하늘과 바다의 경계가 좁아진다는 가을이 찾아왔습니다. 황금 들녘과 총천연색으로 물든 가을 산의 정경을 보고 있노라면 절로 어깨가 들썩입니다. 이런 날 주말이면 어른·아이 할 것 없이 손에 손을 잡고 집 밖을 벗어나고 싶은 바람이 간절해집니다. 그 기대에 부응코자 지난해 가을 경기·인천지역 기호일보 독자들의 주말 지침서를 기치로 선보인 ‘주말,’의 새 기획으로 ‘명사의 주말’을 연재하려 합니다. 명사의 주말은 정치·경제·문화·사회·체육 등 전 분야에서 우리 시대 명사를 선정, 그들의 일상을 소개합니다. 명사의 현재와 유년시절, 청년기의 소소한 일화부터 인생의 황금기에 이르기까지 그들의 삶의 희로애락을 함께 따라가보는 기회가 됐으면 합니다. <편집자 주>

“제게 주말에 무엇을 하느냐고 물으신다면 ‘합창단 지휘를 하고 있습니다’라고 답하겠습니다.”
어린시절부터 지독하게 한 가지만을 고집해 온 사람이 있다. 평생의 꿈이 단 한가지였고, 꿈을 이룬 현재도 그 한 가지에 열중하고 있다.

▲ 윤학원 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이 제62주년 인천상륙작전 전승 기념식에서 합창단을 지휘하고 있다.최종철 기자

심지어 일이 없는 주말에 “어떻게 휴식을 취하느냐”는 질문에 단 1초의 망설임도 없이 “내가 하고 있는 그 일을 한다”고 서슴없이 답하는 그다.

일반인들은 TV 예능 프로그램 ‘남자의 자격’으로 일약 ‘화제의 인물이 된 그’라고 칭할 법하지만 그를 좀 더 깊이 알고 있는 이라면 한 분야에 평생을 바친 장인이자 국보급 인간문화재라 평한다.

“합창을 할 때가 인생에서 가장 행복하다”는 윤학원(74)인천시립합창단 예술감독 겸 지휘자를 만났다.

50년 반세기를 지휘자란 이름으로 살아온 그의 주말 일상을 따라가봤다.

▲ 한여름 가족과의 캠핑.

# 주말의 시작도 ‘합창’, 주말의 끝도 ‘합창’
다짜고자 주말 일상을 묻는 질문에 윤 감독은 멋쩍게 웃어 보였다. 그리고 이내 “주말이 없다”는 짧고 간결한 한마디로 답했다. 일주일 중 단 하루, 금요일을 휴일로 정했지만 그마저도 여의치 않은 탓이다.

“주말이 금요일 저녁부터라고 하면 사실 그날 하루 쉬는데, 한세대 대학원 강의 나가는 것을 중단하고 쉬려 했지만 실상 쉴 수 없는 처지입니다. 금요일 늦게 집에 들어가 잠을 청하고, 토요일 오전에는 아카데미 작곡 수업으로 하루를 시작하죠. 수업이 끝나면 오전 11시부터는 선명회어린이합창단 지휘를 하고, 성가대합창제 연습으로 오후를 보낸답니다. 그렇게 정신없이 보내다 보면 어느덧 저녁 10시가 되고 그렇게 다시 잠자리에 들기 일쑤죠.”
일흔이 넘은 그가 소화해내는 하루 일상은 마치 혈기 왕성한 청년의 일상보다 빠듯하다.

일요일은 어떨까. 크리스찬인 윤 감독은 일요일 역시 교회에서 시작해 교회로 끝난다.

“하나님의 지휘에 맞춰 노래하는 연주자로 일요일 예배는 숙명과도 같습니다. 주일 예배는 서울 건국대 근처 자양교회에서 보내는데, 집이 있는 서울시 강서구 발산동에서 왔다갔다 하는 데만 2시간 걸립니다. 주일 역시 하루 종일 교회에서 보낸다 해도 과언이 아니죠.”
교회에서 그나마 일찍 귀가할 때는 집 근처 공원을 걷거나 단골 식당에 가서 저녁 한 끼를 먹는 게 그의 주말 휴식이라면 휴식이다.

▲ 세계합창대회 심사위원들과 함께.
그가 자주 가는 산은 서울시 강서구 화곡동에 위치한 우장산이다. 우장산은 기우제를 마치는 날에는 반드시 비가 와서 모두 우장(우비)을 준비했다는 데서 유래한 산으로 산새가 가파르지 않고 둘레길이 많아 산책로로 인기가 많다. 일부러 등산을 하려고 마음을 먹지 않은 평일에 그는 4층짜리 빌딩건물인 그의 집에서 휴식 겸 업무를 본다. 그의 집에는 한국합창지휘자아카데미도 있고, 번듯한 출판사도 차려져 있다. 출판사는 외국 합창악보가 돈이 안 돼 합창악보를 내기 버거워하는 출판사를 설득하다 못해 직접 차렸다고 한다.

# 성가대와 합창단에 신혼생활과 주말을 맡기다
학교 졸업과 함께 결혼을 한 그는 동인천고등학교 교사로 재직하며 신혼생활을 보낸다. 당시 인천 율목교회 지휘자와 동인천중·고교 합창단을 동시에 맡았던 그는 합창에 몰두하느라 몸이 열 개라도 모자랄 정도였다. 그러다 국제복음방송(현 극동방송) PD까지 맡게 되면서 그야말로 눈코 뜰 새 없이 바쁜 하루하루를 보냈다.

반면 아내에게는 참 무심한 남편이었다. 일에 치여 사는 그를 보며 묵묵히 뒷바라지를 해 준 아내만 생각하면 지금도 미안한 마음뿐이라는 그.
그런 그들 부부에게도 나름의 달콤한 신혼생활이 있었다. 당시 국제복음방송이 자리했던 인천자유공원을 최고의 데이트 장소로 활용했던 것.
“회사를 갈 때마다 아침저녁으로 거닌 자유공원이 우리 부부의 소중한 추억입니다. 사계절 때마다 피어나는 아카시아꽃 향기를 맡거나, 해질녘 인천 앞바다를 수놓은 저녁 노을을 보고 있노라면 시구가 절로 나오고, 방송 멘트가 줄줄 써졌으니까요.”

▲ 연세대학교 4중창.

워크홀릭이라고 할 정도로 일에 빠져 살다 보니 그들 부부에게 여행이란 단어는 너무도 낯설다. 부부가 따로 여행을 간다든지 특별한 주말을 보낸다든지 하는 여유조차 없는 탓이다.

하지만 그들 부부에게도 로맨틱한(?) 여행은 간간이 찾아온다.

“아이들과 함께 온 가족이 1년에 한 번 정도 캠프를 떠납니다. 해수욕장도 가고, 계곡도 가고요. 그리고 선명회어린이합창단이 외국 공연을 갈 때 가족이 동반하는 것을 위안으로 삼죠. 물론 공연을 가는 것이다 보니 아내가 하는 게 저 뒷바라지하는 것밖에 없어 안쓰럽지만요.”
그러면서 그는 외국 공연 때문에 생긴 가슴 아픈 사연도 소개했다.

“매번 가족들과 동반으로 공연을 갈 수 없으니 한 번은 넉 달 정도 장기공연을 간 적이 있는데, 귀국하는 날 공항에서 애들을 보고 안아주니 ‘엉엉’ 우는 거예요. 너무 오랫동안 보지를 못해 아빠를 몰라본 거죠. 그때는 정말 가슴이 미어지더라고요.”
그래서 그때부터 윤 감독은 아무리 바빠도 1년에 한 번만큼은 여름 가족과 함께 캠핑을 떠나는 일정을 챙겼다고 한다. 그의 가족이 주로 찾는 단골 여행지는 충남 대천해수욕장.

# 보통 사람이 즐기는 일상, 특별함보다 삶의 열정에 무게를 두다
인기 예능 프로그램에 출연해 유명세도 타고, 합창계에선 대부로 칭송받는 그이지만 일상을 지그시 바라보면 일반인과 별반 다를 게 없는 평범한 하루하루다. 다만 합창에 매료돼 매일 지칠 줄 모르고 일만 하는 게 다를 뿐.
가리는 것 없이 모든 음식을 잘 먹는 그는 외국 공연을 가서도 단원들이 음식 때문에 고생할 때 유유히 현지 음식을 즐긴다. 그런 그가 가장 즐겨 먹는 간식은 ‘떡’이다.

중학교 시절 인천 내리교회 앞에서 사 먹던 팥죽과 찹쌀떡이 그렇게 생각나곤 한다는 그.
특별한 맛집을 추천하지는 않지만 그는 집 근처 발산동 사거리에 자주 들리는 식당도 있다. 체인점 형태

▲ 인천기계공고 밴드부 시절.
로 운영하는 화덕 피자와 스파게티 전문점이 그 중 한 곳이고, 근처에 있는 화로구이 고깃집이 나머지 한 곳이다. 고기는 쇠고기 안심을 즐기는데, 한때 심장이 좋지 않아 치료를 받은 뒤부터 지방이 많은 육류는 먹지 못하는 탓이다.

이 단골집은 일주일에 한 번 또는 2주에 한 번 정도는 꼭 찾는다고 한다.
인천에선 남구 관교동 종합문화예술회관 근처 먹자골목에 있는 ‘해와 달’ 한식집을 자주 찾는다. 일반 가정집을 개조해 운치도 있고 음식에 정성이 들어 있어 점심마다 자주 들리곤 한다.

# 주말 최고의 휴식, 인터넷 세상과 소통하기
새벽 1시에 잠들어 아침 6시면 어김없이 일어난다는 윤 감독의 주말 휴식은 바로 소셜네트워크서비스(SNS)에 접속하는 것.
하루 일과의 정리도 페이스북 친구 관리이자, 주말에 짬이 날 때 반드시 전세계에 퍼져 있는 그의 인연들과 소통하는 것이 최고의 휴식이다. 그의 페이스북 친구는 3천300명 정도.
하지만 가끔 TV 드라마를 함께 보자는 아내의 핀잔에 서둘러 인터넷 창을 닫은 적도 많다. 그래서 그가 챙겨 본 드라마가 시크릿 가든과 신사의 품격이다.

‘만약 일주일의 특별 휴가가 주어진다면’이라는 물음에 “일단 페이스북을 원 없이 하고, 그 다음에는 합창 연습을 하겠다”고 답하는 그.
혹자는 그를 ‘워크홀릭’이라고 평가할 법하지만 평생 한 가지 일만 바라봤고, 한 가지 일에 몰두해 결국 최고의 자리에 오른 현재는 그 누구보다 ‘달콤한 인생’을 사는 듯하다.

<사진 일부=윤학원 감독 제공>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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