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월, 화창하다. 꽃들로 세상은 환하고 여린 초록이 눈을 싱그럽게 한다. 계절의 여왕답다. 1년 중에서 가장 좋은 달 5월, 5월은 화목한 가정을 이루기 위한 기념일이 유독 많다. 그래서 가정의 달이기도 하다.
어린이날, 어버이날, 성년의 날, 스승의 날처럼 익히 알고 있는 기념일부터 입양의 날, 부부의 날, 실종아동의 날, 세계인의 날, 생물종 다양성 보존의 날 등등. 화목을 강조하고 서로 배려하며 가족 간에 존중하는 일들과 관련된 기념일이 많이 모여 있다. 좋은 계절의 절정인 5월에 왜 가정의 행복을 각인시켜주는 기념일이 많을까, 여러 생각이 스쳐 지나간다.

우리나라는 급속한 산업화를 이루어 세계 10대 교역국으로 풍족해졌다. 국가의 위상은 높아졌지만 그 과정에서 잃은 것도 많다. 물질이 대신할 수 없는 사람다운 격이 실종되어가고 치열한 경쟁으로 스트레스가 심하다. 가파른 변화를 겪으면서 생긴 부작용이 우리 옆구리를 찌르고 있다.

아들이 가출했다고 한다. 친구는 지금 우울증으로 정신과 상담을 받는 중이다. 이 와중에도 남편은 무심하고 소외에서 오는 외로움과 소통의 굴곡으로 대화가 부재인 상태. 얼굴을 맞대면 언성이 높아져 결국은 말이 안 통해 말이 먹혀야 대화로 풀지. 서로에 대한 분노로 입을 닫게 되는 상황. 우는 친구의 손을 잡고 숲길을 걸었다. 날씨는 화창하고 기분도 좋아지는데, 세상의 일은 자연을 닮지 않는가 보다. 아픔은 고집을 피우고 무관심으로 위장한 속내는 상대에게 나쁜 감정을 키운다.
친구는 명문가 규수였다. 잘 받은 교육과 지적인 이미지에 부드러운 심성을 가진 그녀. 5월의 여왕으로 손색없는 여대생이었고 총명한 남자를 만나 결혼했다. 세상의 지식은 때때로 오만해 겸손한 마음으로 다가가는데 방해가 된다. 수용적인 태도는 패자의 것이 아닌데도 우리의 반응은 민감하다. 자존심의 대결이 누구를 무릎 꿇리는 일이 아님을 알고 있다. 그런데 받아들이기는 쉽지 않다. 남편은 승승장구 출셋길을 달렸고 가족에겐 일방적 지시와 순종을 요구했다. 금전적인 보상이면 모든 것을 다 덮을 수 있다고 생각해 풍요로운 생활을 보장해준 가장이라 어떤 일이 있어도 당당하고 권위적이었다.

“아들과 남편 사이에 끼여서 마음 졸이며 살았는데 결국은 터져 버렸어.”  ‘주눅 들어 눈치 보는 엄마 짜증나. 당신 도대체 집에서 뭐하는 사람이야.’ 질책과 비난에 친구는 점점 무기력해지고 내 판단이 옳은지 자신 없어지고 심장은 벌렁거리며 온몸에 식은땀이 나고 만사가 귀찮아진다고 했다. 이지적이고 단아했던 친구는 어디로 간 것일까? 불안한 눈빛이 안쓰럽다.

여기저기서 흔들리는 가족 이야기가 들린다. 전혀 예상 밖의 가정도 있고 대강 짐작할 만한 가정도 있다. 참 쉽지 않다. 가족 간에는 서로 기대치가 있어 남과 다른 잣대로 평가하고 보상을 바란다. 품어주고 안아주고 위로해주고 이끌어줄 것이란 기대가 만족스럽지 못하면 반감도 상대적으로 크다. 단출한 가족 구성은 완충 역할을 해 주어 틈세를 보완해줄 사람이 없다. 조약돌처럼 둥글어질 감정훈련을 받지 못해 결함이 그대로 드러난다. 그래서 금이 가면 예각으로 날카롭다.
5월, 이 좋은 시절에 가정의 달을 만든 데는 이유가 있다. 한 가정이 반듯하게 서야 사회가 평안하고 사회가 건전해야 국가도 든든해진다. 더불어 살아가야 할 대상을 기리는 기념일이 가정의 달에 다 들어있는 이유다.
아이도 성인도 각각 제 몫의 역할이 있고 부부도 스승도 마주보며 갖추어야 할 예의가 있고 다문화를 수용하는 덕목도 우리에게 필요하다. 5월이 아름다울 수 있는 세상이 되면 좋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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