브래드 앤더슨 감독은 유령 같은 도시를 보자마자 모든 고민이 눈 녹듯이 사라졌다. 돈 한 푼 들이지 않고서도 얼마든지 원하는 그림을 찍어낼 수 있는 거대한 세트장이 눈앞에 펼쳐져 있었다. 헐리우드 재난 영화 ‘배니싱’ 이야기다. 인적을 찾아볼 수 없는 황량한 거리, 버려진 자동차들, 허물어져가는 공장, 폐허와 다를 바 없는 주택, 그 구조물 속에 함부로 내던져진 쓰레기와 그 때문에 도시 전체를 죽음의 세계로 몰아가는 악취들. 브래든 앤더슨 감독은 카메라를 들이대면 어느 방향에서나 묵시록적인 종말의 분위기를 찍을 수 있었다.
   
 

디트로이트가 바로 그 도시다. 이 연재를 꼼꼼히 읽어 오신 독자라면, 그러니까 현대 대도시의 운명과 그 산업화의 역사와 공장의 삶에 대해 깊은 관심을 가진 독자라면 미국의 5대 대도시 중 하나로 꼽히는 디트로이트를 모를 리 없을 것이다. 폐허가 된 도시를 배경으로 영화를 찍고자 했던 ‘배니싱’의 제작진이 처음으로 달려간 도시가 바로 디트로이트였고 그들은 흡사 재난 영화 세트장처럼 흉물스럽게 변해버린 디트로이트의 ‘생얼’ 앞에서 입을 다물기도 어려웠다.
물론 사람은 살고 있었다. 디트로이트 시 당국은 영화 제작에 전폭적인 협조를 했다. 주요 간선도로는 쉽게 통제됐고 대규모 건물들도 자주 정전을 했다. 일상을 살기 위해 황량한 도시로 나왔던 시민들은 시 당국의 협조 지시에 묵묵히 따랐다. 살아 있는 그 어떤 생명체의 존재의 흔적도 없는 황량한 도시를 만들기 위한 브래드 앤더슨의 제작 의도에 한 때 세계 최고의 자동차 도시였던 디트로이트는 생생한 폐허의 영화 세트장으로 전락해 그 허망한 신세를 잠시 빌려주었던 것이다.
커티스 핸슨 감독의 ‘8마일’이라는 작품도 디트로이트를 배경으로 한 영화다. 한 때 세계를 굴러가게 했던 자동차 도시 디트로이트의 변두리에서 살아가는 가난한 백인 청년의 처참한 삶을 다룬 작품이다. 실제로 가난한 마을에서 성장한 세계적인 랩 가수 에미넴이 주인공을 맡았고 디트로이트 빈민 지역가에서 트레일러에서 살아가는 어머니 역으로 킴 베이싱어가 출연했다.
아, 물론 이 디트로이트가 완전히 폐허가 되어 사람이 전혀 살 수 없는 죽음의 도시가 되었다는 것은 아니다. 여전히 디트로이트에는 사람이 살고 있고 이 도시를 연고로 하는 프로야구팀 디트로이트 타이거즈가 아메리칸리그 챔피언십에 진출했으며 97년의 역사를 가진 미국프로풋볼(NFL) 역사상 최초의 여성 심판 섀넌 이스틴이 지난 9월 디트로이트 포트필드에서 벌어진 디트로이트 라이온스와 세인트루이스 램즈와의 경기에 선심으로 뛰기도 했다. 사람들은 출근을 하고 일을 하고 퇴근을 한다. 재선을 위해 뛰고 있는 버락 오바마 대통령이 이명박 대통령과 함께 일자리 창출과 고용 안정이라는 경제 정책 선전을 위해 전략적으로 찾았던 도시가 디트로이트이기도 하다.
그러나 옛 영화는 좀처럼 다시 오지 않는다. 2012년 5월 30일 ‘뉴스위크’ 기사에 따르면 사진작가 아리애나 아카라와 루카 산티스는 이 폐허의 도시에 들어가 악착같이 삶의 흔적을 찾아내려고 했다. 두 사진작가는 “처음 디트로이트에 발을 들여놓았을 때 우리는 사진작가로서 그 도시 형태의 당혹스런 소멸을 기록할 계획이었다. 현대의 폐허 이야기를 마음 속에 그리고 있었다고 했다. 그러나 20세기 미국의 산업화를 대표하는 디트로이트가 과거의 영화를 상실하고 쓸쓸한 도시로 전락했지만 그래도 ‘고뇌에 찬 목소리’가 귀를 울리고 있었다고 두 사람은 기록한다. 그래서 그들은 폐허가 된 주택가에서 편지, 가족 앨범, 폴라로이드 사진, 각종 자료 사진, 얼굴 사진 등을 마치 폭발물 처리반처럼 꼼꼼히 모았고 그것으로 하나의 다큐멘터리를 만들어낼 수 있었다.
디트로이트는 자동차 산업의 몰락으로 그 도심 건물의 30%가 텅 빌 정도로 폐허로 내몰린 적 있다. 미국 자동차 산업의 수도로 지엠, 포드, 클라이슬러 등 이른바 ‘빅 3’가 세계 시장을 장악했던 시절의 바로 그 본사와 공장이 있는 디트로이트. 그러나 2008년 기준으로 디트로이트의 시민 1만 명 당 강력 사건은 122건으로 미국내 범죄율 1위를 기록했으며 ‘포브스’는 바그다드에 이어 세계에서 두 번째로 위험한 도시로 꼽았다. 세계적인 여행가이드북 론리 프래닛은 2009년에 세계에서 가장 혐오스런 1위 도시로 디트로이트를 꼽기도 했다.
예고된 재앙이었다. 완성차 및 그 부품 협력이라는 20세기 고유의 대단위 공장 중심으로 발전한 디트로이트는 바로 그 패러다임에 위기가 오자 순식간에 곤두박질을 쳤다. 1970년대의 석유 파동과 일본 자동차 산업의 성장, 1990년대의 자동차산업 구조 다각화, 새로운 세기 들어 미국 경제의 연이은 불황과 금융 위기, 그에 따른 자동차 수요의 급감 등 수십 년 동안 진행된 몰락의 드라마는 결국 지엠과 크라이슬러의 파산 신청으로 극에 달했다. 현대기아자동차가 디트로이트가 아니라 남부지역 앨러배마 같은 곳으로 거점을 확보한 것도 디트로이트의 몰락에 큰 영향을 끼쳤다.
물론 지금 디트로이트는 새로운 활력을 찾기 위해 몸부림치고 있다. 하지만 그 미래의 방향을 좀처럼 잡지 못하고 있다. 심지어는 지난 7월, 40대의 사업가 마크 사이와크가 디트로이트의 동부 폐허 지역에 ‘좀비 테마파크’를 설립하자고 제안한 적도 있다. 사이와크는 폐허로 방치돼온 건물들을 사들여 으스스한 좀비 체험 테마파크로 개발해 디트로이트를 관광도시로 재생시키자고 했다. 폐허가 된 건물들을 멍하니 바라보고 낙심하거나 그 흉물이 없는 듯 고개를 외면하고 피해다닐 게 아니라는 게 사이와크의 주장. 그러나 시 당국과 시민들은 더 이상 디트로이트가 거대한 세트장으로 전락하는 것을 원치 않고 있다. 시당국은 사이와크의 제안에 대해 디트로이트가 유령 좀비의 도시라는 이미지로 전락할 수 있다며 동의하지 않는다고 밝혔다.

인천의 산업과 그 공장의 역사를 재조명하는 이 연재는 잠시 숨을 고르며 디트로이트의 현황을 살펴보았다. 자동차라는 20세기의 상징 산업의 성지였지만 바로 그 산업이 21세기에 접어들수록 어떻게 변해갈 것이며 이 거대한 산업을 둘러싼 경제, 금융, 소비의 현황이 어떻게 급변하는지에 대해 현실성 있는 대처가 부족했던 디트로이트를 통해 우리 인천의 현황을 우회해 살펴보기 위함이다.
인천의 도시 역사를 잘 알고 있는 사람이라면, 앞서 ‘폐허가 된 도심’이라든가 ‘악취가 풍기는 주택가’ 혹은 ‘인적조차 찾을 수 없는 거리’라는 표현을 보고 단번에 디트로이트가 아니라 인천의 어느 지역을 떠올렸을 것이다. ‘루원시티’라는 이름의 거대한 개발 늪에 빠져버린 인천시 서구 가정동 일대 개발지역 말이다.
“인천의 ‘인’자만 들어도 가슴이 갑갑합니다” 이것은 이 지역 주민의 한탄이 아니다. 한국토지주택공사(LH) 이지송 사장이 지난 10월 8일, 국회 국토해양위원회 국정감사장에서 토로한 심정이다. 문병호(인천 부평갑)의원이 “영종·청라·루원시티 등 인천 지역에 각종 LH사업에 문제가 잔뜩 산적해 있다”는 질의에 이지송 사장은 “워낙 인천 지역은 사업을 많이 벌여놔서 어떻게 수습해야 할지 갑갑하다”면서 “도무지 답이 나오지 않는데, 어떻게 해야 하겠습니까”라며 하소연했다. “루원시티 99만㎡에 1조7천억 원의 보상을 했지만, 뭘 할 수도 없고 답답한 상황”이라는 것이다.
지난 2004년, 인천시는 한국판 ‘라데팡스’(프랑스의 대표적 복합도시)를 만들겠다며 인천 서구 가정동 일대에 대대적인 개발 사업에 착수했다. 그러나 사업성은 불투명하였고 급기야 2008년 세계 금융 위기와 2010년 이후 국내 부동산 시장의 급냉으로 사실상 사업이 전면 중단된 상태와 다를 바 없게 되었다. 
서울의 용산국제업무개발 사업과 더불어 인천의 이 루원시티는 20세기형 대규모 도시개발이 얼마나 위험한가를 극단적으로 웅변하고 있다. 기존의 산업화와 삶의 모델이 어떻게 변해가는지, 그러한 변화 속에

   
 
서 실제로 거주하는 사람들의 내면 세계 또한 어떻게 변해가는지에 대한 고려 없이 ‘세계 최대, 최초, 최고’ 같은 토목 신화에 의존하는 것이 얼마나 비현실적인 도박인가를 서구 가정동의 루원시티 개발지역은 생생하게 보여주고 있다.
지난 여름, 필자가 그곳을 찾아갔을 때, 언젠가 루원시티가 될 지도 모를 그 지역은 쓰레기와 악취로 인한 질병을 막기 위해 소독차가 끝없이 돌고 있었다. 어린 시절을 떠올리게 하는, 실로 오랜만에 보는 소독차의 하얀 연기였지만, 21세기의 한복판에서 그 하얀 연기에 휩싸인 가정동 일대는 참담한 현장이었다. 앞서 디트로이트가 그러했듯이 이 루원시티 사업지구에서도 수많은 영화와 드라마가 촬영되었다. 1천 만 관객 흥행몰이에 성공한 ‘도둑들’이나 ‘통증’ 같은 영화들 그리고 ‘강력반’이나 ‘시크릿 가든’ 같은 드라마의 무대가 루원시티였다. 그 영화와 드라마들은 이 일대를 을씨년스러운 폐허로 묘사했다. 정말 그것은 달리 세트 장치가 필요 없는 현실 그 자체였다. (계속)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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