떡집 4부자 이야기를 봤다. 잔잔한 감동이다. 가업을 잇는 것은 피로 연결된 장인정신의 승계라는 생각이 든다. 가난하고 못 배워 시장통 구석에서 생계를 위해 시작한 떡집 일꾼이 사장이 되고, 이제 장성한 아들들에게 기술을 전수하는 과정을 보면서 장인을 만드는 세월이 녹록지 않음을 알게 해주었다. 평생 외골수로 떡을 만드시는 아버지의 자부심은 떡집 아들로 살아도 괜찮겠다는 꿈을 준다.
쫀득한 떡의 질감을 살리는 비결이 물 반죽에 달렸다는 설명은 이론만으로는 부족하다. 경험에서 우러나온 손끝 감촉을 알아야 가능하다. 떡을 잘 찌기 위해 김을 올리고 줄이는 타이밍도, 시루 전체에서 설익는 부분을 한눈에 알아보는 눈썰미도 책으로 배우기에는 한계가 있다. 축적된 경험이 쌓여 맛있는 떡이 만들어지고 좋은 떡을 만들기 위한 노력이 쌓여서 떡명장이 탄생한다.
공부에 흥미가 없어 일찌감치 아버지를 도와 떡 만드는 일을 돕다가 이게 내 일이다며 도전장을 내민 막내부터 명문대학을 나와 집안의 기대주로 고시공부를 하던 장남까지, 떡 만드는 가업에 신바람이 났다. 결단은 어려웠겠지만 각오와 열정이 충만해 떡명장으로 우뚝 설 것이란 기대에 박수를 보낸다. 노력하는 사람이 좋아서 하는 사람을 이기지 못하다고 한다. 기본을 배우기엔 아버지가 최고의 스승이고 전국 어디든지 유명 떡집이 있다는 소문이 들리면 총 출동으로 비법을 배우러 가는 4부자를 보면서 내 하는 일에 대한 열정으로 배워나가는 재미에 기꺼이 수고하는 모습이 뭉클하다.
우리나라는 가업이 이어지는 경우가 많지 않다. 100년, 200년, 혹은 그 이상 더 오랜 세월을 가업으로 이어온 기업이 많은 독일이나 일본처럼 대를 이어 한 가지 일에 매진해 온 기술을 높은 가치로 인정해 주는 분위가가 아니었다. 성공의 기준이 다르다 보니 출세는 권력을 가지는 것으로 인식되어 장인에 대한 예우가 부실했던 것이 사실이다. 명품이라 불리는 제품들은 모두가 대를 이은 장인의 손끝에서 탄생한다. 장인의 손끝에서 나오는 혼과 정성과 안목과 자부심이 긴 세월 축적되어 이어져 내려오면서 후대의 좀 더 나은 기술이 접목되고, 이런 긴 세월이 흐르면서 명품이 만들어진다.
일본의 골목에서 마주한 작은 소바집이 몇 대를 이어왔다는 설명에 감탄했던 적이 있다. 그냥 음식이 아닌 경이로움을 먹는 것 같아 숙연했던 식사였다. 또 족보에는 가업을 승계한 자식만 등재한다는 말을 듣고 가업승계의 자존심이 얼마나 대단한지 가업을 잇는 일에 얼마나 큰 자부심을 갖는지 알게 되었다.
골목의 작은 가게의 가업승계에는 찬사를 보내는 우리가 기업을 대물림하는 것에는 불편한 감정이 생겨난다. 부의 대물림이라는 인식이 강해서다. 창업 1세 분들은 어려운 여건을 이겨내고 오늘을 일구어 내셨다. 기업 고유의 기술이 전수되고 기업의 문화와 인력이 세대를 이어 유지될 수 있다는 장점이 있음에도 부정적인 시각이 더 강한 데는 분명 이유가 있을 것이다.
선대 창업주가 평생을 바친 가업이 명문 장수기업이 되려면 많은 노력이 선행되어야 한다 에 공감이 간다. 부의 대물림이라는 부정적 인식이 확산되는 데는 선대 경영인의 책임도 있기 때문이다. 후계자의 경영 교육을 엄격하게 실행해 사회적 책임에 소홀하지 않고 경영인으로서의 역량을 키워나가게끔 경영수업을 냉철하게 시켜나간다면 혼을 쏟은 선대의 기업정신이 승계되어 안팎으로 건실한 기업이 될 것이다. 전문경영인이 가진 장점에다 가업의 자부심이 더해져 존경받는 가문으로 기업으로, 몇 백 년을 넘어 1천 년도 너끈할 장수기업이 나오기를 소원해본다. 가업을 승계한 후손도 기업도 사원도 나아가 국민들에게도, 자부심이 될 것이다.

떡볶이 양념 비법을 오랜 세월에 걸쳐 터득해 가장 감칠맛 나는 양념배합 비율을 만들어낸 마복림 할머니가 생각난다. 이미 작고하셨지만 가게가 있는 골목 전체를 명물거리로 만들어 전국적으로 유명세를 타 주변 상권을 살리고 나아가 외국인들의 관광코스로까지, 한류 바람에 일조를 하신 분이다. 할머니의 유지를 잘 받들어 대대손손 떡볶이 명문 집안이 탄생했으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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