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조대흥 객원논설위원/(사)웰브 대표

우리 사회가 위험하다. 초등학생 납치와 성폭행 살인 등 흉악범죄가 때와 장소를 가리지 않고 전염병처럼 번지고 있다. 문제의 심각성은 일어나고 있는 범죄가 무고한 시민들을 대상으로 하는 무차별적인 공격에 있다는 것이다. 이러한 형태의 범죄들은 우리가 생각하지도 경험하지도 못했던 이해하기 힘든 것 들이다.

 어쩌다 우리 사회가 이 지경이 되었나. 우리나라가 동방예의지국(東方禮義之國)의 나라인가. 경악스러울 뿐이다. 오십 평생을 살면서 지금처럼 위기를 느끼며 살아본 적이 없다.

자녀가 조금만 연락이 안 되거나 늦게 귀가해도 가슴이 철렁하다. 고등학교에 다니는 딸이 학교에서 늦게 끝나 아파트 엘리베이터를 탈 때면 절정에 이른다. “무서워, 아빠, 빨리 내려와.” 이같이 우리 이웃들은 한 번쯤 이런 경험을 겪었을 것이다.

이렇듯 우리 사회는 자녀들의 안전 문제로 심리적·정서적인 스트레스를 받으며 살고 있다.

정부는 범죄의 심각성을 깨닫고 보호수용제도 도입, 불심검문 부활, 전담 경찰력 증강 등 적극 대응에 나섰지만 근원적인 해결책에는 한계가 있어 보인다. 전문가들은 이러한 ‘묻지마 식’ 범죄 발생 원인을 극도의 가난, 부모의 무관심, 학교나 사회에서의 왕따 같은 복합적인 환경으로 인식하고 있기 때문이다.

 나는 이런 사람들을 ‘벼랑 끝에 선 사람들’이라고 부르고 싶다. 이들은 사회적 부적응자이다. 성에 대해 왜곡된 인식을 가지고 있고, 대학 또는 이와 유사한 기관에서 윤리학이나 인권에 대해 한 번도 들어본 적이 없는 사람들이다. 이러한 ‘잠재적 범죄자’는 현재 20만 명이 넘는다고 한다.

단기적이고 일시적인 방법으로 이러한 문제를 어떻게 해결한단 말인가. 근원적인 해결책이 될 수 없다. 먼저 우리 사회가 좋은 삶에 관한 올바른 정의를 내리고, 공공생활에 일어나는 문제들을 바라 볼 줄 아는 지혜가 필요하다.

얼마 전 모 방송국에서 방영한 동영상은 사람들에게 깊은 감동을 주었다. 두 팔과 다리 없이, 호주에서 태어난 닉부이치치의 이야기이다. 중증장애인인 그의 건강한 삶은, 좌절과 소망이 없는 사람들에게 희망과 행복을 주었다.

나는 그가 일어서는 것만으로도 누군가에게 희망을 주었다고 생각한다. 이러한 감동적인 일을 감히 돈으로 계산할 수 있을까. 이러한 의미있는 일은 지역사회에 사회통합과 희망을 가져다준다.

그 결과는 갈등과 어려움이라는 비공식적 비용을 포함한 사회 전체의 비용을 줄일 수 있는 기능을 한 것이다.

그러나 우리 사회는 아픔과 고통을 함께할 수 있는 ‘공동체 의식’을 상실했다. 벼랑 끝에 선 그들이 고통 속에 흘리고 있는 눈물을 외면해 왔다. 이제는 그들을 격리·편견·배제하는 지금의 사회를 고쳐야 한다. 그들과 함께 살아가는 정신적 환경이 되도록 조성해 주어야 한다.

그렇게 하기 위해서는 ‘인간의 존엄성’ 회복을 위한 복지교육을 실시해야 한다. 이러한 교육을 통해 그들을 기억하고 함께 하며, 고통이 선물이 될 수 있는 자리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사회적 약자’에 대한 애정과 배려는 복지교육의 실천만이 가능하다.

그동안 사회복지는 국가가 힘들고 어려울 때마다 소득 재분배의 기능과 ‘시장의 실패’를 보완하는 기능을 중심적으로 수행하면서 사회정의와 통합을 이끌어 왔다. IMF 위기 때 사회복지의 역할을 우리는 잘 알고 있다.

 따라서 국민이 사회적 문제나 요구를 자신들의 과제로서 인식하고 복지문제의 해결이 전체사회나 지역사회를 올바로 만드는 데 중요한 척도가 된다고 인식시켜야 한다. ‘은둔형 외톨이’ 같은 사회적 낙오자들의 문제 해결을 위한 복지계획수립과 구체적 해결을 위한 실천활동을 전개할 수 있도록 주민을 육성해야 한다. 그리고 사회적 약자들을 배려하는 제도를 만들어야 한다. 이것이 바로 복지교육의 목적이다.
앞으로 우리나라의 국제화시대를 고려해 볼 때 인종·문화·종교가 다른 사람들과 함께 더불어 살아가는 것이 어떠한 것인가를 실천적으로 배우도록 교육하는 것이 중요하다. 우리나라도 영국이나 스웨덴 같은 선진국에서 경험했던 ‘선진국 병’이 나타나고 있는 것 같다.

 즉, 다문화 되어 가고 있는 우리 사회에서의 인종문제나 젊은이들의 실업문제 등으로 젊은이들의 난폭성이 점점 증가하고 있는 것이 사실이다. 그러나 단일언어, 단일국가인 우리나라는 함께 살아가는 경험이 다른 나라와 비교할 때 많이 부족하다.

 이제 우리 사회도 이러한 문제가 일상생활 속에서 생겨나고 있기 때문에 더욱더 복지교육이 필요하다. 지금 우리에게는 사회적 약자들을 위한 배려와 ‘공동체 의식’의 회복이라는 가치가 필요하다. ‘함께 살아가는’ 복지교육을 지역사회에서 시작하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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