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난해에 실제로 겪은 일입니다. 어느 큰 행사의 사회를 보러 갔을 때의 일입니다. 행사 시간이 되어서 내빈 입장 이후에 곧바로 행사를 시작했습니다. “오늘 바쁘신 중에도 참석해 주신 여러분을 환영합니다. 그럼 지금부터 OOO행사를 시작하겠습니다. 먼저 국민의례가 있겠습니다. 모두 자리에서 일어나셔서 무대 위에 있는 국기를 향해 주시기 바랍니다.” 이렇게 멘트를 하고 저도 몸을 무대 쪽으로 돌렸습니다. 그런데 이게 웬일입니까? 무대 위에 당연히 있어야 할 태극기가 어디로 갔는지 자취를 감춘 것입니다. 큰일 났습니다. 엄숙해야 할 국민의례 시간에 국기가 없다? 시장부터 시의회 의장, 교육감, 국회의원 등 주요 인사들이 모두 참석을 한 행사였기 때문에 문제의 심각성은 더 클 수밖에 없었습니다. 게다가 국기에 대한 경례를 하기 위해 이미 참석자들이 일어서 있는 상황이었기에 다시 앉으라고도 할 수 없는 애매한 상황이었습니다. 국기가 준비될 때까지 다시 앉아 기다리자고 할 수는 없는 노릇이니까요. ‘어떻게 하지?’ 그 잠깐 사이(아마 2~3초도 흐르지 않았을 겁니다)에 오만가지 생각이 다 들면서 등줄기에 땀이 나더군요. 다행히도 순간적으로 좋은 생각이 떠올라 저는 이렇게 말했습니다. “여러분, 모두 눈을 감으시고 마음 속에 국기를 그리면서 경건한 마음으로 함께 해 주시기 바랍니다. 국기에 대하여 경례!” 그 사건 이후로 저는 어느 행사에 가든지 국민의례가 있는 경우 태극기가 있는지부터 확인하게 되었습니다.
스피치의 달인이 되기 위해 순발력도 중요합니다. 순발력이란 본래 스포츠 용어입니다.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발휘해 달리고, 뛰고, 던지는, 능력을 말하는데 다양한 스포츠에서 기초가 되는 체력 요인의 하나입니다. 달리기·뛰기·던지기 등 스포츠의 기초가 되는 능력은 모두 순발력과 깊은 관계가 있습니다. 그런데 우리 일상 생활에서도 ‘순간적으로 강한 힘을 발휘해 판단해야 할 때’가 종종 있습니다. 그중 하나가 바로 스피치할 때입니다. 말하기에서의 순발력이란 예기치 못한 상황에서 당황하지 않고 잘 대처해 분위기에 맞게 스피치를 이어가는 것이라고 볼 수 있겠습니다.
그렇다면 인위적으로, 후천적인 노력으로 순발력을 키우는 것이 가능할까요? 정답은 ‘그렇다’입니다. 지금 막 최선을 다해 말을 시작하려 할 때 마이크가 꺼진다든지, 불이 꺼진다든지, 장내가 소란해진다든지 등 우리의 정상적인 스피치를 방해하는 상황은 얼마든지 생길 수 있습니다. 먼저 정신집중이 중요합니다. 현장의 상황을 놓치지 말고 파악하고 분위기를 제대로 감지하고 있어야 합니다. 그리고 재미있는 유머 몇 가지 정도는 준비하는 것이 좋습니다. 위기를 웃음으로 재미있게 탈바꿈시키는 것입니다. 물론 그 유머가 그 상황에 맞아야 하겠지만요. (스피치에서 유머의 중요성은 다음 기회에 자세히 말씀드리겠습니다.)
그리고 돌발상황에 당황하지 말고 오히려 그 상황을 패러디하는 연습도 중요합니다. 그 밖에 상상력을 동원하는 방법도 있습니다. 일상생활에서 ‘만약 이런 상황이 온다면’을 가정하고 그 상황에 맞게 대처해 보는 연습을 하는 것입니다. 나름 재미도 있고 실제로 상상력을 증대시키는 효과도 있습니다. 선천적으로 순발력이 뛰어난 사람도 분명히 있겠지만 그렇다고 기죽을 필요는 없습니다. 조금만 관심을 가지고 노력하면 됩니다.
오늘의 과제입니다. 언제 어디서나 통할 수 있는 자신만의 유머 세 가지를 만들어 보십시오.
 (※ 원기범 아나운서의 ‘세·바·스·찬’은 ‘세상을 바꾸는 스피치 찬스’입니다. - 편집자 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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