비주얼 시대다. 성형이 유행을 넘어 대세인 세상이라 외모 가꾸기는 국민의 5대 의무라는 우스갯말도 생겼다. ‘보기 좋은 떡이 먹기도 좋다’는 속담처럼 겉모양이 좋은 것이 그 내용도 좋을 것이라고 단정하게 된다. 처음으로 대면하는 상대방을 판단하는 데 단 3초면 충분하다고 한다. 3초 만에 각인된 첫인상은 50번 이상을 만나야 바뀔 수 있다 하니 인상이 결정되는 3초의 순간이 대단한 힘을 갖는다.
좋은 인상은 사람과의 관계 맺음에 여러모로 유리한 것이 사실이다. 배심원들이 죄의 경중을 판단하는 데 외모가 영향을 미칠까 실험한 것을 보면 확실하다. 같은 사람을 놓고 같은 죄목으로 재판을 하는데, 곱게 잘 꾸며 놓은 여성에게는 배심원들은 동정을 하면서 가해자 입장을 이해하려 애썼고 실제로 형량도 낮게 책정했다. 이번엔 반대로 그 여성을 범죄형으로 분장해 재판을 진행시켰다. 짐작한 대로, 죄질이 나쁘다 작정하고 저지른 범행이다며 단호한 결정을 내렸다. 좋은 인상을 가진 사람들은 큰 축복을 받은 사람이다. 결정이나 판단에 주관이 개입할 여지가 충분해 사는 동안 여러모로 덕을 볼 것이기 때문이다.
‘40세가 되면 자기 얼굴에 책임을 져야 한다.’ 링컨 대통령의 유명한 일화다. 훌륭한 인재라며 요직에 추천한 사람을 면담하고 난 후 링컨이 그 사람을 쓰지 않았다. 이유를 묻는 친구에게 재주는 많으나 얼굴에 덕이 없어 요직을 맡길 위인이 못 된다며 한 말이다. 단순히 외모뿐만 아니라 그 사람의 얼굴에서 인격까지 꿰뚫어 본 것이다.
종종 첫인상과 달라 실망한 경험이 누구나 있을 것이다. 반대로 비호감이었던 사람이 호감으로 바뀌는 경험도 했을 것이다. 오래 만나다 보면 그 사람의 진실이 보인다. 링컨이 말한 40세면 자기 인생관이 굳어져 견고해질 나이다. 몸의 건강도 정신의 건강도 보이는 나이고 볼 줄 아는 나이다. ‘사십 불혹’, 공자님이 인생을 돌아보면서 제자들에게 한 말이다. 사십이 되면 엉뚱한 것에 부질없이 흔들려 마음이 갈팡질팡하지 않는 나이라고 하셨다.

내 인상은 내가 결정하는 것이라 누굴 탓할 문제는 아니다. 젊은 시절이야 선남선녀로 낳아준 부모님 덕이겠지만 중년 이후는 오로지 본인 몫이다. 내가 살아온 흔적을 보여주는 것이라 생각하면 나를 돌아보게 된다.

그녀를 만난 것은 작은 후원회 모임에서다. 선입견이 작용해 비호감이었다. 눈 밑에 심술살이 잡혀 욕심 많아 보이고 목소리가 가늘고 높아 쇳소리가 났다. 다른 사람이 의견을 말하는 내내 졸기만 하더니 자기 차례가 되자 갑자기 주장을 쏟아내며 동조해 줄 것을 강요했다. 독단적인 발언에 참석자들이 술렁거리며 불편해 했다.

그녀의 긴 이야기를 들었다. 함께 생활하는 이들에게 눈물 나게 이타적인 그녀는 자기를 가꿀 시간도 여력도 없고 생각해 볼 여유도 없었다. 내 품에 들어온 상처 입은 이들만 눈에 보였지 다른 사람의 입장 따윈 안중에도 없었다. 그래도 그녀가 훌륭해 보였다. 핏줄이 아닌 타인에게 내가 가진 모든 것을 바쳐 헌신해 본 적이 있었나, 솔직히 쉽지 않은 삶이다. 그녀의 욕심은 자신을 위한 것이 아니기에 눈 밑 심술살도 억척 엄마의 모정으로 보였고 가늘고 높은 목소리는 가슴의 상처를 핥아주는 애절함으로 들렸다.

많은 사람을 만났고 만나며 살아 갈 것이다. 오늘처럼 첫인상만 보고 오판하는 실수도 범할 것이다. 내면을 꿰뚫어 볼 줄 아는 눈을 가지려면 참한 내공이 필요하겠다. 불혹을 지난 지는 한참인데 현혹되지 않을 눈을 가지기에 여전히 부족하고, 지천명에 접어들었으나 하늘의 뜻을 헤아려보기에는 미흡하다. 이순이 되면 귀가 순해져 남의 의견을 평정심으로 다 들어줄 수 있을까 걱정스럽다.
이런저런 일들을 겪고 일흔쯤 되었을 때 비로소 하고 싶은 일을 해도 법도를 넘지 않을 나를 그려본다. 남이 보는 이미지와 내가 추구하는 이미지에 차이가 없어야 자연스럽다는 말을 가슴에 새겨 고운 조약돌처럼 둥글어져 가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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