병실이 고요할 리 없다. 2인실이라 나름 조용할 만도 하건만 수시로 세상이 들이닥친다. 이 바쁜 세상에 시간을 내고 마음을 담아 문병온 정성을 감사하게 받아야겠지. 밤늦은 시간, 살짝 혀 꼬부라진 목소리로 전화가 왔다. ‘아직 안 자지? 낮에도 자고 밤에도 자는 잠 억지로 청하고 있을 생각을 하니 집으로 갈 수가 있나. 기분전환해 줄 테니 조금만 기다려.’ 조금이 이렇게 순식간이구나. 곧 들이닥친 그이는 야식으로 딱인 포장마차 음식 몇 가지에 친절하게도 소주 한 병까지 들고 왔다. 옆 침대 화가 친구까지 합세해 술잔을 받았다. 기껏해야 한두 잔인 주량인데 여태 술맛이 뭔지 모르고 사는 맹맹이 소리를 들어도 할 말이 없다. 알코올을 받아주지 못하는 체질인 걸 어쩝니까. 술맛도 모르면서 무슨 소설을 쓴다고 그래. 인생사 나이테 속에 박혀 있는 옹이를 맨숭한 눈으로 어찌 알겠노. 단언하건데 넌 사이비 작가다. 주량의 세기로 작가의 질이 결정돼 버렸다.
20년 가까운 세월을 글로 맺어 온 문우다. 매운 안주와 국물을 들이키며 그이의 심중을 헤아려 본다. 울적해 있을 내 생각에 차마 집으로 들어가기 미안해 왔다는데 말투는 주정이다. 그이는 작가로서 진실하고 철저하다. 가차 없는 혹평으로 가슴에 스크래치를 남겨 자존심을 박박 긁기는 해도 좋은 작품을 창작하길 바라는 그이의 열정을 알기에 숙연해지곤 했다. 그이를 보내고 병상에 누웠는데 생각이 많아진다.

떠들썩한 세상에서 나는 글을 쓴다. 고맙게도 나를 정화하는 방법이다. 누구나 헛헛해진 가슴이 불면을 부르면 힘듦을 무디게 해 줄 방법을 찾는다. 나름의 방식으로 치유를 하는 것이다. 개개인마다 맞춤한 방법을 선택하겠지만 개중엔 타인에 대한 악플을 즐기는 이도 있다. 영문 모르고 뒤통수를 맞아 엎어졌던 경험이 한두 번은 있을 것이다. 그래서 뒷담화가 싫다. 다행스럽게도 말주변이 없어 입이 무겁다는 평을 듣는다. 그 자리에 없는 누군가에 대한 좋지 않은 신상공개나 매도하는 말을 들으면 불편해서다. 정의니 윤리니 거창한 명분을 찾아서라기보다 그냥 그 분위기가 어색해 뒤로 한 발 물러서게 된다.
병상 생활이 마냥 지루한 것만은 아니다. 바쁜 일상이 멈춰지면서 나를 점검해 보는 기회가 주어진다. 나를 포함한 주변이 추상이 아닌 실물로 존재감을 드러내며 다가온다. 그냥 덩어리로 흘러가던 것들이 개성을 보여주는 존재가 되는 것이다. ‘자세히 보아야 예쁘고 오래 봐야 사랑스럽다.’는 나태주 시인의 시구처럼 세세한 관심이 깨어나면서 관계맺음이 재규정되고 허투가 아님을 알아간다.
힘써줄 인맥은 관리하고 경쟁대상이다 싶으면 철저하게 싹을 자르며 자기위치를 키우는 지인이 있다. 당연히 여러 사람들 입에 오르내리는 인물이다. 재능에 비해 빈곤했던 환경이 오기를 품었을 테지만 처음 시작이 그랬듯이 필요할 땐 급친절 미소로 손 내밀고 독보적 존재감 노출에 거추장스럽다 싶으면 은밀하게 나쁜 소문을 만들었다. 몇몇 지인은 배신감에 치를 떨기도 했다. 그이의 병문안을 선뜻 받아들이지 못한 마음이 불편해진다. 어느 날은 팽 당했다가 어느 날은 절친이 되는 편리함이 못마땅한 것은 사실이다. 무방비 상태에서 들이 받친 교통사고처럼 그이의 현란한 처세에 마음을 다칠 수도 있다. 그이나 나나 이제는 숙성되어가는 나이인데 얼마를 더 거머쥐어야 만족이 될까. 몸이 아프니 마음도 약해진다.
이제는 좋은 게 좋다. 그냥저냥 각 세우지 말고 살았으면 싶다. 매번 물러선다고 하찮아지는 것도 아니고 아등바등 이루겠다고 앙다문 성공의 기준도 달라 보이는 나이가 된 것 같다. “이 방은 날마다 대합실이네요.” 그렇다. 문병객으로 가득한 병실에 주사 놓으러 온 간호사의 농담이 세상살이 정답이라 믿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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