두 달 사이에 세 번의 부고를 받았다. 각별한 인연을 가졌던 분들이다. 투병 중인 분도 계셨지만 부고는 급작스러웠다. 이제 멀어지는 연습을 해야 하나. 장마로 우중충한 하늘이 먹장이다. 
돌아가신 분 모두 가슴이 미어졌지만 유독 더 생각나는 그분은 평생 독신이셨다. 연민에, 회한에, 복잡한 잔상이 가슴에서 머리에서 떠나지 않는다. 지난해 여름 폭우가 쏟아지는 날씨에 그분을 뵈러 갔던 기억이 난다. 세찬 비바람에 우산도 소용없는 비는 순식간에 구두를 젖게 하고 옷을 젖게 하고 머리까지 젖어 몰골이 말이 아니었다. 생소한 장소는 난감했고 지리에 어두운 방향감각 탓에 낯선 역 주변을 헤매게 만들었다. 전화불통으로 결국은 만나지 못하고 먼 거리를 돌아왔다. 미리 상세하게 알고 갔더라면 이런 낭패가 없었을 텐데. “와서 전화해. 간단한 걸 뭘 고민이니.” 그 말에 대책 없이 나선 게 문제였다. 나중에 그분은 시상식장 맨 앞줄이라 묵음으로 돌려놓은 휴대전화가 주변 소음에 묻혀 통화를 못했다며 미안해 하셨다. 결국 그 뒤로 전화로 약속만 여러 번 했지 이런저런 사정으로 만나지를 못했다. “좀 여유 있을 때 봬요.”는 허망하게 사그라지고 회한만이 남아 가슴을 훑는다.
평생을 독신으로 사신 그분은 까다롭고 예민했다. 잡동사니 속을 보여주지 않는 것이 당신에 대한 예의이라 생각하셨는지 늘 정갈하셨다. 학벌에 지위에 당당하셨지만 허한 가슴을 통째로 숨길 수는 없어 부지불식간에 서늘한 기운을 내비치곤 했다. 분명, 가정을 가지고 아이를 낳고 양육하는 것이 여자의 의무까지는 아니더라도 의미는 있다. 가족은 특히 자녀는 삶의 에너지 역할도 한다. 내 삶을 갈고 다듬는 데 필요한 사포질 역할이 자식이다. 고통·연민·사랑, 그 잡동사니를 경험하면서 신 앞에 고개를 숙이는 게 엄마가 아닌가 싶다.

인생과 저녁식사의 차이는 달콤한 것이 맨 나중에 나오는 것이라 했다. 인생도 그렇다면 좋으련만 세상을 떠날 때가 되면 대다수 사람들은 회한에 빠진다고 한다. 호스피스 병동에서 오랫동안 근무한 의료진이나 간병인들의 인터뷰 내용이다. 생을 마감하면서 가장 후회되는 것들이 성공이나 물질이 아님에도 우리는 물욕도 명예도 권력도 쉽게 포기가 안 된다. 죽음은 멀리 있고 현실은 밀착이라 발 담그고 있는 현재의 욕망에 당연 충성도가 높다. 세속과 신성의 차이라며 거창하게 간격을 벌려놓은 것은 아닌지 돌아보게 된다.
잡초는 땅을 기름지게 만드는 밑거름이고 잡초가 우거진 곳을 개간해야 옥토가 된다고 했다. 속(俗)의 욕망을 채우기 위해 미뤄두었던 일들은 하나씩 해 볼 참이다. 우선 남이 나에게 기대하는 삶이 아닌 나 자신에게 솔직한 삶이 되도록 살아보고 싶다. 선생님 이미지에서 벗어난 자유로움을 누릴 날이 오기는 할까. 첫 장부터 난관이다. 소중한 가족과 지인들과의 화목에 시간을 더 쓰고 싶다. 일에 중독되어 성과에 집착하는 고리를 좀 느슨하게 해 두고 싶다. 화병이 되도록 담아두기만 했던 내 감정들을 표현해 딱딱한 덩어리로 뭉친 가슴을 풀어주고 싶다. 무작정 잘 지내려고 난상토론이 버거워 참을 인자만 새길 것이 아니라 진정으로 내 자신에게도 화평을 주고 싶다. 바빠서 다음에 언제 시간나면, 뒷전으로 미뤄두기 일쑤였던 친구들 지인들과의 만남을 적극적으로 즐겨보고 싶다.
변화는 두려움을 동반한다. 부당해도 익숙한 것에 위로를 하며 참았던 습관에 방향전환을 해 보고 싶다. 쉽지 않을 것이고 곳곳에 장애물이 도사리고 있을 것이다. 그중에서 가장 강력한 장애물은 바로 나 자신일 것이란 예감이 든다. 방해를 하는 것도 나, 행복해지고 싶은 것도 나. 방향감각 둔한 내 머리에, 필요하다면 가슴에도 내비게이션 하나 달겠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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