문 : 갑은 고추상인 을에게 건고추 2천900근(1천740㎏)을 매각 위탁했고, 을은 위 고추시세가 상당히 상승해 매각처분할 수 있을 때까지 무상으로 보관해 주기로 약정했습니다. 을은 위 건고추를 보관하면서 갑에게 수시로 고추시세를 알려주고 수차 매각을 권유했으나, 갑은 시세가 맞을 때까지 편의를 봐 달라며 거절해 왔습니다. 그후 2012년 5월경 을은 갑에게 위 건고추를 속히 처분하지 않으면 7월경부터 벌레가 먹어 못 쓰게 되니 빨리 처분하든지 아니면 인도받아 가라고까지 했으나 갑은 ‘시세가 싸다’ 또는 ‘보관 장소가 없다’ 등 이런저런 이유를 대며 거절해 왔습니다. 그러던 중 9월경 위 고추가 변질되고 벌레가 먹어 상품가치가 없게 되자 갑은 을에게 위 고추 시가 상당의 손해배상을 청구했는 바, 을은 갑에게 손해를 배상할 의무가 있는지요?
답 : 채무자가 채무의 내용에 따른 이행을 완료하기 위해서는 채권자의 수령 기타 협력이 필요한 경우에 채무자는 채무의 내용에 따른 제공을 했음에도 채권자가 그것을 수령하지 않거나 기타 협력을 하지 않기 때문에 이행에 완료되지 못하는 상태에 놓이는 것을 채권자지체라고 합니다.

이러한 채권자지체가 있는 경우에 채무자는 채권자지체로 생긴 손해의 배상을 청구할 수 있고(민법 제390조, 제393조), 채권자의 수령이 가능한 때에는 상당한 기간을 정해 수령을 최고하고 그 기간 내에 수령하지 않으면 계약을 해제할 수 있고(민법 제544조), 채무자는 고의 또는 중과실이 없으면 불이행으로 인한 모든 책임이 없고(민법 제401조), 채권자지체 중에는 이자 있는 채권이라도 채무자는 이자를 지급할 의무가 없으며(민법 제402조), 채권자지체로 인해 그 목적물의 보관 또는 변제의 비용이 증가하게 된 때에는 그 증가액은 채권자가 부담하게 됩니다(민법 제403조).
위 사안과 관련해 판례 “상인이 그 영업범위 내에서 물건의 임치를 받은 경우에는 보수를 받지 아니한 때에도 선량한 관리자의 주의로 보관할 의무가 있으므로 이를 게을리해 임치물이 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에는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을 면할 수 없으나, 다만 수치인이 적법하게 임치계약을 해지하고 임치인에게 임치물의 회수를 최고했음에도 불구하고 임치인의 수령지체로 반환하지 못하고 있는 사이에 임치물이 멸실 또는 훼손된 경우에는 수치인에게 고의 또는 중대한 과실이 없는 한 채무불이행으로 인한 손해배상책임이 없다고 할 것이다.”라고 했습니다(83다카1476판결).
따라서 위 사안에서 갑의 고추가 을이 보관하고 있던 중에 변질되고 벌레가 먹어 상품가치가 상실되었다고 하더라도 이는 갑이 처분과 인수를 지체하는 중 발생한 것이므로 고추의 변질과 상품가치의 상실이 을의 고의 또는 중과실에 의해 발생한 것이 아닌 한, 을은 갑에게 손해배상책임을 부담한다고 보기는 어려울 것으로 보입니다.

<김균률 변호사 사무실:인천시 남구 학익동 272-5 현준솔로몬빌딩 401호 법무법인 둘로스. ☎032-861-0808, 팩스 032-872-0005>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KIHOILBO

저작권자 © 기호일보 - 아침을 여는 신문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