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외국에서 우리나라로 유학온 한 여대생이 겪은 실화입니다. 다니던 대학 교수가 학생들과 회식하는 자리에서 무슨 말을 했는데 이 학생이 “교수님, 저를 노리지 마세요.”라고 했다는 겁니다. 그 순간 분위기는 무겁게 가라앉고 말았습니다. ‘놀리지 말라고’ 해야 할 것을 ‘노리지 말라고’했던 것입니다. 아니, 대학 교수가, 가르치는 여학생을 ‘노린다’구요?

#2. 역시 외국에서 온 어느 여인의 이야기입니다. 어느 날 시내버스를 타게 되었습니다. 마침 빈 자리가 있어 앉아 가게 되었습니다. 얼마쯤 가다보니 빈 좌석은 하나도 남지 않았습니다. 그런데 할아버지 한 분이 힘겹게 버스에 오르는 것이었습니다. 이 외국 여인은 한국의 노인 공경문화와 양보문화에 대해서는 익히 알고 있던 터라 자신도 할아버지에게 자리를 양보하고 싶었습니다. 그래서 자리에서 일어나 다정한 목소리로 이렇게 말했습니다. “할아버지, 안아주세요.” 할아버지는 놀란 눈으로 어쩔 줄을 몰랐다고 합니다. “할아버지, 앉아주세요(앉으세요).”라고 하고 싶었던 것이겠지요.

위의 예는 물론 극단적인 경우이긴 합니다만, 말하기에 ‘발음’은 참으로 중요한 요소입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을 준비했어도 ‘발음’이 좋지 않아 제대로 전달하지 못했다면 그것만큼 속상한 일도 없을 것입니다. 사전적인 의미의 ‘발음’은 ‘혀 ·이 ·입술 등을 이용해 말을 이루는 소리를 내는 일, 또는 그 소리’를 뜻합니다. 발음은 대개 그 사람의 출신지를 밝혀주고, 영국에서는 발음이 신분계층을 드러내는 역할을 하기도 합니다.
여러분! 혹시 ‘표준발음법’에 대해 아십니까? ‘한글맞춤법’과 ‘표준어규정’에 대해서는 잘 아실 것입니다만 ‘표준발음법’에 대해서는 생소한 경우가 적지 않을 것입니다. 1988년 새로운 표준어규정이 공표될 때까지 우리말 사용의 척도가 된 것은 1936년 조선어학회에서 공표한 조선어 표준말모음이었습니다. 그 당시에는 물론 표준발음법은 없었습니다. 그러다가 언어의 변천을 수용하고 국어교육 차원에서 표준어의 재사정과 표준발음법 제정의 필요성이 계속 제기되어서 만들어지게 된 것입니다.
한국어 표준발음법은 한글의 발음에 관한 규칙으로 ‘표준어 규정’(1988)의 제2부에 나와 있습니다. 전체 7장으로 나뉘어 있는데 제1장 총칙, 제2장 자음과 모음, 제3장 소리의 길이, 제4장 받침의 발음, 제5장 소리의 동화, 제6장 된소리되기, 제7장 소리의 첨가로 구성되어 있습니다. 우리말을 잘하고 싶다면 꼭 익혀 둘 필요가 있습니다. 그렇지만 두려워할 필요는 없습니다. 대개는 이미 우리의 언어습관에서 익숙해진 것들이니까요. 어찌 보면 말하기의 가장 기본이 되는 것이 바로 ‘발음’이라 하겠습니다. 발음이 정확해야 전달력이 더 높아지는 것은 자명한 일이겠지요? 게다가 발음이 정확하면 듣는 사람들에게 신뢰감을 더 준다는 강점도 있습니다. 주위 사람들에게 묻거나 혹은 자신이 말하는 것을 녹음해 잘 들어보고 잘 되지 않는 발음을 찾아보십시오. 안 되는 발음을 집중적으로 훈련하고 평소에는 무엇이든 소리내 읽는 버릇을 들인다면 틀림없이 더 나은 발음을 갖게 될 것입니다. 낭독을 할 때에는 천천히, 평상시 속도보다 1.5~2배 느리게 발음의 정확도를 높여 훈련하는 것이 효과적입니다. 발음 훈련의 스승은 나 자신, 그리고 내 옆에 있는 누구나가 될 수 있습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얼마 전 우연히 본 주말 예능 프로그램에서 출연자들에게 어려운 발음과제를 내주고 제대로 하지 못하는 경우 벌칙을 주더군요. 발음 훈련 차원에서 참 좋은 아이디어라는 생각이 들었습니다. 그중 몇 가지만 적어봅니다. 꼭 소리 내 발음해 보기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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