시간의 속도는 분명 일정할 텐데 12월의 시간은 유독 빠르게 지나가는 것 같다. 남은 시간은 얄팍한데 성과는 만족스럽지 않고, 그러다 보니 마음이 급해져서 일 것이다. 아직 마무리하지 못한 계획들은 군데군데 휑한 모습만 도드라져 보이고 움츠려든 가슴은 초조함으로 스트레스를 부른다. 거기다 송년모임은 줄줄이 있어 조금씩 피로가 쌓여간다. 한 해를 돌아보며 털어버리고 위로받아 새해를 잘 맞이하자는 취지의 송년모임이 잦을수록 의미가 퇴색되어 간다. 원만한 관계를 위해 눈도장을 찍어야 하는 의무감에 피로가 쌓이다 보니 ‘송년모임은 이제 그만’이라고 쓴 지인의 카카오톡 상태 메시지에 공감이 간다.

지나온 1년, 참 많은 일들이 있었다. 막강한 권력자의 사망이 있었고 튀니지의 자스민 혁명을 시작으로 아랍의 봄을 불러온 독재자의 축출은 반정부 시위로 번져 중국까지 흔들었다. 또 한 사람, 우리 삶의 패턴을 바꾼 애플의 스티브 잡스도 어록을 남기고 영면하셨다. 가고 오는 자연의 법칙은 불가사의가 아니라 그지없이 단순한 생(生)의 교훈이다. 일그러진 흐름은 결국 정도로 돌아오게 돼 있다. 그런데도 핑계와 합리화에 맛이 들려 자주 잊어버리고 산다.
365일, 밤낮을 보낸 세월이 녹록지 않다. 이름 석 자 뉴스에 오를 일 없는 평범한 국민으로, 있는 듯 없는 듯 미미한 존재였지만 한 사람의 시간은 위대하다. 세상의 모퉁이에서 누군가에게 따뜻한 손길이 되어주기도 했을 것이고 욱하고 치미는 감정에 언성을 높이고 핏대를 세웠을 수도 있다. 그래도 선량한 백성으로 열심히 일하면서 꼬박꼬박 세금 납부하고 국제경기가 열리면 애국심에 목이 터져라 응원했다. 팍팍한 경제가 좋아지겠지 좋아지겠지, 가뭇없는 희망을 안고 버텨낸 1년이다. 작년이나 재작년이나 별반 다를 것 없는 서민의 생활이지만 또 다시 내년, 새해에 장밋빛 환송을 보내면서 기대하고 기다린다.

나를 돌아본다. 거국적으로 평가할 것 없이 한 살이 더해지면 지혜가 고만큼만 더해지면 좋겠다. 남이 보면 대단할 것 없는 계획들이라 소박해 보이겠지만 의미있게 작용해 또다시 연말이 되었을 때, 꽉꽉 가슴을 채워 숭숭 바람 지나가는 소리가 들리지 않았으면 좋겠다.

여류문인 7명이 모여 내년 소설 창작 편수를 공개적으로 약속했다. 치열한 작품 활동을 하겠다는 의지가 강건해 자극이 된다. 나는 소심하게 분량 면에서 반으로 낮췄다. 예전과 다를 바 없는 작품 편수를 정해놓고 질로 승부하겠다고 위안을 해 본다. 그러면서 치열함이 없는 작가로 한 해를 살 게 될까봐 걱정이 된다. 무리수를 두더라도 편수를 늘려볼까 슬그머니 욕심이 생겨나는 걸 이성이 정돈을 했다. 하는 일이 있어 전업 작가는 어차피 힘들고 최선을 다해보자는 결의를 가슴에 새겨 용두사미가 되지 않도록 열심히 해 볼 참이다.
사람은 누구나 원하는 소망이 있다. 천차만별 각각인 소망은 나한테만 결핍이라 채우고 싶은 간절함에서 비롯된다. 그것이 남에게는 하찮은 것으로 여겨지더라도 본인에게는 절실하다. 나에게 의미있는 충족은 작품을 쓰는 일이다. 사는 일이 시시해지지 않게 만들어주는 글쓰기는 그래서 중요하다. 글을 쓰는 시간은 에너지를 갉아먹는 일이라 힘이 든다. 완성된 작품이 농밀한 문학성으로 합평을 받는다면 더 바랄 것이 없다. 힘이 든다고 엄살을 피워보는 것도 작품이 좋아야 가능한 일이다.

내년, 신년은 용의 해다. 60년 만에 돌아오는 흑룡의 해라고 벌써부터 기대가 크다. 기운 넘치는 흑룡의 기를 빌려 내년엔 모든 사람들의 삶이 윤택해지면 좋겠다. 물질이든 정서적 풍요든 충만함으로 여유로워지기를 소원해본다. 더불어 내 소망도 흐지부지 흩어지는 일이 없도록 성실히 노력하겠다. 그래서 결산하는 마지막 달, 12월을 신명나게 만들어 보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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