사람들을 식당으로 초대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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