어느 날 미모의 여대생이 살해된다. 그녀의 죽음을 계기로 그녀를 둘러싼 주변인들은 서로의 존재를 눈치채게 된다.

여대생의 옆집에 살면서 그녀를 도청하는 경찰(이제훈 분), 삼촌을 자임하는 잔인한 사채업자(조진웅), 끝난 사랑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스토킹하는 옛 애인(김태훈), 아내 모르게 불륜을 저지르던 대학교수(곽도원).

그 누구보다 평범하고 점잖은 얼굴을 한 채 살아왔던 이들은 살인사건을 계기로 자신의 내면에 자리하고 있던 분노를 발견하고 죽음의 책임을 서로에게 돌리기 시작한다. “남한테 피해 준 적 없어”, “돈만 벌면 돼”, “사랑해서 그런 거야”, “아내만 모르면 돼”라고 말하며 서로를 응징하려 하는 네 남자는 서서히 자신들의 본색을 드러낸다.

그러던 어느 날 자신만은 순결하다고 주장하는 네 남자 앞에 또 다른 여인이 나타난다. 살인보다 불륜이 더 참을 수 없는 대학교수의 아내(문소리)다. 서로를 심판하겠다고 나선 이들의 분노 연쇄 고리 속에서 사건은 점점 예기치 못한 방향으로 흘러간다.

신인 박명랑 감독이 메가폰을 잡은 영화 ‘분노의 윤리학’은 살인사건으로 출발하지만 범인을 찾는 미스터리 스릴러 장르와는 거리가 있다. 한 여자를 둘러싼 악랄한 사채업자, 지질한 전 남자친구, 옆집 스토커, 불륜 관계의 교수까지 네 남자의 각기 다른 욕망과 분노, 그것을 해소하는 방법에 주목한 독특한 영화다.

알고 보면 모두 나쁜 놈인 등장인물들은 나름의 윤리관으로 자신의 행동은 정당화하는 반면, 타인의 행동에는 분노를 금하지 못하는 아이러니를 선보인다.

   
 

대학교수를 제외한 세 남자가 한자리에 모이면서 영화는 절정을 향해 치닫는다. 각자 자신의 감정에만 몰두한 두 남자의 끝없는 말다툼과 살기 위해 무슨 말이든 지껄여대는 한 남자의 우스꽝스러운 모습은 웃기지만 쉽게 웃을 수 없다.

나쁜 놈들의 자기항변이라는 독특한 설정으로 관객의 구미를 당기지만 후반으로 갈수록 설득력이 떨어지는 것은 상당히 아쉽다. 클라이맥스에서도 극적인 긴장감을 유지하지 못하는 이유다.

‘건축학개론’, ‘고지전’으로 얼굴을 알린 배우 이제훈이 짝사랑하는 여자를 도청하는 경찰로, ‘범죄와의 전쟁:나쁜놈들 전성시대’의 조진웅이 사채업자로 열연했으며 여기에 김태훈·곽도원·문소리 등 개성 있는 배우들의 연기가 돋보인다. 2월 21일 개봉. 18세 이상 관람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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