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나라당 이회창 대통령 후보가 23일 공적자금 국정조사가 `통과의례식'으로 흘러서는 안된다며 국감 거부방침과 함께 차기정부에서의 실시 가능성을 시사한 것은 연말 대선정국을 겨냥한 다목적 포석으로 풀이된다.
 
이 후보는 고위선거대책회의에서 “국민의 혈세를 쓴 공적자금에 대한 통과의례식 국정조사가 되는 것은 안하는 것만 못하므로 형식에 그쳐버릴 우려가 있는 국정조사라면 할 필요가 있는지 심각하게 검토해야 한다”고 말했다.
 
그는 또 “어차피 이 문제는 다음 정권에서 좀더 세밀하게 조사하고 공자금의 처리와 책임문제 그리고 앞으로의 처리를 위한 규범으로서 여러 과제를 세우는 문제에 관해 철저하고 엄격한 조사가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이같은 언급은 자료제출 거부 등 피감기관의 행태에 대해 강한 실망감을 피력했다는 점에서 일차적으로 공적자금 국정조사에 소극적 자세를 보이고 있는 정부와 민주당에 대한 `압박용'으로 해석되고 있다.
 
공적자금 국정조사가 여야 합의로 시작됐지만 예비조사 단계에서부터 감사원 등 정부측의 자료거부나 열람 거부가 계속되고 있고, 한나라당측이 요구한 증인채택문제도 23일 공적자금 국조특위에서부터 민주당이 핵심 인사들에 대해 `철벽 방어벽'을 치고 나서 국조가 효율적으로 진행될 수 없다는게 한나라당측 판단이다.
 
공적자금 국조를 정기국회 원내투쟁의 `핵심 무기'로 상정하고 있던 한나라당으로서는 자료제출 거부와 핵심인사들의 증인채택이 이뤄지지 않는 상황에서 국조가 계속될 경우 156조원 규모의 공적자금의 집행·운용 실태에 대한 규명은 커녕 정부에 면죄부만 줄 수 있다는 판단이 깔려 있다고 할 수 있다.
 
이 후보 핵심측근은 “우리 당은 현 정부에서 발생한 일들은 현 정부 임기내에 털고 가야 한다는게 기본입장이며, 공적자금 국조도 같은 맥락”이라면서 “하지만 정부여당이 공적자금에 소극적 자세를 견지하며 면죄부성 조사를 하려한다면 기본전략을 재고하지 않을 수 없다”고 말했다.
 
특히 공적자금 국조의 하이라이트라 할 수 있는 기관보고(10월4~5일)와 청문회(10월7~9일)가 모두 부산 아시안게임 기간에 열려 국민적 관심을 얻기가 힘들다는 판단도 내포되어 있는게 아니냐는 분석도 나오고 있다.
 
이규택 총무가 22일 “공적자금 국정조사가 국정감사와 총리 인사청문회와 겹치는 등 문제가 많은 만큼 조사기간을 20일 연장해야 한다”고 주장한 것도 이같은 분석을 입증해주고 있다.
 
당 일각에서는 그러나 이 후보의 언급이 단순한 `엄포용', `압박용'이 아니라 차기 정부에서 국조를 하는게 더 낫다는 `강경론'도 고개를 들고 있어 주목된다.
 
한 당직자는 “현 추세대로 국조가 진행될 경우 정부여당에 면죄부를 줄 수 밖에 없고, 검찰수사도 미진하기 짝이 없다”면서 “차기정부에서 공자금 비리에 대해 재수사를 할 수 밖에 없는데 이번 정기국회에서 국조를 할 경우 민주당은 `정치보복성 수사'라고 반발할게 뻔한 만큼 그럴바에야 안하는 것도 한 방안일 수 있다”고 말했다.
 
다만 한 관계자는 “한나라당이 이번 국정조사를 차기 정권으로 넘겨 12월 대선까지 대여 공격소재를 살려두기 위한 수순밟기에 나선게 아니겠느냐”고 분석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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