한동안 지구 종말론으로 세상이 시끄러웠다. 2012년 12월 21일까지만 표시되어 있는 마야력 때문이다. AD 9세기경 홀연히 사라진 고대마야문명은 우주의 시간과 주기를 재는 데 탁월했다. 고고학자들의 손에서 천체우주과학자들에게 넘겨진 마야력은 경이로움이었다. 현대과학으로도 측량이 어려운 천체의 움직임을 정밀하게 관측해 기록했기 때문이다. 그들은 몇 백 년도 아닌 5천125년, 187만2천 일이 넘는 시간 계산에 단 하루의 오차도 없는 정교함으로 우주와 지구의 시간을 계측했다.

달력과 시간은 현대인의 삶을 지배하는 불가항력의 힘을 가졌다. 시간은 필수와 불가를 따질 수 없는 필수품이 되었고 무조건 의지하며 살아간다. 당연히 놀랄 만큼 정밀한 우주의 주기법을 계산해 낸 마야문명에 대한 숭배까지 생겨났고 수수께끼 같이 나타났다 사라진 고대마야문명을 외계문명이라고 하면서 신비를 입혔다. 한동안 프랑스의 산골마을 부가라시는 외계인이 출몰하는 산이 있다고 소문이 퍼졌다. 지구 종말의 날 이곳에 있어야 구원받는다 해 주민 200명 남짓한 이곳에 세계 50개국에서 몰려든 엄청난 인파 때문에 질서유지를 위한 경찰 100여 명이 투입되었다는 웃지 못할 뉴스도 있었다. 
기원전 3114년 8월 13일에 시작해 2012년 12월 21일까지 기록한 마야달력에서 13번째 ‘박툰(baktun, 고대 마야인들이 사용했던 시간단위 개념으로 394년 주기를 하나의 박툰으로 봄)’의 마지막 날로 표기한 12월 21일 아무 일 없이 지구는 온전했다. 지구멸망설을 믿는 사람들의 문의로 북새통을 이룬 미 항공우주국(NASA)은 홈페이지에다 수다방을 개설해 이 예언은 믿을 것이 못된다며 설득하느라 진땀을 뺐다는 이야기도 있다. 한바탕 야단법석 해프닝으로 끝난 지구 종말의 날이었다.

지금은 최첨단 기계와 지식으로 미래를 예지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진 우리지만 왠지 늘 불안하고 초조하다. 현재를 ‘불확실성의 시대’라 명명한 미국 경제학자 갤브레이스의 동명 책은 1977년 초판 이래 초베스트셀러를 기록했다. 아이러니하게도 한 개인이 감당하기에 박찬 엄청난 정보는 오히려 판단에 대한 신뢰를 가질 수 없어 불확실성의 시대를 초래한 원인이 되었다. 너도 나도 전문가 시대에 누구의 말이 옳은지, 넘쳐나는 광고를 보면서 어느 제품 광고를 믿어야 할지 혼란스럽다. 과거의 정보나 경험이 미래를 안전하게 보장해 주지 못하는 불안과 불신이 있어서다. 차라리 가까운 지인이나 성향이 같은 사람의 말이 솔깃하고 트위터의 짧은 글 한 줄에 급동조하게 된다. 확고한 믿음과 확신이 부족해 세태에 휩쓸린 개인이 위안을 찾는 방법이기도 하다.
트위터의 뜻을 우리말로 옮기면 지저귐 쯤으로 번역된다. 가볍고 경쾌한 느낌이 드는 단어다. 그러나 140자 이내의 짧은 트위터 글은 때론 엄청난 추종세력을 만들기도 한다. 논리보다는 감정에 기대는 변종의 힘을 가져서다. 거기다가 퍼트리는 속도도 엄청나 순식간에 퍼나르기로 수백만 명은 거뜬히 의견이나 생각을 공유하고 소통한다. 불확실성의 시대라 기댈 안식을 찾아내지 못한 사람들은 긍정보다는 불안한 정보에 더 예민해진다.
어쨌든 새 박툰이 시작되었다. 394년을 주기로 변함없이 하나의 박툰은 끝나고 시작되기를 반복한다. 새 박툰이 시작된 첫날도 무사히 지나갔고 몇 날이 흘렀다. 오늘은 구원의 주님이 오신 크리스마스 날이다. 구세주 그분처럼 사랑으로 세상을 볼 수 있기를 소망해 본다. 살아보니 불신보다는 믿음이 마음 편하고 부정보다는 긍정이 희망을 갖게 한다. 경제도 정치도 마음에 들지 않지만 배척하고 뒷담화해 봐야 속이 편치 않다.
지구멸망설에 마음을 빼앗겨 자살을 시도하고 절망감으로 힘들어하는 이들이 있는가 하면 마야문명이 번성했던 지역에서는 새 박툰의 시작을 축하하는 축제를 열었다. 이곳에도 세계 각국에서 모여든 여행객들이 현지인들과 어울려 새 박툰의 시작을 축복하며 성대한 축제를 즐겼다.
곧 새 해가 떠오른다. 다사다난은 어느 해라고 특별히 봐주지 않아 거르지 않고 있었다. 즐거움도 슬픔도 성취도 실패도 크기는 각각이겠지만 늘 그래왔던 것처럼 기다리고 있을 것이다. 새해라고 봐주지 않는다는 것쯤은 알 만큼 살아온 내공이다. 그래도 새해는 다가올 미래라서 희망이다. 새로운 박툰을 여는 축제로 새로운 주기를 시작하는 마야의 후손처럼 새해를 벅차게 맞이하고 싶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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