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17대 감사원장을 지낸 한승헌 변호사가 말한 것처럼 지금은 ‘만인 스피치’시대입니다. 누구나 한 번쯤은 이런저런 크고작은 모임에서 스피치할 기회가 있다는 말입니다. 여러분도 예외는 아닐 것입니다. 공식적인 큰 행사에서 축사를 하는 것이나 사적인 작은 동창회 모임에서 말하는 것이나 스피치라는 관점에서 보면 본질은 같습니다.
사실 남들 앞에서 자신의 의견을 발표하는 것은 말할 것도 없고 간단한 인사말을 하는 것도 생각처럼 쉽지는 않은 일입니다. 하지만 몇 가지 요소만 잘 준비해 다른 사람들 앞에 선다면 그렇게 어려운 일만도 아닐 것입니다. 한 번의 스피치로 그동안의 이미지를 확 바꿀 수도 있습니다. 먼저 원고 준비 단계부터 생각해 볼 수 있겠습니다. 이것은 물론 자신이 스피치하게 될 것을 미리 알고 있을 경우에 해당되겠지요. 원고는 작성을 하는 것이 좋습니다. 모임의 성격, 목적, 청중의 구성 등의 정보를 미리 파악하고 그에 맞게 할 말을 정리해 보는 겁니다. 이렇게 원고를 만들어 놓게 되면 꼭 해야 할 말이 빠지는 일은 없게 됩니다. 그리고 스피치 시간을 미리 가늠해 볼 수 있다는 장점도 있습니다. 아무리 좋은 내용이라도 정해진 시간을 넘기게 된다면 그야말로 ‘과유불급’이 되기 때문입니다. 하지만 주의할 점도 있습니다. 미리 원고를 작성했다고 그것을 그대로 읽어서는 곤란합니다. 왜냐하면 글과 말은 엄연히 다른 전달 수단이기 때문에 읽는 이와 듣는 이 사이에 괴리가 생길 수밖에 없습니다. 우리가 흔히 이야기하는 문어체와 구어체의 차이가 있다는 이야기입니다.
제가 진행하고 있는 경인방송 ‘상쾌한 아침 원기범입니다 (월~금 07:00~09:00)’에는 하루에 많을 때는 예닐곱 개의 인터뷰가 들어갑니다. 말씀을 잘 하시는 분들도 있지만 그렇지 않은 분들도 상당히 많습니다. 게다가 생방송이라는 점이 주는 압박감 때문에 평소보다 더 긴장하는 경우가 다반사입니다. 그러다 보니 출연자 대부분은 궁여지책으로 원고를 그야말로 ‘세밀하게’ 준비해 옵니다. 대비를 철저히 하는 것은 좋은데 답변할 때 원고를 보고 토씨 하나까지도 국어책 읽듯이 그대로 읽다 보니 듣는 재미가 반감되는 것은 물론이고 경우에 따라서는 채널이 돌아가기도 합니다. 그래서 진행자인 저는 질문지 순서를 바꾼다든지 질문지에 없는 돌발 질문을 드린다든지 해 ‘읽는 답변’이 아닌 ‘말하는 답변’을 유도해냅니다. 출연자에게는 진땀나는 시간이겠지요. 어떤 분은 생방송 중에 눈짓 몸짓으로, 어떤 분은 제 팔을 잡아가며 질문지대로 질문해달라고 압력을 넣기도 합니다. 하지만 떠듬떠듬 하더라도 자연스러운 답변이 듣는 사람들에게는 훨씬 더 와 닿는 인터뷰입니다.
그럼 스피치 현장에서는 어떻게 해야 할까요. 가장 좋은 방법은 원고를 보되 말하듯이 하는 것인데 그것은 정말 쉽지 않은 일이니까 이 방법을 권해드립니다. 원고 내용을 먼저 잘 숙지하고 빠트리면 안 될 주요 내용만 열쇠말(키워드) 정도로 메모해 참고하면서 말하는 것입니다. 이렇게 하면 여러 가지 장점이 있습니다. 일단 자연스러운 스피치가 가능합니다. 둘째, 원고를 계속해 보지 않아도 되기 때문에 시선처리 역시 자연스럽게 하실 수 있습니다(이 부분에 대해서는 다음 기회에 더 자세히 다루겠습니다.). 끝으로, 말하기에 대한 자신감을 갖게 합니다. 정리하겠습니다. 규모가 크든 작든 스피치의 기회가 있다면 원고는 준비하고 숙지하되 현장에서는 주요 내용 메모만을 참고해 자연스럽고 자신있게 말하면 됩니다. 새해에는 스피치의 달인 되기에 도전해 보십시오.
오늘의 과제입니다. 주변에 스피치를 잘 하는 사람을 찾아보고 배울 점은 없는지 생각해 보기 바랍니다.

    (※ 원기범 아나운서의 ‘세·바·스·찬’은 ‘세상을 바꾸는 스피치 찬스’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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