참 오랫동안 감사한 마음으로 우러렀던 분이 계신다. 한 해를 마무리하거나 새로 시작할 때 지금의 나, 우리 가족을 있게 한 고마운 분 중 으뜸으로 떠오르는 분이시다.
유달리 병치레가 잦은 두 아이를 키우면서 심장이 벌렁거릴 때가 한두 번이 아니었다. 고열로 경기를 하거나 감기 합병증으로 폐렴이 되어 입원을 하면 마음 여린 엄마는 안절부절 좌불안석이 되었다. 의사 선생님은 넘쳐나는 환자들로 종일 바쁘게 진료를 하시느라 피곤하실 법도 한데, 환자 한 사람 한 사람마다 손을 잡고 어깨를 안아 다독여 주셨다. 곧 좋아질 것이라며 마음에 안정을 주시고 환자들을 위한 새벽기도도 열심인 참의술을 펼치는 분이셨다. 차 한 잔 나누며 들은, 오밤중 꽁꽁 언 길을 1시간이나 걸어서 가난한 환자 집에 왕진간 이야기는 큰 감동으로 다가왔다.

어릴 때 잔병치레하는 애들이 커면 건강해진다며 위로를 주셨던 의사 선생님 말씀대로 아이들은 초등 고학년이 되면서 점점 병원 가는 횟수가 줄어들고 아주 건강해져 병원과 소원해졌다. 이사를 가 의사 선생님과 사는 지역이 달라지고 가끔 연말에 카드를 보내곤 했는데 답장이 없어지면서 본의 아니게 연이 끊어졌다. 그래도 그분에 대한 좋은 기억이 있어 우리 애들에게 늘 이 사회에 도움이 되는 베풀면서 사는 사람으로 살아가라고 그분을 칭송했다.

세월이 한참 지나 그분을 뵈러갔다. 해가 바뀌어 먼 거리를 일부러 인사차 들른 병원 원장실에서 어색한 악수를 했다. 마음속에 고결하게 저장된 기억이 문득 혼란스러워졌다. 정화된 성숙을 키워왔을 법한 세월이 기대를 팽개쳐 버렸다. 혹시 부담스러운 부탁을 하러 온 것은 아닌지 고고했던 눈빛에 의심이 담기고 가슴으로 환자를 진료하던 모습은 사라지고 없었다. 그래도 옛이야기를 나누며 강물처럼 삶을 바라보던 원장님을 그리려고 했으나 끝내 돈 잘 버는 직업으로 의술을 택한 원장님이 계실 뿐이었다. 지난 이야기를 자꾸 꺼내자 그런 시절이 있었나? 의외라는 듯한 반응이 민망했다. 강산이 변하고도 남을 십수 년이 흐르는 동안 그분의 삶에 어떤 큰 고비가 오고 인생관을 바꿀 사건이 있었는지는 알 수 없다. 성년이 되어 가정을 꾸린 자녀들에게 많은 재산을 주고 싶어 조바심을 내고 이 일을 앞으로 얼마나 할 수 있을지 긴 시간이 남아있지 않아 조급해했다. 다른 직업에 비해 물질을 더 많이 취할 수 있는 직업에 자부심을 가진 그분의 모습은 보지 않았더라면 좋았을 텐데, 아쉬운 발걸음을 돌렸다.

돌아오는 차 안에서 만감이 교차한다. 어쩌면 내 이기심일 수도 있겠다는 생각을 해 본다. 사람은 누구나 세상 중의 한 무리로 성공을 바란다. 물질과 지위를 얻는 것에 무심한 영혼이 과연 몇이나 될까. 수도승이 아닌 다음에야 세속의 욕망에서 자유로울 수는 없을 것이다. 물질의 세상은 물질 위에 쌓여진 것으로 우열을 가린다. 때때로 부여된 물질의 양에 따라 지위도 권력도 비례해 따라온다. 그러면서 아이러니한 것은 나는 여러 정황상 힘들지만 다른 누구는 고고하게 살기를 바란다. 지독한 모순이며 이기심이다.
지난 세월, 우리 가족은 그분으로 인해 행복했다. 몸의 병을 치료해준 의술로, 나누고 배려하는 모습으로 화평을 보여주셨다. 덜 나누고 덜 배려하며 사는 것은 아닌지, 그분을 떠올리며 마음을 다스리고 아이들에게 좋은 본보기로 그분 이야기를 해 주었다. 이것만으로도 충분히 좋은 멘토였다고 위로를 해 본다.
머잖아 온화한 바람의 손에 꽃들이 피어나는 봄이 올 것이다. 훈풍을 따라 다시 원장님을 뵈러 가겠다. 원장님의 훤해진 이마와 깊어진 주름이 봄볕처럼 온화하게 나를 맞아줄 것이란 기대를 하면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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