무대 바닥에 은행잎이 가득하다. 농익은 가을밤, 재즈 공연장의 무대가 퍽이나 아름답다. 연주가 시작되고 객석에 순간 몰입이 온다. 스포트라이트조차 강렬함을 버린 온기로 연주자를 비춘다.
귀에 익은 선율은 서양악기의 기본에다 해금과 가야금 피리가 더해져 녹아내리다가 휘감듯 조였다가 마음을 흔든다. 스탠다드 재즈곡에서 민요 트로트 팝을 아우르며 편곡의 우월의 보여준다. 가슴을 찌르는 재즈 연주에 빠져 헤매고 가로지르며 떠다니다 보니 두 시간이 훌쩍 흘러갔다.
이십대 청춘에 들었던 곡들이 지금의 나이테에 스며, 깊어진 호흡으로 단전을 두드린다. 긴 세월이다. 시고 떫고 새콤했던 청춘은 농익어 지금의 계절 11월이 되었다.

재즈와 와인은 숙성이 필요해 둔했던 엽엽했던 세월을 녹여야 맛이 든다. 아삭한 젊음이 빛나 보여 눈이 가지만 온통 황금빛으로 익어 넙데데한 늙은 호박도 풍상을 이겨낸 매달감이라 고상하다. 재즈 공연에 마음이 풀어져 멋대로 너무 멀리 나왔나? 어수룩한 가슴으로 세상을 살아온 우매가 도리어 득이 되기도 한다니 세상 이치는 반전이 있어서 재미지다.

공연장을 나서는데 하늘이 어둡다. 그래 밤이지. 큰길에서 벗어난 공연장은 이면도로 쪽이 출구라 한적하다. 늦가을에 주말 밤 늦은 시간, 이 시간도 의미심장하다고 주먹을 쥐어본다. 나뭇가지를 흔드는 바람이 예사롭지 않고 비를 품은 구름이 몸을 풀 때를 기다린다. 따분하다고 칭얼대던 날들이 낙엽처럼 가슴에 쌓여 뭔가 새로운 것이 짠 하고 나타나 무료를 단숨에 깨 부셔주기를 바라며 습관적으로 하늘을 올려다봤다. 그냥 어두운 하늘일 뿐이다.

주변이 눈에 들어온다. 들어설 자리가 없던 마음에 여유가 생기고 물상의 얼굴과 표정이 읽혀진다. 빨리 목적지에 도착하고 싶어, 빨리 일을 마무리하고 싶어, 그러자면 머리는 늘 가로질러 가고 느림과 샴쌍둥이인 나는 마음 상하는 일들이 많았다.
어두운 밤거리를 따라 걸으며 주변을 구경했다. 인도를 뒤덮은 은행잎이 뭉클 시 한 수를 부르고 손재작하는 목재 가구점에서 마음에 드는 책꽂이도 발견했다. 작가의 손끝에서 피어난 널빤지는 생명을 얻어 독특한 개성으로 내 마음을 흔든다.
가는 길 옆에 작은 바의 붉은 등이 와인 빛으로 고혹적이다. 집까지 한참 걸리는 시간을 접어놓고 붉은 불빛에 몸을 내렸다. 여기도 진즉에 알고 있었다는 듯이 재즈 음악이 흐른다. 만추의 밤은 재즈 선율을 타고 그녀와 나는 글라스에 담긴 붉은 세월을 조금씩 음미했다.

스캣의 후렴구가 반복된다. 재즈 가사에 뜻이 없는 후렴을 넣어 반복반복 부르는 노래는 때론 흥을 돋우고 때론 슬픔을 부르기도 한다. 지하철이 끊어질 시간 걱정에 조바심이 날 법도 하건만 두 여자는 무심해지기로 작정을 했나 보다.
한 줄로만 서야 정답인 줄 알았는데 돌아보니 저 세월 속에 숱한 골목길이 보이고 여러 갈래 오솔길도 보인다. 모범 아니면 어때서, 비능률이면 어때서. 삶은 무수한 기공을 품고 있어 숨도 쉬어 주고 전력질주도 하고 그런 거지. 그녀 발그레한 볼이 예뻐 보이고 촉촉한 눈에 맺힌 눈물이 불빛에 영롱하다.

‘적은 것을 가지고도 많은 것을 만들어내는 사람이 있고 많은 것을 가지고도 적은 것밖에 못 만드는 사람이 있다.’ 누군가의 글에서 읽은 문구다. 자본주의 효용으로 따지면 당연히 뒤쪽 사람이 문책 대상이다. 그래도 뒤집어 보면 평범한 사람들의 받침이 있었기에 그대가 쓴 월계관이 빛날 수 있다 생각해 보면 어떨까.
켜켜이 쌓아진 나이가 부담스럽다고 불평하기보다는 스캣의 역할에 의미를 부여할 줄 아는 여유가 생겨난다. 11월의 선율을 즐길 자격이 있다고 두 여자, 잔 들어 건배를 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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