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인 중에 도예 작가가 있다. 그의 작업실에 갔다가 흙을 주물러 작품을 만들었다. 불가피한 약속이 생겨 잠시 다녀오겠다고 도예가는 외출하고 혼자 무료를 달래려고 흙을 만지작거리며 시간을 보냈다. 흙덩어리를 조물조물 뭉치고 늘리고 쌓아올리고 그러면서 뭔가 만들어보는데 마음에 들진 않고, 다시 뭉쳐 새로 만들기를 여러 번. 작업실 곳곳에 보관해 놓은 작가의 작품을 둘러보며 모방도 해보고 나름대로 아이디어를 내 창작품을 만들어보기도 했다.
꽤 근사한 작품이 나왔다. 물론 주관적인 평가다. 외출에서 돌아온 도예가는 만든 작품을 보고 뜨악한 표정을 지었다. 이렇게 만든 이유가 있을 것이니 설명해 보라고 해 내가 생각한 의미를 자세히 이야기해 주었다. 훌륭하다. 그렇게 깊은 뜻이 들어 있었나. 말려서 잘 구워놓겠다. 장난조로 주고받은 말이라 살짝 민망한 면도 없지 않지만 내가 부여한 의미가 살아있는 작품이라 마음에 들었다. 도예가의 눈에는 어수룩해 아이들 손장난 같아 보일지라도 직접 내 손으로 공들여 만들었다는 게 중요하다.

한참 시간이 지나 지루한 기다림에 지칠 무렵 작품 찾아가게, 연락이 왔다. 기대하는 마음이 급해 바로 달려갔다. 오밀조밀한 작품들 속에서도 한눈에 딱 보이는 내 작품. 전체 모양은 사람 얼굴이다. 크게 입 벌리고 웃고 있는 얼굴이 천진하다. 코와 입으로 상징된 부분은 사람이다. 두 팔로 껴안고 하트 모양을 만들고 있는 사람은 나이고 싶고 너이면 좋겠고 우리라면 걱정 없겠다.

가족이라 다툰다. 친구라 싸울 일도 있다. 세상 속에 있기에 세상과 반목하기도 한다. 내가 무엇 때문에 여기에 있나? 정답은 정해져 있는데 주구장창 그쪽만 바라보고 가야하는 것에 회의가 들기도 한다. 누구는 복잡한 도로에서 잽싸게 빠져나가고 얌체짓 하면서 앞지르고, 수틀리면 경적을 빵빵 울리며 시위한다. 차선 가로막고 진로 방해하며 위협하고, 고성으로 공포분위기 만들어 제 잘못을 덮어씌울 때도 있다. 법규 잘 지키는 사람은 맹한 운전자라고 무시당하기 십상이다. 감내하는 일이 쌓이다 보면 울화가 생긴다.

하늘에서 내려다보이는 지상은 고요하고 평화롭다 했다. 떨어져 전체를 보면 대등하고 서로 원하는 바가 무엇인지 알아 협조하며 움직이는 모습이라 했다. 세상 살아가는 기준이 질서냐 경쟁이냐는 내 운전 습관에 달려있다. 관심을 가지고 주의를 기울이면 도착지까지 가는 길이 평화로울 텐데 마음은 수시로 파도를 탄다.

선자의 말씀처럼 사람의 일생이 사랑의 행로대로 라면 갈등이 없을 테고, 그러면 소설도 영화도 드라마도 존재하지 않는다. 그 세상은 건조하고 재미없어 권태로운 사람들이 시간을 그냥 흘려보내고 있을 것만 같다.
튀는 사람들, 세상에 활기를 불어넣어주는 역할을 맡은 게 아닐까. 재미없는 천국, 재미있는 지옥이란 말을 들은 지 20년이 다 되었다. 호주에서 살다온 교민이 호주와 우리나라를 비교해 한 말이다. 때로는 악다구니도 인간적일 수 있고 침 튀기는 거친 말다툼도 삶의 열정이라 생각되어 고요가 다 천국이라고 단정 지을 일은 아닌 것 같다.
비교우위를 선점하고 싶은 욕구 때문에 고달프지, 먹고사는 것에 큰 불편이 없는 세상이 되었다. 나도 마찬가지다. 위를 올려다 보면 나는 온통 결핍 투성이다. 뭐 하나 번듯하게 이룬 것 없이 나이만 먹었다.
1천200도의 거친 불길 속에서 유약을 녹아들게 해 색을 만들고 금 가거나 뒤틀리지 않고 온전한 형태를 지켜낸 내 작품. 작품에 부여한 의미가 볼수록 대견스럽다. 악다구니까지는 아니어도 방해와 유혹에 의연해지고 싶다. 세상을 사랑으로 감싸고 안아주며 살아가자. 내공이 필요한 목표를 카톡 대문에 걸었다. 매끈하고 세련되지도 화려하지도 큰 실물로 위압적이지도 않아 시선을 끌 자태가 아니다. 수수한 내 심성을 녹여 구상한 작품이라 소박하다. ‘불후의 명작’이라고 제목을 붙였다. 가족들이 장난 반 진담 반으로 동의를 해 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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