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한기진 사회2부
 사기 자객열전에 예양(豫讓)이란 이름이 나온다. 춘추시대 진나라 사람으로 범 씨와 중항 씨를 섬겼으나 예우를 받지 못했다. 예양은 그들을 떠나 지백의 신하가 됐다. 지백은 육경의 한 사람으로 세력이 강하고 교만했으나 예양을 극진히 대접했다. 지백은 범 씨와 중향 씨를 멸했다. 그러나 위한자와 연합한 조양자에 패해 멸망했다. 승리한 조양자는 지백의 두개골에 옻칠을 해 요강으로 사용했다.
예양은 복수를 다짐했다. 첫 번째 암살계획이 실패했다. 그러나 조양자는 의인(義人)이라며 예양을 풀어줬다. 두 번째 암살계획도 실패해 다시 붙잡혔다. 화가 난 조양자가 물었다. “지백이 범 씨와 중항 씨를 멸할 때는 가만있더니, 어째서 지백을 위해서만 끈덕지게 복수하려 드느냐?” 예양이 대답했다. “두 사람은 나를 보통 사람으로 대해 나도 그에 맞게 처신했소. 하지만 지백은 나를 국사(國士)로 대우했소. 그가 나를 대했듯 나도 국사로서 보답하려 함이오.” 예양은 간청해 조양자가 입던 갑옷을 받아 비수를 세 번 찔렀다. 그리고는 “지하에 있는 지백에게 보고하겠다”는 말을 남기고 태연히 자결했다.
황은성 안성시장의 업무 스타일에 대한 공직사회 불만이 날로 높아지고 있다. 자신들을 도무지 믿지 못한다고 불만이다. 직원들이 처리하는 일 대부분을 못미더워 하는 시장 밑에서 모두가 지친 기색이 역력하다. 사소한 일까지 직접 챙기려 드는 통에 존재감마저 잃어 간단다. 믿음의 부재다.
한편에선 황 시장이 “나 아니면 안 돼”라는 자화자찬이나 “내 판단이 무조건 옳다”라는 자기최면에 빠졌다고 여긴다. 다른 한편에서는 “지시하는 일만 하면 되니 오히려 전보다 더 편해졌다”며 안주한다. 의욕이 넘친다기보다는 표를 얻기 위한 ‘정치쇼’를 하고 있다고 생각하는 수가 많아진 지 오래다. 불신이 가득 쌓였다.
사람은 각자의 지위에 맞게 직무를 수행해야 한다. 왕은 왕의 할 일이 있고, 신하는 신하의 맡은 일이 있다. 이것이 바뀌면 안 된다. 할 일과 맡길 일이 따로 있다. 직원들을 믿지 못해 대소사를 도맡아 처리하려는 시장. 나는 잘하는데 다른 사람은 잘못하고 있다고 여기는 시장. 다 민망한 일이다.
사위지기자사(士爲知己者死) 여위열기자용(女爲悅己者容)이라 했다. 남자는 자신을 알아주는 사람을 위해 목숨을 바치고, 여자는 자신을 기쁘게 해 주는 사람을 위해 얼굴을 꾸민다고 했다. 맡겼으면 믿어라. 알아주고 기쁘게 해줘라. 먼 데 있는 물은 내 옆에서 일어난 불을 당장 꺼주지 못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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