주말에 강화 고인돌 유적지 탐방을 다녀왔다. 기울어진 받침돌에 안정을 주려면 덮개돌을 어떻게 놓아야 할까요? 유물해설을 하시는 분은 사진작가라는데 다방면에 박식해 풍부한 지식을 재미있게 풀어 설명해주었다.

고인돌 유적지에서 그분의 설명을 들으며 많은 생각이 스쳐 지나갔다. 전 세계에 있는 고인돌 유물 중에서 70%가 우리나라에 있어 ‘고인돌의 나라’라고 불릴 만 하다는 설명보다 더 강렬한 울림은 기울어진 고인돌의 미학에 관한 이야기였다.

 그 속에 담겨있는 개인·사회·국가·세계관의 인식이 얼마나 앞서있는지 청동기 시대 사람들의 삶의 철학에 고개가 숙여졌다.

직사각형의 받침돌이 기울어진 모멘트만큼 덮개돌을 반대편으로 당겨 얹으면 기울어지려는 각자의 힘, 플러스 힘과 마이너스 힘이 동량이면 상쇄되어 제로가 된다. 모멘트 제로를 만드는 원리다.

 고도의 수학적 계산이 있어야 오차 없이 완벽한 힘의 균형을 만들어내는데 고대인들은 컴퓨터도 없이 어떻게 계산을 해 냈을까 경이로웠다.

표범가죽 무늬의 옷을 걸치고 괴성을 지르며 원시체험을 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원시와 문명의 가르는 기준이 무엇일까 자문을 해본다.

고인돌을 만들었던 고대인들이 거칠고 몽매한 사람들일 것이란 선입견에 제대로 제동을 걸어준 고인돌의 정신을 저 아이들이 얼마나 이해하고 마음에 새겨둘까. 이런저런 이야기를 동행한 분과 나누면서 자연스럽게 우리 삶을 돌아보게 했다.

부조화가 이루어내는 조화의 미학을 알아가려면 마음의 수양이 선행되어야 하겠다. 이론은 간단명료한데 늘 그렇듯이 실행은 쉽지 않다.

 반듯한 각으로 정형을 이룬 구조물은 예술적 감흥이 덜하다. 반듯하게 세우는 게 훨씬 쉬웠을 고인돌을 굳이 기울어지게 만든 고대인들의 삶의 철학을 배워가고 싶다.

현재 우리 사회에 절실하게 필요한 덕목이라 더욱 간절하다. 욕심을 더 낸다면 분열과 비방으로 시끄러운 국회에 보내주고 싶은 고인돌 정신이다.

정형화되지 않은 분방함이 있어 감칠맛을 더해주는 판소리나 민요를 보더라도 떠는청 본청 꺾는청이 어우러져 맛깔스러움이 살아있고, 삼박자의 움직임으로 불안정해 보이는 태껸의 동작이 연결되어 마음과 몸을 단련하는 데 그만인 고차원의 무술을 만들었다는 설명에 동의를 한다.

비정형은 한쪽이 무너지면 전체가 와그르 무너지지만 균형을 이룰 경우엔 훨씬 안정적이고 조화롭다.

상대를 긍정할 때 내 위치도 견고해진다는 고인돌 철학은 가장 선진화된 앞서가는 가치를 가진 정신이다. 기울어진 내 눈에 삐딱한 상대를 똑바로 세우려면 당연히 반발이 생긴다.

 강하게 누르면 잠시 눌려 있겠지만 반격할 기회를 호시탐탐 노릴 테고 틈이 감지되면 강하게 튀어오를 것이 뻔하다. 타격의 파괴력은 누르는 힘에 비례해 터져 나올 것이기에 모멘트 제로를 만드는 지혜가 필요하다.

수도승들이 아침에 일어나 가장 먼저 외우는 교본에 ‘형제를 바꾸려고 조급해 하지 마라. 기다려라. 기다리는 동안 네가 바뀔 것이고 네가 바뀐 모습을 보고 형제도 바뀔 것이다.’라는 내용이 있다고 한다.

모멘트 제로를 만드는 가장 좋은 방법은 상대의 입장을 이해하는 것이겠다. 영어 단어 ‘understand’는 ‘이해한다’이다. 상대방보다 아래에 서야 진정한 이해의 눈을 가지고 상대를 보게 된다는 말이다.

겸손과 배려와 공감이 함께하는 이해하려는 자세는 군림이 아니다. 내가 살짝 기울어져 너와 균형을 맞춤으로 조화를 만들어가는 것이다.

격한 비방과 편가르기가 만연한 우리 사회에 내 입맛에 맞지 않다 해 상대를 삐딱하게 몰아 잘못의 원흉으로 몰아붙이는 일이 빈번하다.

 서로 보완하고 이해하는 기운이 널리 퍼져 ‘부조화와 부조화가 만나 기막힌 조화를 만들어내는 고인돌의 나라답다.’라는 말이 현실이 되는 날을 그려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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