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무리 경제가 어려운 상황이지만 점점 갈수록 향토기업이 살아남을 자리가 없네요. 이제는 살아남은 기업을 열 손가락에 꼽을 정도입니다.”
수원에서 30여 년째 대표 향토기업을 운영하고 있는 A씨는 최근 수원지역 향토기업의 현황을 묻자 이같이 하소연했다.
최근 지역경제의 근간인 향토기업이 흔들리고 있다.
특히 수원지역은 대표적인 섬유·제조업체들이 경쟁력 약화로 점차 무너지면서 지역 내 매출 상위 기업의 다양성이 사라지고 휴대전화·자동차부품 등 특정 제조업 쏠림 현상이 두드러지면서 업종 불균형이 심각해졌다.
수원은 IMF 구제금융이 발생한 지난 1998년 이전까지 경기도는 물론 서울·인천 등 수도권을 포함해 대표적인 기업도시였다. 하지만 IMF 등 국내는 물론 세계적 경제위기를 맞으며 대기업은 물론 중소기업이 도미노처럼 부도를 맞이하면서 수원지역의 기업들 역시 좌초하기 시작했다.
실제 IMF 발생 전 수원은 한일합섬·대한방직을 비롯해 수원의 대표 기업 삼성전자㈜, SK케미칼㈜(선경합섬) 등 현재 유네스코 세계문화유산인 ‘화성’과 ‘갈비’가 수원의 대표적인 이미지로 자리잡았다면 과거에는 기업도시로의 명성이 더 높았다.
이 같은 기업도시의 원동력은 수원시가 모든 기초자치단체 중에서 가장 많은 인구 110만 명(2012년 기준)을 보유하게 된 가장 큰 원천이었다.
그러나 IMF 이후 대기업 및 중소기업의 경영 악화와 금뗘潤� 경색 및 신규 투자 억제와 같은 수도권 규제 등으로 인해 기업들이 지방과 해외로 이전을 선택했다.

이처럼 수원은 수십 년간 도내 지역은 물론 수도권 경제를 호령해 왔지만 자금과 경쟁력에서 뒤져 종이호랑이로 전락, 대기업과 외지 기업에 안방을 내주고 있는 형국이다.

#수원지역의 대표 향토기업은
수원을 본사로 두며 종업원 20인 이상을 기준으로 수원 기업의 역사는 1960년대로 거슬러 올라간다.

1960년대에 설립된 소수의 기업만이 수원에서 현재까지 운영되고 있으며 1960년 이전에 설립된 기업들은 이제 남아 있지 않다.

수원상공회의소에 따르면 ㈜농우바이오, 삼성전자㈜, ㈜동원데어리푸드, 한국삼공㈜, ㈜덕성, 송원산업㈜ 등 6개 기업이 1960년대에 설립된 것으로 기록됐다.

업력별로 현재 수원에 남아 있는 기업 현황을 살펴보면 1970년대에는 삼성전기㈜(1973), 필코전자㈜(1974), ㈜퍼시픽콘트롤·SKC㈜(1976), 아세아시멘트㈜(수원공장·1977), ㈜선도(1978), 서한화학㈜(1979) 등 모두 7곳이다.

1980년대에는 ㈜이라이콤(1984), 씨와이뮤텍㈜(1986), ㈜한창(1986) 등 21곳이 수원 향토기업으로 남아있으며, 1990년대에는 72곳이 설립, 현재까지 존재하는 것으로 집계됐다.

#수원에서 사라진 향토기업
수원에서 오랜 업력을 가진 향토기업을 살펴보면 대부분의 기업이 모두 폐업보다는 이전을 통해 지역에서 사라졌다.

수원지역에서 고용 창출과 지역경제의 활성화에 큰 역할을 하던 SK케미칼 수원공장이 지난 2010년 울산으로 이전했다.

   
 
또 수원의 대표 기업으로 꼽히던 삼성 협력기업 ㈜이랜텍(1982년 설립)이 2007년 본사를 화성시 동탄으로 이전했다.

항공부품 생산업체 삼광공업사 역시 2004년 용인시 원산면으로 이전했다.

이러한 가운데 수원에서 사라진 기업들의 여러 특징 중 하나는 유명 섬유기업들의 부지가 이제는 주거지역으로 모두 전환됐다는 점이다.

섬유산업 부흥과 함께 매산로에 자리를 잡았던 대한방직이 1996년 철수한 이후 이 부지에는 현재 대우아파트가 건설됐고, 1975년부터 가동해 1996년 폐쇄된 한일합섬 수원공장은 선경합섬과 함께 수도권 섬유산업의 중심으로 이끌면서 종업원 수만 1천100여 명에 달했던 대규모 사업체였지만 현재는 한일타운 아파트가 위치해 있다.

또한 1969년 선경합섬으로 출발해 수원의 대표적인 향토기업인 SK케미칼 부지 역시 대단지 아파트 주거단지로 전환돼 오는 2013년 대규모 아파트 단지가 들어선다.

이 외에 사라진 기업으로는 1970년 설립, 올해 초 아프리카로 사업체를 모두 이전한 가발 생산기업 태양물산을 비롯해 SKM(선경매그네틱, 1997년 이전), KCC금강(2008년 이전) 등이 있다.

#토종기업 몰락
현재 수원지역을 기반으로 한 토종기업 상당수가 사라지면서 수원지역의 경제력도 전체적으로 약화되고 있다. 실제 최근 10년 새 수원에 소재한 대·중견기업 수는 절반 이상 줄었다.

수원시 관계자는 “IMF 이후 지역을 대표했던 SK케미칼, 이랜택 등 대·중소업체가 이전하는 한편 대한방직과 한일한섬 등 섬유업체가 무너진 이후 삼성전자를 제외한 전국적 규모를 가진 수원 대표 기업이 나타나지 않고 있다”고 설명했다.

반면, 수원산업단지를 기점으로 자동차·휴대전화 등 부품산업의 외형은 갈수록 커지고 있지만 하청기업으로는 한계를 지니고 있다.

수원산업단지의 한 휴대전화 부품업체 관계자는 “원청(대기업)업체들은 수익성을 위해 부품 가격을 하청업체끼리 항상 경쟁시키기 때문에 언제 수주를 뺏길지 모르는 상황”이라며 “단순히 외형은 키웠지만 원청 기업의 눈치를 봐야 하는 등 종이호랑이 신세를 면치 못하고 있다”고 말했다.

이처럼 향토기업이 사라지면서 지역경제에 미치는 악영향은 한두 가지가 아니다. 특히 지역 연고가 없는 대기업이나 타지 기업 일색이다 보니 지역에 관심이 덜할 수밖에 없다.
하청업체는 물론 물품 구매도 지역 구분을 두지 않는다. 물품 구매 시 수익만 높다면 외지 기업도 마다하질 않아 침체의 악순환의 골을 더 깊게 하고 있다.

지역경제계 한 관계자는 “단순히 지역 기업뿐만 아니라 지자체도 향토기업 육성과 신규 토착 기업 개발을 위해 적극적으로 노력해야 한다”고 지적했다.

#제2의 전성기를 꿈꾸며

   
 

이에 몇 해 전부터 지역경제계에서는 미래 성장 동력 확보를 위해 우수한 향토기업을 적극 발굴·육성해야 한다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실제 최근 대한상공회의소가 발표한 ‘우수향토기업 사례와 시사점’ 보고서에 따르면 지난 10년간 수도권 소재 사업체 수 증가율은 18.6%에 달하는 반면 지방은 6.1% 상승에 불과했다.

이는 지방 여건상 신규 기업 유치에 어려움이 있는 것이 사실인 만큼 지방경제 활성화를 위해서는 기업 유치 못지않게 지역에 기반을 두고 성장하는 향토기업 육성이 중요하다는 통계를 보여 주고 있다.
향토기업의 생존하기 돕기 위해서는 다양한 정책이 필요하다.
실제 수원지역의 고용은 삼성전자 등 대기업이 주도하고 있다. 최근 대기업들의 흐름은 생산직 중심이 아닌 연구 및 사무직으로 고용 형태가 전환, 수원에 거주하는 직원의 비중이 크지 않은 실정이다.

이로 인해 이들 대기업이 지역경제에 미치는 파급효과가 과거에 비해 적어지자 수원 지역경제에 직접적 파급력을 발휘할 수 있는 중견기업의 육성과 기업 유치가 필요하다고 지역경제인들은 한목소리를 내고 있다.

향토 중견기업 육성을 위해선 우량 기업의 지방 이전을 막아야 하는데 이를 위해선 대기업의 공장 신·증설 허용과 공장총량제 등 각종 기업 규제가 개선돼야 한다.

지역경제계에서는 국내 첨단 대기업 공장 신·증설 전면 허용, 공장총량제 폐지, 외국투자기업 신·증설 전면 허용 등 각종 기업 규제의 철폐를 건의하고 있다.
또 기존의 제조업이 아닌 신기술을 이용한 집약적 첨단기술을 통해 새로운 향토기업을 만들자는 목소리가 나오고 있다.

지역경제계에서는 대안책으로 수원시 고색동 수원산업단지와 광교테크노밸리 등 정보기술·생명공학·나노기술이 결합된 첨단산업 중심으로 산업구조를 재편해 활로를 찾아야 한다는 방안이 제시되고 있다.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