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간이란
천국에 들어서기엔 너무 민망하고,
지옥에 떨어지기엔 너무 억울한 존재들이다.’
박민규의 소설에 나오는 구절이다. 작가는 인간이 가진 복잡한 속성을 짧은 문장 안에 명쾌하게 풀어냈다.

인간의 뇌는 우리 몸 총량의 2.5%에 지나지 않지만 에너지는 20%를 사용한다고 한다. 그만큼 복잡한 것이 인간이다. 사람 수만큼 다양한 것이 인간의 마음이라 3천300만 명의 신을 모신다는 힌두교의 신은 우리 인간의 희로애락을 대신할 신의 존재가 이리도 많이 필요해서 일 것이다. 인간의 마음이 복잡하게 분열하다 보니 그에 맞는 세분화된 역할을 관장할 신이 필요하고 또 필요해서 신들의 숫자가 점점 늘어난 것이리라.
인문학 고전이 새롭게 뜨고 있다. 출세하는 방법, 부자 되는 방법이 주류를 이루던 출판계에 조심스러운 타진으로 인문학 출간을 시작하는 출판사가 있고 소수이긴 하나 사람들도 인문학에 동참해 즐거이 고전을 읽는다. 여러 곳에서 인문학 강좌가 인기를 얻고 있는 것도 이를 증명한다. 문학에 대한 관심도 이런 분위기를 타고 조금씩 살아나고 있다. 존재의 증폭을 위한 문학이라고 하면 거창하게 들릴 수도 있겠지만 앞에 인용한 구절처럼, 인간은 야수와 천사 사이를 진자 축처럼 왔다 갔다 하는 존재다. 그 속에서 창작된 문학은 옳고 그름이 정확하게 판단되는 개념인 진리보다는 진실을 추구하는 타당성에 초점을 맞추어 가는 것이라 생각한다. 타당성은 진실과 통하고 진실을 추구하는 데는 인간이 가진 다면성을 봐야 가능할 것이다. 이렇게 복잡한 인간들이 바른 항로를 선택하도록 도와주는 등대의 역할을 문학이 한다 해도 과장된 말은 아닐 것이다.
글은 거대한 에너지를 가진 생명체다. 생각에서 그친 것보다 직접 써서 새겨놓은 결심이 결과로는 엄청난 차이를 만든다는 보고서가 있다. 세계 최고의 수재들이 다니는 하버드 대학에서 졸업생을 상대로 한 조사에, 인생의 목표를 글로 써 놓은 이가 그렇지 않은 이보다 연봉이 수십 배 더 높았다고 한다. 물론, 이 경우는 문학작품이 아닌 내 인생을 관리하고 성취를 위해 새겨놓은 다짐이지만 글로 써 놓았기에 수시로 보면서 마음을 다잡아 목표를 향해 매진할 수 있었던 것이다.

글을 쓰려면 먼저 생각을 하고 그 생각을 다듬기 위해 진지하게 또 생각을 하게 된다. 이런 과정을 거치면서 가치있는 체험을 재구성해 작품에 녹여낸다. 문학성의 깊이는 작가의 역량이라 단순계산으로 판단하기 어렵지만 읽은 사람의 정서를 편안하게 만들고 마음의 질서에도 영향을 주어 그를 바르게 세워준다면 문학의 참역할로 최선이라 하겠다.

가을이 무르익어 가는 지난 10월의 막바지에 ‘문학이 주는 위안’이란 주제로 강연을 하게 됐다. 살아온 세월도, 하는 일도, 학력도 다양한 청중들에게 어떤 주제로 어디에 초점을 맞춰야 이분들이 공감할까에 고민이 됐다. 그러다가 생각한 것이 진솔한 내 이야기를 하자였다. 글이, 문학작품이 우리 삶에서 어떤 역할을 할 수 있는지 내 경험과 주변 문인들 이야기로 1시간 반을 풀어나갔다. 반응해 주는 청중들의 공감이 열정을 불러내 흡족한 시간이었다.

이 가을, 책 읽기 좋은 계절에 독서로 마음을 살찌우고 직접 글도 써 보라고 권유했다. 나를 다듬는 일이니 주저하지 말고 시작해보라고. 글쓰기는 치유의 능력도 있어서 나와 그리고 관계 맺은 타인, 모두를 다독이고 위로하고 용서하는 일들이 글을 써 나가는 동안에 내 마음에서 자라나 생기로 퍼져나갈 것이라 했다. 연세 지긋하신 분이 사인을 부탁하시면서 강연이 좋았다고 가슴 뭉클했다며 감사를 표할 땐 나도 울컥 고마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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