오대산 옛길을 걸었다. 터덜터덜 걷는 모임에서 이번 달에 정한 장소가 오대산 옛길이다. 상원사와 월정사가 있어 사철 등산객과 절을 찾는 불자들로 부산한 곳인데 나들이하기 최고의 계절이라 어김없이 사람들로 복잡했다. 우리는 등산이 주가 아니라 옛사람들이 걸었던 길을 따라 바쁠 것 없이 여유롭게 하루를 걸으며 자연을 느껴보는 시간을 갖는다.

오대산 옛길은 보부상도, 화전민도, 숯쟁이도, 벌목꾼도, 스님도, 불자도, 생을 살면서 다져놓은 길이다. 오랜 세월 무수한 발자국이 만들어 놓은 길은 산의 지형을 따라 오르고 내리며 개울을 끼고 가다가 섶다리를 건너 올말졸망 이어져 있다. 고운 색으로 물든 단풍과 전나무 숲길, 어우러져 살고 있는 다양한 종류의 식물들이 숲 사이로 비쳐드는 가을 햇살에 존재를 드러내 보인다. 무릇 생명 가진 모든 것들이 위대함으로 우리를 겸손하게 만든다. 풀씨를 달고 바람에 나부끼는 강아지풀, 개울물에 떼지어 다니는 작은 물고기들, 물 위에 떠다니는 색 고운 나뭇잎, 까슬한 바람과 맑은 하늘이 마음을 편하게 다독거려준다.
경쟁으로 인한 긴장의 연속은 무기력을 불러오고 똑같은 반복의 일상은 지루함으로 재미가 없다. 때로는 내 삶을 갉아먹는 기생물이 돼 숙주인 우리 몸과 정신이 피폐해지기도 한다. 문득 돌아보면 거품같이 허망하고 사그라질 것들에 우리는 목숨을 건다. 삶의 현장은 가파른 협곡을 기어오르듯 치열하다. 주말이면 휴식을 위해 자연을 만나려고 나온 사람들이지만 산을 올라도 악착같이 정상에 서야 한다. 휴식조차 경쟁이라 네가 가면 나도 가야 한다. 전국의 산들은 밀려드는 등산객으로 온몸이 쑤신다. 우측통행은 산길에도 지켜야 할 규칙이 됐다. 오르고 내리는 인파들로 북새통인 좁은 등산로에서 궁여지책으로 내놓은 안전질서 도우미인가 보다. 그래서 새롭게 느림이 조명을 받는다. ‘슬로우’로 명명한 의식주에 관련된 삶의 전반에 우리는 긴장과 무기력을 벗고 위로를 받고자 한다. 그 중의 하나로 도보여행이 인기를 얻고 있다.

처음 올레 길을 만든 제주 올레 서명숙 이사장은 ‘과연 누가? 몇 명이나? 돈 내고 힘들게 걸으러 올까?’로 고민이 많았다고 한다.

‘서명숙이 제주에 낸 길은 사람을 부르고
동행을 부추기는 평화적이고 자유롭고 다정한 길이다.

놀다가 쉬다가 걸을 수 있는 자유롭고 평화로운 길의 유혹!’‘이라고 한 박완서 작가의 말씀이 생각난다.

‘터덜터덜 걷기’도 같은 맥락에서 시작했다. 말 그대로 한 달에 한 번 터덜터덜 걸으러 간다. 잘 다듬어 놓은 길이 아닌, 흙을 밟을 수 있는 옛길이면 더 좋다. 쉬엄쉬엄 가다가 자연을 둘러보는 시간도 즐기면서 미화가 필요 없는 숲에서 들에서 실망할 일 없는 하루를 보네고 온다.
노곤한 귀로는 내 삶의 고마움을 순하게 복원시켜주고 저열한 감정을 삭여 소박한 사람으로 돌려준다. 이 지구상에 호모 사피엔스로 태어난 사람이 무려 1천60억 명이라는 통계 수치가 있다. 이 중에서 우리보다 먼저 돌아가신 분들이 1천억 명이고 현재 생존하고 있는 인구가 60억 명이다. 자연에서 만난 생명들은 우리 인간의 수보다 훨씬 많을 테고, 함께 뒤섞여 살아도 불만 없이 서로를 존중해주지 않았을까? 천박한 욕망이 없으니 노여움도 없었을 자연 앞에 소수자인 인간은 자연의 질서를 배워야 한다는 생각이 든다. 터덜터덜 걷는 길에서 자연의 고상한 자태를 배워온 하루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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